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주노초파람보
노엘라 지음 / 시루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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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감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 그냥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들, 증거는 그다음에 나타나게 되어 있지.
그날 , 그 집을 나오면서 모든 걸 잊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의 꿈처럼 그를 만났지.
나에게 그는 우주 전체와 같았지.
그의 안에서 세상을 보았고, 그의 안에서 꿈을 꾸었어.
그의 안에서 하늘을 보았고, 그 하늘을 날고 싶었지.
그 하늘이 너무도 높아 태양 가까이 갔다는 걸.
녹아내린 날개를 보며 나는 알았어.

그와 나의 땀이 섞이고, 그와 나의 숨이 섞이고, 그와 나의 채취가 섞이고.
그와 나의 몸이 섞이고, 그와 나의 영혼이 섞였을 때.
그날 그 집을 나오면서 모든 걸 잊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의 기억이란 참으로 얄궂은 것이어서.
기억하고 싶다고 기억할 수 있는게 아니고,
잊고 싶다고 잊히는 게 아닌 법이지. 
잊고 싶은 기억들은 그만큼 더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버리곤 해.
그날 밤 ,그의 서람 속에서 보았던 사진 속 가장 잊고 싶던 얼굴.
그날 .그 집을 나오면서 모든 걸 잊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P186)


삶이 있었고, 죽음이 있었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세상을 표현하기에 얼마나 부족한지, 살아보면서 느낄 수 있다. 삶이 먼저일까, 사랑이 먼저일까. 우리의 가치관들은 남녀간의 사랑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게 되고, 사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사랑하지만 사랑함으로서 후회하게 되고, 사랑함으로서 기억되는 것들,그런 것들이 층층히 쌓이게 되고, 그것이 다양한 색채로서 무지개 색을 이루게 된다. 같은 무지개라도 사람들은 다르게 보여지게 되고, 다른 과거들을 찾아내 끄집어 내고 있다. 과거의 기억들이 과거의 나의 모습을 재현하고 되고, 그 과거는 현재가 되고,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감정이란 그런 거다. 기억을 해야하고 , 기억을 하지 말아야 하고, 그럼으로서 우리는 감정은 내 기억에 따라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사랑도 기억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규칙들은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고, 내 이름조차 그 규칙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은하라는 이름을 가진 기자는 이름 앞에 '수'라는 성이 붙음으로서 기억을 더 구체화하게 만들어 버린다. 강렬하다는 건 이럴 때 쓰는 게 아닌가, 은하라는 이름 앞에 다른 성이 붙으면 그것은 내 기억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고, 수명을 늘여나갈 수 있다. 수은하 , 영어로 쓰면 은하수였다. 특별한 이름을 가진 소설 속 주인공, 삶이 죽음으로 바뀌는 그 순간, 주변에 남겨진 남자들의 다양한 기억들,그런 기억들은 하나의 빨주노초파람보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사랑이 삶이 되었고, 삶이 어느새 죽음으로 바뀌는 것, 죽음이 후회가 되고, 그것이 이 소설 속에 담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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