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공책 - 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한 기억의 레시피
이성희.유경 지음 / 궁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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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의 반복,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일의 반복은 초기 치매의 주요 증상이다.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하는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가스를 제대로 잠갔는지 안 잠갔는지, 선풍기를 껏는지 안 껏는지, 불안하고 자신이 없는데다가 실수를 몇 번 한 적이 있어 비정상적일 만큼 확인을 반복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점점 이런 일이 많아지는데도 여전히 나이 탓을 하거나 요즘 너무 바쁘고 생각할 게 많아 뇌에 과부하가 걸려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달래주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해야 한다. (p24)


그 때는 알지 못했고 준비되지 않았다. 내 주변에 치매에 걸린 분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일이 내 일이라 생각해 본 적은 그동안 없었다. 하지만 그 일이 내 일이 되었다. 외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셨고, 그로 인해 그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이 이해가 갔다. 돌아가신지 몇년이 지났지만 그 때의 순간이 나는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이웃집에서 넘어오는 덩쿨에 대해 유난히 짜증을 내고 욕을 하던 그 모습,그건 분명 외할머니의 본모습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서 성격이 이상해진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치매라는 걸 요양 병원에 할머니를 모실 그 쯤에 알게 되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려면 몸이 거동하기 힘들정도로 아프거나 치매에 걸린 경우에만 해당된다.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외할머니는 그만 넘어지시고 말았다. 그런 모습은 내 생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무섭고 철두철미하고, 때로는 이웃에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외할머니의 모습, 시골 이웃들이 모이는 마을 앞 정자에 나오지 않고 집 앞 마당에서 밖을 내다보기 시작할 때 눈치 챘어야 했다.나이가 들면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어두워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책에는 내가 겪었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물론 가스불을 끄거나 지하철에서 길을 잃는 일은 없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문제적인 행동은 치매와 연결되었다. 그렇게 넘어지고 골절로 인해 병원에 급하게 모시고 난 뒤 치매 진단이 내려졌으며, 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외면한다. 우리는 암이나 다른 불치병에만 신경 쓰고 살아간다.그런데 특별한 병이나 사고 없이 나이가 들면 반드시 치매가 걸리게 된다. 뇌에 병이 생기는 증상, 치매에 대해서 외면하는 것보다 준비하는게 우리에게 필요하다. 준비하려면 배워야 하고, 치매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의 의료기술로는 치매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떠나야 하는 운명, 상실로 인해 생겨나는 마음의 고통,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 소중한 사람이 떠나게 되면 , 남아있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분노하게 되고 원한하고 슬퍼하고 우울해진다. 나는 그걸 충분히 겪었고 느꼈다. 죽음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 내 기억의 한 페이지가 지워질 수 있다는 걸 나는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구절 하나 하나 공감가고 이해가 갔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환자를 돌보는 경우 가족을 포함해 기존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칫 고립되기 쉽고 그러다보면 외로움과 소외감 속에서 돌보는 사람도 치매환자도 병이 깊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주돌봄자가 아무리 잘하고 있고 스트레스를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해도, 옆의 가족들은 그의 마음을 헤아려 부담을 줄여주면서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도록 도와야 한다. 치매환자 돌봄이 가족 불화와 가족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끝내는 가족 해체를 가져오기도 한다.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서로 짐을 나누어지지 않은 모두의 잘못이다. 치매환자는 '병'에 걸렸을 뿐 죄가 없다.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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