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혁명의 맛 - 음식으로 탐사하는 중국 혁명의 풍경들
가쓰미 요이치 지음,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2015년 1월
평점 :
혁명에 필요한 매운 맛. 이 귀절을 보며 한국 축구를 이기기 위해, 또는 한국처럼 운동 경기에서 의지를 다지고자 매운 김치나 고추를 먹는 일본 운동 선수가 떠올랐다. 마오쩌둥도 쓰촨의 매운 맛을 혁명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맛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책의 내용은 맛을 초점으로 둔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혁명 전후를 맛의 변화로 바라본 시도가 상당히 신선했다. 사실 맛만 놓고 보면, 기술할 내용이 너무나도 많아 이 책의 두께로 감당이 안 되었을 것인데, 역사를 아우르며 맛에 대한 기술을 축소 압축해 지루하지 않고 의미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중국 혁명기에 발생한 맛에 대한 중국인의 압제는 정말 끔찍하다. 밥을 먹는데 마오쩌둥 어록을 암송해야 불순분자로 낙인찍히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그 맛도 싱겁고 전혀 미각적 쾌감이 없었다고 한다. 식사 앞에서 무엇을 암송하거나 주절대는 건 종교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너무나도 싫어하는 까닭에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인의 답답함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맛은 중국의 권력과 민족 혼합의 역사를 통해 점차 발전했고, 현재와 같은 다양성을 폭발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광동요리라고 하면 누구나 감탄을 할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프랑스와 견주어도 당당하다고 평하는 중국 요리를 저자는 일찍이 맛보았고, 당시 레시피를 원론적으로 따른 정통 요리를 실컷 맛볼 수 있었을테니 상당히 즐거웠으리라 예상한다. 음식 탐사는 누구나 해보고 싶은 일이지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저자처럼 역사를 얹는 각고의 노력이 없으면 그저 누구나 써내려가는 블로그 맛집 탐방정도에 그칠 것이다. 맛평론가들이 기술하는 내용도 그다지 와닿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넓게 보는 역사의식 없이 그저 그 지역에 대한 소개가 배경지식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혁명의 맛은 그런 점에서 혁격히 다른 지위를 지닌 책이다. 서태후의 등장, 상어지느러미 요리, 궁중의 맛 봉쇄 작전, 청나라 시대, 혁명에 의한 중국 전역의 변화 등을 먼저 알고 난 후에 맛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왜, 어떻게 에 대한 설명을 스스로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의 맛도 너무나도 쓸 게 많을 것이다. 한국전쟁, 일제식민치하 시대, 조선 시대 등을 관통하는 맛과 역사는 흥미로우리라 예상한다. 가쓰미 요이치의 평론가적 감각이 잔뜩 담긴 혁명의 맛을 읽으며 역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