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라이터
사미르 판디야 지음, 임재희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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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는 소설가 아닐 트리베디가 있었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15편의 소설과 회고록, 그 외에 작가의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책들을 써내게 된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작가로서 살아가는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는 자신의 손과 발, 눈이 되어줄 사람이 충분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가로서의 명성은 수많은 작가 지망생을 불러 들일 수 있기에 충분하였다. 그 중에 한명 라케시가 있었다. 인도 상류층 출신으로 미국에 건너온 라케시는 대학원생으로서 아닐의 눈이 되어서 아닐이 읽고 싶은 책들을 대신 읽어 주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라케시가 아닐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구연동화를 읽어주는 범위를 훨씬 뛰어 넘는다. 그래서 아닐에겐 책을 읽어주는 것 뿐 아니라 수준 높은 교양지식이 필요하였고, 아닐이 알고 싶은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책을 또박 또박 읽어주는 거라면 아나운서가 라케시보다 더 정확하게 읽어줄 거다. 하지만 아닐의 직업은 소설가이며, 글쓰기를 밥벌이로 하고 있다. 자신의 소설의 주제가 될 영감이 되는 걸 얻고 싶었고, 그걸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재목으로 라케시를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물론 여성이 아닌 남성을 불러들인 건은 아내 미라 트리베디의 요구조건이었으며, 자신이 집을 비우더라도, 아닐에게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게 미라의 또다른 조건이었다. 아닐에게도 불안이 있었고, 미라에게도 또다른 불안이 현존하고 있었다. 아닐과 미라는 26살의 나이차이였으며, 그것이 24살 라케시의 마음을 흔들게 된다.


처음 몇 분간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빨려 들어갈 듯 키스에 몰입했다. 그런데 내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몰라 안절부절 못했고 이건 일회성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는지 미라의 어깨에 걸쳐 있던 내 손이 그녀의 가슴께로 스르륵 내려갔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미라의 옷 아래 가려진 몸을 힘겹게 바라보고 있었고 어디서든 그 모습을 떠올렸다. (p110)


아닐은 눈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어린 시절 부모님에 의해 후천적으로 세상이 보이지 않았고, 자신이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세상은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 전부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들을 가능하게 해 준다. 처음 라케시가 아닐의 집에 들어오면서 미라와 처음 만나는 그 순간 느겼던 정욕은 넘어서면 안되는 선을 넘게 된다. 아닐에 있는 공간에서 아닐과 미라는 서로 스킨십을 하였고, 레베카는 자신의 행동을 아닐이 모를 거라 생각하였다. 이 소설에서 또다른 주제는 성욕을 내포하고 있으며, 맹인은 성욕이 없다는 우리의 편견을 그대로 무너트리고 파괴한다. 아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 미라를 유혹하였고, 두 사람은 결혼하였다. 힌두교의 여신 시타를 연상하게 되는 미라의 아름다움이 아닐을 사로잡았고 라케시를 사로잡았던 것처럼 늙은 소설가 아닐에겐 언제나 불안이 감춰져 있었다. 작가로서 대중의 명성을 얻고 있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그 순간 자신은 힘없는 늙은 소설가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닐이 끊임없이 소설을 쓰고 회고록을 남기는건 그런 대중들과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력과 명성읗 활용해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고,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이 소설에는 아닐의 마음 언저리의 불안과 외로움의 실체에 대해서, 작가로서 성공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그건 눈이 보이지 않는 작가가 쓴 회고록은 대중들아 관심가지고 읽어주지만 눈이 보이지 않은 작가들이 쓴 회고록에는 크게 관심 가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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