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 리더십 - 세상을 뒤흔든 베트남 축구의 비밀
이수광 지음 / 일상이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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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은 선수들을 공정하게 선발하기 위해 베트남 축구협회에 한국인 수석코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트남인이 아니라 한국인이 수석 코치를 맡으면 인맥보다는 실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고 효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베트남 축구협회가 이를 수락하자 이영진 수석코치를 베트남으로 불러올 수 있었다. (p85)


이제는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자 산청군은 생초면에 박항서 축구장을 만들고 박항서 박물관을 건설할 계획이다. 베트남 관광객이 박항서 감독의 생가를 단체로 찾아오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박항서 감독은 단순한 축구인이 아니라 관광객까지 끌어들이는 인물이 되었다. (p102)


U-23 아시안컵에서 준우승했을 때부터 박항서 매직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스즈키컵에서 우승했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박항서 감독의 파파 리더십에 열광하게 되었다. (p149)


1986년에는 아시안게임이 열렸고,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이 열렸다. 박항서 감독은 1988년 럭키금성에서 선수로 활동하다가 29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p154)


1994년에 그는 미국 월드컵 대표팀의 김호 감독을 보좌해 코치 생활을 했고, 1996년에 수원 삼성이 창단되자 김호 감독을 따라가 코치 생활을 했다. 

2001년 1월 1일,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국가대표팀이 되었다. 박항서 감독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p155)


한동안 쉬다가 포항 스틸러스에서 코치로, 전남 드래곤즈에서 기술고문으로 활동하다가 2005년에 창단한 경남 FC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는 경남 FC를 창단 2년 만에 리그 4위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구단 프런트와의 불화로 경남 FC 감독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전남 드래곤즈의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감독이 되면서 감독직을 사퇴하자 박항서 감독이 취임하게 되었다. 그는 전남 드래곤즈를 FA에서 준우승으로 이끄는 등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올렸다. (p190)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을 이끌었던 한국 축궂대표팀 수석 코치 박항서, 그 때 당시 한국 선수가 골을 넣고 ,골을 넣었던 선수가 박항서 수석 코치에게 안겼던 그 장면이 다시금 떠올랐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전국민의 축구에 대한 인기는 거의 대부분 히딩크에게 쏟아졌으며, 박항서 수석 코치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월드컵 4가으이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이후 대한민국 축구협회가 박항서에게 보낸 제스처는 박항서 수석코치의 입장으로 보자면 수치였고, 굴욕이었다. 절치부심 박항서 감독은 초심으로 돌아갔으며, 프로 축구에 올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또다시 박항서 감독에게 위기가 찾아왔으니, 축구 선수들 간의 승부조작으로 인해 박항서 감독은 또다시 사면초가에 몰리게 된다. 그것은 박항서 감독의 축구 인생에 있어서 큰 위기였으며,축구협회와의 불화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자구책으로 선택한 길이 베트남이었다,


그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막다른 절벽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고, 월드컵 축구에서 쌓아온 연륜과 축구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은 베트남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다. 아시아 축구의 변방이었던 베트남은 월드컵 본선에 한번도 오른 적이 없었으며, 허약한 축구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베트남 축구의 라이벌은 말레이시아였으며, 그것은 베트남 축구의 현주소였다.


하지만 쌀딩크라 부르는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에 부임하면서, 베트남 축구는 달라졌다.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베트남은 숙적 말레이시아가 아닌 강호 일본을 꺾었으며, 16강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하게 된다. 아시아 축구와 언론은 베트남 축구를 다시 보게 되었고, 그 중심에 서 있는 박항서 감독을 조명하게 된다. 베트남 축구가 강해지면서, 그냥 설렁 설렁 할 수 있었던 베트남 축구와의 대결은 이제 사라지게 되었고, 실수 하나로 무너질 수 있잇다는 두려움을 안고 주변 국가들은 베트남 축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아시안 축구와 스즈키컵으로 인해서 베트남 축구의 수준이 올라가게 된 것이었다.


산청 출신이었던 박항서의 리더십은 공정함과 진실, 성실성이었다. 키가 작고, 29살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한 선수 박항서는 학교 교사가 되었고, 축구 코치가 되어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게 된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해 온 그 과정 하나 하나가 이 책에 기록되고 있었으며, 베트남 축구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제 베트남에서 국부에 버금가는 인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겸손하고,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이 박항서의 또다른 모습이었고, 베트남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가 아닐 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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