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죽인다
손선영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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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면 우리 사회의 잔인한 현실을 마주할 때가 있다. 진짜 우리 사회에 일어난 사건 사고일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많은 범죄들이 미디어를 통해 여과없이 드러난다. 여과없이 그대로 노출된 사건 사고들은 우리 스스로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무덤덤 해질 때가 있다. 어디서 누군가 살해되었다는 과거의 어느 시점의 사건이 어제도 오늘도 반복될 때 느끼는 그 감정은 스스로를 옥죄기도 하고,내 앞에 놓여진 그 사건에 대해 스처지나가듯 감정의 동선이 크게 바뀌지 않을때 느끼는 소름끼침에 대해서, 그런 경험은 나뿐만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또한 지금 나의 모습이 앞으로 더 나아지기는 커녕 미래는 더 많은 사건 사고들이 노출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이유없이 두려움과 공포 불안을 느끼는 실체였다. 아무일 없이 지나갈 것 같았던 일들이 부지불식간에  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또다른 이유이다.


소설의 가지는 허구는 진실을 압도할 때가 있다. 손선영이 쓴 <내가 먼저 죽인다>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노출시키고 있다. 1992년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아버지의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던 손창환은 은행에 취업하게 된다. 지금처럼 컴퓨터나 계산기가 아닌 주판으로 주산과 부기가 필수였던 그 시대상을 엿본다면, 손창환이 은행일을 한다는 건 맨땅에 헤딩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주산도, 부기도 몰랐던 손창환과 함께 일하는 이는 대졸 박상준이다. 순진하고 어리숙할 정도로 손창환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처세술이 능숙하지 않았다. 반면 박상준은 주변 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춰 주면서 승승장구 하게 된다. 아랫사람을 깔보면서, 윗사람의 비위를 잘 맞춰 주고 있는 박상준의 이미지는 드라마 미생에 등장하는 박과장과 같은 인물이다. 


뛰는 놈위에 나는 놈이 있다 하던가. 손창환이 뛰고 있다면, 박상준은 날아다닌다. 비리와 비위를 밥먹듯 하다시피 했던 박상준은 시금고나 다름없는 은행 돈을 자기 돈처럼 쓰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반면 손창환은 일반 은행원으로서 묵묵히 일하는 평은행원이다. 내부고발자로서 박상준이 저지른 일이 들통나지만, 박상준은 미꾸라지 마냥 요리저리 잘도 빠져 나온다. 가해자가 법적인 처분을 받지 않고, 도리어 정의로운 일을 한 손창환이 가해자가 되어서 구속되면서, 주변 사람들은 박상준의 처세술에 혀를 내둘리고 말았다. 사회 곳곳에 수많은 비리가 있음에도 침묵이 강요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박상준과 같은 미꾸라지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의 헛점을 철저히 악용하는 존재감, 박상준은 이 소설에서 소시오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손창환의 몰락. 2년간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지만 손창환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철저히 타락할 수 밖에 없는 손창환은 정신 차리고 다시 택시업에 뛰어 들었으며, 7년간 몸담았던 택시업, 2017년 어느날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에 지긋지긋한 박상준과 다시 만나게 된다. 20년 뒤 다시 만나게 된 박상준을 죽이고자 하였던 손창환은 박상준 주변인 기웃기웃 거리고, 택시를 그만두게 된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손창환은 역부족이었고 순진하다. 박상준은 손창환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으며, 손창환을 이용하려 했다. 20년동안 계획던 모종의 범죄, 그 범죄는 완전 범죄여야만 했다. 완전범죄를 꿈꾸기 위해서 빅상준이 계획한 범죄에 대해서 가해자는 박상준이 아닌 손창환이어야만했다. 모든 것이 박상준이 의도한 대로 움직였고, 손창환은 착각하고 있었다. 엠제이를 납치하고 박상준을 죽이기로 마음 먹었던 손창환은 처음부터 하나 둘 아귀가 딱딱 들어맞기 시작한다. 50억을 준비하면 박상준의 딸 엠제이를 풀어주겠다는 그 약속에 대해서 돈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들은 그것에 응하게 된다. 박상준이 하나에서 열까지 기획한 범죄 시나리오 안에는 손창환이 있었고, 엠제이가 있었으며, 박상준과 결혼한 화훼단지 여사장이 있었다. 50억의 돈은 박상준의 의도대로 손창환의 손에 쥐어지게 된다.


이 소설을 보자면 거미와 거미줄이 생각났다. 거미는 박상준이었고, 거미줄에 걸린 이들은 손창환과, 엠제이 신문정,박상준의 아내이면서 부자였던 신미나가 있다. 거미는 거미줄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거미줄에 걸린 먹이는 자유롭지 못하다. 꼼짝없이 거미에게 당한 먹이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거미를 잡아 먹어야 한다. 하루 아침에 납치범이 되어서 박상준을 죽이고자 했던 손창환이 도리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서 손창환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불보듯 뻔하다. 함께 죽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억울한 누명을 써야 했던 그 진실이 밝혀지는 것, 그것이 이 소설에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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