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 한현민 이 사람 시리즈
김민정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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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이 검다는 것은 또래 아이들보다 몸무게가 아주 많이 나간다거나 키가 아주 작은 것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살은 뺄 수도 있고 찔 수도 있었다. 키는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었다. 무럭무럭 클 수 있는 시간이 어린 그들에겐 충분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피부색은 달랐다. 자주 씻는다고 해서 검은 것이 하얗게 변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비싼 비누를 사용해도 얼굴은 그저 깨끗해질 뿐 다른 아이들처럼 아이보리 빛 살결이 되지 않았다. 노력과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블랙은 블랙이었다. (p22)


어릴 적 생일 선물로 받았던 24색 크레파스에는 살색이 있었다. 빨주노초 파남보처럼 살색도 크레파스 색 중 하나라 생각하였고,'살색'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의문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 머물러 있고, 한글을 사용하니까 살색은 그냥 살색이었고, 황인종을 나타내는 표준화된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히 인종차별이다. 한국인들에게 살색을 크레파스에 나오는 색 그대로이지만, 흑인이나 백인, 그리고 남미 국가들에게 살색은 다른 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색은 살구색으로 대체되었다.


한국인 한현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살색인데, 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엄마와 같은 색깔의 피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걸까,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글을 사용할 줄 아는데, 왜 세상 사람들은 나를 이방인 취급하고, 까만애, 마이콜이라 부르는걸까에 대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된다. 한현민에게 주어진 한국인이라는 타이틀이 상당히 불편한 존재였고, 주변의 인종차별적인 언어에 대해 감내하고, 견뎌야 했다. 2001년생 한현민은 초등학교 때 야구를 좋아하였고 야구선수가 꿈이었지만, 돈이 없어서 꿈을 포기해야 했던 한현민의 두번째 꿈은 축구였다. 하지만 축구도 한현민이 누리기엔 그 꿈을 펼치는 건 사치였다. 자신의 피부와 돈이 어린 한현민에게 있어서 발목잡는 요소였다.


하지만 한현민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보다 성장속도가 빨랐던 한현민은 어느새 성인과 같은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전단지 알바를 하면서 벌었던 돈으로 부모님에게 선물을 샀던 한현민은 착한 아들이었다. 한현민이 가지고 있는 꿈의 크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위축되거나 수축되지 않았고, 점점 더 커져갔다. 우연히 보게 된 패션 위크, 그곳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는 걸 일치감치 깨닫게 되었고, 자신을 P.R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는 냉혹하고 잔혹하다는 걸 어린 한현민은 미처 알지 못하였다. 한현민이 가지고 있는 이질적인 한국인의 모습은 돈을 가진 자본가들에게 먹잇감이었다. 한현민이 가지고 있는 꿈과 열정을 돈으로 바꿔 가려 했던 자본가들은 한현민에게 사기를 두번이나 치게 된다.하지만 한현민은 자신이 당했던 억울한 상황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였다. 자신이 의지해야 하는 부모님 조차도 말이다.자신이 당했던 것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면 자신의 꿈이 꺽일까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세번째 드디어 한현민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두번의 사기로 인해서 돈을 받지 못했지만 사진은 남아있었다. 한현민은 SNS 에 자신의 사진을 올렸으며, 그것이 패션 종사자에게 눈에 들어왔다. SF 엔터테인먼트 윤범 대표와 한현민의 만남, 한현민은 이번이 세번째 였기에 윤범의 제안에 대해 반신반의 하였다.밀라노에 대려다 주겠다 하여서 한현민이 가지고 있었던 30만원을 갈취했던 한국인이 윤범 대표의 모습과 교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범은 현실적인 제안을 한현민에게 한다. 서울 패션 위크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안한 것이다. 가능성은 있었지만 한현민은 여전히 씨앗에 불과했다. 체격은 패션모델에 준하지만, 팔자걸음을 하고 있었던 한현민은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그것부터 고쳐야 했다. 한현민은 윤범 대표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길을 걸어가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현민의 엄마의 모습이 아른 거렸다. 항상 언제 어디서나 한현민은 주목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항상 사람들에게 '웨얼 아 프롬'이라 물어본다면 그들에게 한현민이 내놓을 수 았는 답은 미국, 아프리카, 밖에 없었고, 한국인은 선택지에 없었다. 하지만 엄연히 한현민은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었다. 그것은 질문을 던진 이들에겐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그들이 가지고 잇엇던 상식이 한현민의 입장으로 보자면 무례하였고, 공격적인 행동이었다. 한현민의 엄마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아들이 어려서 부터 받게 되는 많은 갈등과 혼란, 상처들, 아들이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서 한현민의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쿨해지는 것이었다. 아들이 할 수 있는 게 있었고, 엄마가 할 수 있는 게 따로 있었다. 한현민이 해야 할 일을 엄마가 대신 해 줄 수 없었다. 첫 월급으로 빨간 스타벅스 컵을 내밀 때 그 순간이 상상된다. 한현민의 엄마는 마음 속으로 울었을 것 같다. 속상했지만 내색할 수 없었고, 한현민 또한 자신에게 처해진 현실을 엄마에게 토해내지 못했다. 그것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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