모조 사회 1 - 존재의 방식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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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허물어지고 있었다.모래 바닥으로부터 피어오르는 강렬한 열기가 신기루처럼 도시의 윤곽을 흔들어 허물고 있었다.그러나 신기루가 아니었다.건의 시선 속에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실존의 도시였다.도시는 거대한 사막 위에 섬처럼 박혀 있었다. 소리가 들리고서야 소리가 존재하디 않았다는 사실을 건은 깨달았다. (-9-)


믿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도 건은 이것이 여전히 현실이라고 믿겼고,그렇게 믿는 자신을 다른 인격처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자아를 느꼈다.미쳐가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건의 머릿속은 마치 폭풍 뒤 팬 도로 같았다.생각이 앞으로 나아갈 것 같다가 진창에 빠진 바퀴처럼 헛돌았고, 다른 쪽으로 다시 튀어 나갈 것 같다가 재차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87-)


"그 끈이 안정벨트에요."
수가 "네"하고 여자를 보자 여자가 멘 물건이 의자 모양으로 바뀌고 있었다.수의 동공이 또다시 확대되었다.의자는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등을 따라 내려오다 이윽고 엉덩이까지 감쌋다.여자가 편안한 표정으로 다리를 들자 그대로 그 위에 앉은 모습이 되었다.여자가 수를 보며 자기처럼 양 어깨끈을 잡으라는 몸짓을 보였다.(-120-)


랭에 말에 다라 파로가 무언가를 조정했고.이어 화면이 달라졌다.공간은 그대로였으나 아빠의 모습이 좀 더 초췌해진 듯 보였다.어린 수는 여전했다.수의 아빠가 긴 숨을 한 번 내쉬었다.다 했어? 다 됐어? 라며 어린 수가 방방 뛰자, 그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소년의 몸에 설치된 장치들을 모두 제거했다.(-191-)


"은수 씨의 '은'이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성이잖아요? 우리는 그게 없습니다. 필요성이 없으니까.자연히 사라졌습니다.남녀가 만나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는 그 순간부터 자기 삶의 독립된 주체로 살아가는 거지,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 그런 식으로 이어지지 않아요.우리가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그 아이의 삶을 좌지우지하지도 않고요.혈육이 강요의 울타리가 되지 않습니다.그냥 하나의 가족으로서 연을 맺고 서로를 보살피며 사는 거죠."(_297-)


소설가 도선우의 <모조 사회>는 우리의 암울한 미래,디스토피아적 사회를 구현하고 있다.유토피아와 다른 디스토피아 사회는 우리의 세상을 암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인간의 노동력이 축소되고, 기술과 과학에 의존한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여기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들여다 보면,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은 필요 충분조건에 따라서 만들어진 사회시스템이다. 구성원간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규칙과 안전망이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관습과 문화로 발전하면서,인간의 삶의 한계를 규정하고 있다. 관습과 문화는 강제성은 없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불이익이기 반드시 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우리 스스로 순종의 길로 이끌어나가고 ,그것에 대한 불평이 있어도 그들은 복종하게 된다.


그러나 도선우 작가의 <모조 사회>는 그러한 관습에서 탈피하고자 한다.지진이 일어났고,도시는 파괴되었다.그 과정에서 수학교서였던 수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서 다시 한번 따져보게 되고, 자신이 실제 의식이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아서 혼란스럽다.그건 소설 속 또다른 주인공 프랑스 용병 류건이나 정신과 의사였던 정탄도 마찬가지였다.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혼란과 미혼란이 오고가게 된다.


이 소설은 독특히다.혀싨과 비현실을 오가고 있다.이야기는 때로는 허무맹랑한데,무언가 설득되는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다.즉 인간이 여전히 과학적으로 풀지 못하고 미해결 상태에 있는 것들이 소설 속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구현되고 있다.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과학의 힘으로 극복하고, 유토피아로 나아가고 싶어하지만,현실은 역설적이게도 디스토피아를 추구하고 있다.그건 인간의 욕망이 바로 역설의 실체였고, 우리가 지금 상상 속에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이 소설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딥러닝은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고, 인간의 발달된 의료기술은 인간의 신경회로를 복제하려고 한다.더 나아가 법과 제도는 이제 인간의 힘과 능력이 필요없어졌다.판사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 판사가 등장하였기 때문이다.그럼으로서 기존의  우리의 물리적인 세계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성'이 가지는 기본적인 가치조차 무시된다.은수가 '수'로 불리는 이유, 류건이 '건으로 불리는 것, 정탄이 '탄'으로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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