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독립만세 - 걸음마다 꽃이다
김명자 지음 / 소동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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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엄마, 나 누군지 알 수 있겠어?"
"사랑하는 딸 막내 명자."
이따금 엄머와 이런 대화라도 해보고 싶다.
얼굴은 생각나지 않아 모르니 보고 싶단 말은 얼른 나오지 않지만, 어디서나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엄마' 라는데, 나에게도 친엄마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은 늘 항시, 언제나 하고 있다.

엄마와의 추억이 없으니 내 마음은 항시 움츠려들고 굶주린 듯 했어요. 만약 엄마가 내 곁에 오래 있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엄마의 따뜻한 정을,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면 내 성격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언제나 나를 드러내 보이지 못하고 내 소신을 맘껏 펼쳐보지 못하고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 찔끔 거리며 엄마를 원망했었는데, 엄마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나요?
엄마가 내 곁에 없어서 내 생은 온통 그늘이 돼버렸어요. 엄마.
그러고 보니 나도 딸이 있네.
내 딸이 그랬어.
엄마는 엄마의 사랑을 못 받아서 사랑의 표현을 할 줄 모른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별로 칭찬을 받아보지 못했으니까.
아버지는 가끔 나를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칭찬한 일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생각해보니 정말 나도 내딸들한테
"역시 내 딸이 최고야."
"너니까 할 수 없었어."
이런 용기를 주는 말을 해본 기억이 없네.
못한 것만 지적했던 나를 반성하고 잇어요.
그건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없어서 못 들어봤기 때문에 나도 못했어.
그렇다면 엄마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내가 내 딸들한테 베푼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먹을 것 입을 것 궁색하지 않게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딸들한테는 그게 다가 아니었나봐. 내가 틀렸을까.
아니지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일 거야.
엄마.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엄마는 하늘 나라에서 날 지켜보고 있었지.
나 잘하고 있었지? 엄마가 있어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엄마는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사랑했을까?
그거 별거 없다고 나에게 귓속말을 해주네. 그렇지 별거 없지. 하하.

엄마 그런데 난 엄마가 없어서 정말 서러웠어.
항상 내 가슴에 새까만 돌이 박힌 것처럼 웃고 있어도
속에선 피눈물이 쏟아졌어.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호호백발할머니가 된 지금까지 죽 가슴 절절한 그리움이었어. 아이를 낳아 산후조리할 때도 엄마가 미웠어. 엄마 원망도 많이 했어.누구 하나 챙겨주는 사람 없어 혼잣거 미역국 끓이고 밥을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퉁퉁 부풀어오른 앞가슴을 부둥켜안고 내 눈물은 강을 만들 정도였어. 지금 생각하니 다 지나간 이야기네.

엄마.
이렇게 불러보니 정말 엄마와 마주보며 대화하는 것 같아.
푸근하고 정답네.
엄마.
지금 내 곁에 계신다면 엄마 손잡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고
좋은 옷도 사러 다녀보면 얼마나 좋을까. 남이 가진 나에게 없으면 부럽다지만 그건 부러운 게 아니고 절규였어.
힘들 때 엄마 생각이 간절할 때면 내 모습은 누가 신다 버린 신발 한짝처럼 느껴져 이유없이 슬픔이 쏟아질 때도 있었어. 이제 나도 늙었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게 잘 살아왔는지 모르겠네. 엄마에게 물어본다면 엄마는 무어라 말할까.
"아가야 ,그만하면 잘 참고 잘 이겨냈다. 이제는 울지 말고 자책하지 말고 웃으며 살아라" 라고 말해 줄 거지. 내 엄마니까 (p250)


네 페이지로 이뤄진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어 보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오롯히 적어 내려간 저자 이명자님은 70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서술하고 있었다. 6살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은 그렇게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삶에 대한 회환들이 있었고, 보성의 오지마을에 살아왔던 저자는 약사 아들은 둔 엘리트 집에 시집와서 시어머니의 등쌀을 견디면서 살아오게 되었다. 결혼 이후 직장암에 걸렸던 저자의 회한이 서린 삶의 모습을 보자면, 슬픔과 한숨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들은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저자의 삶만 그런 건 아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 주변에도 비슷한 삶을 살아왔던 이들이 많이 있었다. 배우지 못하고, 여자로서 살아왔던 그 시간의 기억들, 자유롭지 못하면서 억압과 차별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삶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스스로 견뎌내었고, 엄마의 빈자리를 언제 어디서나 느끼면서 살아왔다. '엄마에게 엄마가 필요하다'이 말은 이명자씨에게 정말 필요한 거였다.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삶들은 우리 스스로 누군가를 배려하지 못하고, 미쳐 생각하지 못하는 삶이 반복되고 있다. 회한과 슬픔을 가슴 속에 층층히 쌓아간다는 것은 그 누구도 느껴볼 수 없는 삶으로 이어지게 된다. 


저자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누군가의 딸로서 살아왔고, 누군가의 아내로서 살아왔으며,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왔으며, 누군가의 며느리로 살아온 지난 날들을 , 그 과거들을 그대로 둔 채 용서하기로 하였다. 스스로 분가를 생각하고, 홀로서기를 결심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손주들과 함께 지내온 시간들을 내려 놓고 스스로 파주라는 새로운 곳에 터전을 잡으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하나를 내려 놓으면, 하나를 얻게 된다고 누가 말했다. 저자는 바로 그러한 삶을 인생속에서 경험하였고, 스스로에게 자유라는 달콤한 선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배우고 익히고, 그 배움을 버킷리스트에 담아가게 된다. 한권의 자서전을 쓰는 건 저자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친구를 만들어서 함께 소통하면서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삶을 되돌릴 순 없어도,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저자는 바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차곡차곡 쌓아가기로 하였다.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 새로운 꿈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피우지 못했던 꽃을 스스로 피워 나가는 방법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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