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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하는 일
조지프 엡스타인 지음, 권진희 옮김 / 사람in / 2024년 10월
평점 :
이 책 『소설이 하는 일』은 표제어처럼 소설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사유와 탐구의 담론이다. 과연 소설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 영향은 무엇일까? 일반 소설 독자들은 당연히 '흥미' '재미' 등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학문도 아닌 소설이 재미마저 않다면 공책에 까만 활자만 잔뜩 들어 있는 소설책을 읽을 이유가 별로 없을 터다. 학문은 자신이 알고 싶은 분야의 지식을 함양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니 나중에 직업으로 삼아도 이른바 '밥 벌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은 밥 벌이용으로 선택한다면 아예 잘못 된 선택이다. 소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누구나 소설가가 되기는 힘들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문호쯤 되면 몰라도 소설가가 소설만 써서 밥 벌이가 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책의 저자 조지프 엡스타인은 첫 페이지에서 미국 제3대 대통령으로 재임한 토머스 제퍼슨이 같은 시대의 너세니얼 버웰에게 보낸 편지글을 인용했다. "좋은 교육에 있어 큰 장애물은 널리 퍼져 있는 소설에 대한 과도한 열정, 그리고 교육적으로 활용되어야 마땅한 그 독서 과정에서 낭비하는 시간이다. 이 독이 마음을 감염시키면 이는 소설의 격조를 파괴하고 건전한 독서에 반항하게 만든다. 소박하고 꾸미지 않은 이성과 사실은 거부된다. 그래서 화려한 것들로 치장하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주의를 끌 수 없고, 그 어느 것도 성에 차지 않는다. 이 경우 비대해진 상상력, 병약한 판단력과 현실의 모든 일에 대한 혐오감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이 쓰레기 덩어리 또한 교훈을 주는 법인데,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몇몇 소설 속 서사는 현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고 건전한 도덕성을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p.6)
소설의 유용성을 설명하는 듯한데 너무 '좋은 교육'의 재료로 끌고 들어가 꽤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바람에 독자 개인적으로는 정확한 지적이라고 말하기에는 거리낌이 있다. 오히려 옆 페이지에 쓰인 소설가 D. H. 로렌스의 「소설은 왜 중요한가」(1936)란 제목의 에세이가 훨씬 직접적인 설득력 있어 공감하기 쉽다. 에세이의 한 센텐스가 인용되어 있다. "나는 살아 있는 인간이다. 가능한 한 계속 살아 있는 인간으로 남을 생각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소설가다. 소설가이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이 성인과 과학자, 철학자, 시인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모두 살아 있는 인간의 각기 다른 부분의 훌륭한 대가이지만, 전체적인 완전함을 절대로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p.7)
저자 엡스타인은 이 책에서 "우리는 모두 소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장을 덮고 난 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소설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뭘까? 심지어 인생의 다른 시기에 또다시 읽고, 새롭게 감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세르반테스, 제인 오스틴, 레프 톨스토이, 찰스 디킨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조지 엘리엇, 로베르트 무질, 윌라 캐더 등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을 예로 들어가며 우리가 위대한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상세하게 풀어낸다. 또한 소설이 우리의 세계를 얼마나 크고 웅장하게 만들어내는지 자신만의 언어로 생생하게 밝히고 있다.
엡스타인은 먼저 훌륭한 작가들의 소설을 읽을 때 우리 내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에 대해 사유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에 공감하고, 이야기에 정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넘어서서 또 다른 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롤리타』의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독자가 소설의 저자와 ‘동일시’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즉, 소설가가 왜 이런 문장을 썼는지 의문을 품으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소설을 더욱 깊고 명확하게 이해하게 됨으로써 소설가가 누린 ‘창작의 기쁨’을 다시금 누리게 된다고 말한다. 이뿐만 아니다. 인생의 다른 시기에 ‘다시 읽기’를 시도함으로써 소설의 가치는 계속 재평가된다.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가 고전을 “아무리 읽어도 끝나지 않는 책”이라고 묘사한 것처럼 말이다.(p.21)
이 책 『소설이 하는 일』은 모두 1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소설은 인간의 내면을 관통한다」, 2장 「다른 나이에 다시 읽는 소설」, 3장 「소설이 독자의 마음에 남기는 것」, 4장 「플롯, 등장인물의 운명에 빠져들다」, 5장 「현실이라는 새를 가두어 놓은 새장」, 6장 「인간 본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7장 「등장인물만이 아니라 독자도 변한다」, 8장 「사실을 생각으로 바꾸는 것」, 9장 「소설의 스타일이 주는 기쁨을 넘어」, 10장 「 더욱 크고 웅장한 세계」, 11장 「인간 경험의 풍부함에 대한 탐구」, 12장 「상상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13장 「소설의 적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진실」, 14장 「위대한 소설을 거듭 읽어야 하는 이유」, 15장 「다시 읽기를 위한 작품 목록」, 16장 「소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슬픔」, 17장 「진지한 소설은 올바른 질문을 한다」, 18장 「우리는 모두 소설이 필요하다」 등이다.
1장 「소설은 인간의 내면을 관통한다」에서 저자는 이 책의 〈서문〉 성격의 주장을 꺼낸다. 소설의 속성, 기능, 역할을 모두 포함한 말이다. "어떠한 문학 형식도 소설처럼 독자의 정서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동일시라는 개념, 소설의 구성과 행위에 대한 이러한 참여야말로 틀림없이 많은 독자, 특히나 젊은 층이 소설에서 깊은 즐거움을 찾는 이유다. 고유한 매력을 발산하는 소설이라는 장르는 문학적 동일시라는 감정 이상을 선사한다. 타 문학 형식과 달리, 소설은 문학은 물론 다른 어느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종류의 사실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는 바로 이 사실에 대해 관해 이야기해보겠다.(p.16)
2장 「다른 나이에 다시 읽는 소설」에서는 고전 문학 혹은 위대한 작품의 '다시 읽기'에 대한 이야기한다. 흔히 말하는 '재가독성'을 다루는 것. 1978년에 출간된 훌륭한 에세이 「책읽기에 대하여: 야만인의 사고」에서, 당시 노동경제학자로 하버드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알렉산더 거센크론이 '좋은 책(소설 카테고리도 포함)의 기준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그는 "좋은 책이란 ① 흥미롭고, ② 기억에 남을 만하고, ③ 다시 읽고 싶게하는 책이어야 한다."라고 썼다고 저자는 전한다. 이 문제는 독자 역시 며칠 전 읽었던 『데미안』의 재독 후 남긴 소감에서 언급했었다.
이 독후감에서 독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정말 오랜만에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고전문학은 언제 읽어도 감동적이란 사실을 재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헤르만 헤세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시대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하고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독자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다. 자신과 세상 사이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이들에게, ‘나를 찾는 여정’을 함께 걸을 것을 권유하는 헤르만 헤세의 목소리가 담긴 듯하다. 더욱이 새로운 현대 감각의 삽화는 작품의 의미를 오히려 반감시킬 수 있다는 독자 개인적인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다. 오히려 더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심미안이 생겼다는 묘한 만족감도 준다. 독자들은 『데미안』과 함께 자신의 내면을 새롭게 발견하는 감동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햇수로 정확하게 헤아리지는 못하지만 독자가 『데미안』을 다시 읽는 게 20년은 훌쩍 넘은 것 같다. 청춘 시절에 읽은 것과 중년에 접어들어 읽는 『데미안』의 감동은 전혀 변색되지 않았다. 그때는 주목하지 못했던 단어나 문구들이 이제는 현실적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청춘을 지나, 사회에서 풍파를 거쳐 이젠 중년에 접어들어도 고전문학의 가치는 시대성을 뛰어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만 그때 소설의 내용에 감동과 함께 마음과 몸이 따라 움직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나'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감이 있어 아쉽기도 했다고 느낌을 적었었다.
저자는 이 장(章)에서 재가독성은 소설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제시한다. 또 재가독성은 진지한 소설의 복잡성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언급한다. 가령 이런 제대로 된 진지한 소설은 같은 책이라도 책을 읽는 나이에 따라 때로 다르게 다가온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젊은 시절에 존 더스패서스의 3부작 『미합중국』(『북위 42』와 『1919』, 『지금』)을 읽은 후에 받은 충격을 절대 잊을 수 없다고 의견을 내놓는다. 비슷한 시기에 읽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처음 읽었는데, 이 소설 또한 그저 감탄 그 자체였다고 말한다. 저자의 독서 취향에 따라 감동이 크거나 작을 수 있을 것이지만 저자 자신이 이 소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할 즈음에 다시 읽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이 소설이 완독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것과 더불어 책에 등장하는 지적 허세와 반유대주의적인 묘사 부분에서 웃음의 포인트와 불편함을 느끼는 포인트가 이전과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저자가 기꺼이 다시 읽기를 한 소설가를 꼽았는데 대부분 우리 독자들도 잘 아는 소설가들이다. 이른바 고전문학이라고 평가되는 작품들을 많이 쓴 작가들 군이다. 톨스토이, 프루스트, 오스틴, 조지 앨리엇, 안톤 체호프, 요제프 로트, 맥스 비어봄, 캐더, 이디스 워튼 등 앞 부분의 작가들이고 뒤에 미국 작가들을 추가하고 있다.
3장 「소설이 독자의 마음에 남기는 것」에서는 소설이 저자의 마음속에 남긴 것은 내 인생을 넓히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훌륭한 여인들』, 『축복의 한잔』이 어떤 소설인지 지금 이야기해보라면 할 말이 없다는 저자는 도스토옙스키처럼 간질을 앓는 순박한 성격의 주인공이 미시킨 공작이 전부란 말도 한다. 이와 함께 자신이 읽은 훌륭한 소설 중에 플롯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작품이 훨씬 더 많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장을 마련한 것이다. "플롯이 잘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소설을 읽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너무나 매력적인 주인공의 삶에 대한 중요한 디테일을 자세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수많은 소설(『백치』는 두 번이나 읽었다)을 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마음속에 남긴 것은 저자의 인생을 넓히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나폴레옹전쟁에 관한 역사서를 여러 권 읽은 저자는 톨스토이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전쟁과 평화』의 전투 부분을 읽으면서, 사상자 수를 집계한다거나 전략을 짜고 지정학적 중요성을 따져보는 것과 같은 사실적인 역사 기록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큼 19세기 말 프랑스를 일컫는 '벨 에포크'(대부분은 이름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은 시기였지만)를 잘 묘사한 작품을 없을 것이라고도 밝힌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지식(운이 좋으면 지혜로움까지)은 역사나 전기, 과학, 비평, 학문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얻는 지식과 다르다고 저자는 이 장에서 역설한다. 첫째, 소설에서 얻는 지식은 덜 정확하다. 둘째, 소설 바깥세상에서는 소용이 없다. 최고의 소설이 제공하는 지식은 열거할 수 있는 지식도, 엄격한 시험을 전제할 수 있는 지식도 아니다. 덜 제한적이고 더 넓고 더 깊은 소설의 주제는 인간 존재 그 자체이며, 아주 각양각색으로, 가끔 혼란스러우면서 겸허한 형태를 갖춘다. 훌륭한 소설을 읽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교육에 관한 최고의 정의와 궤를 같이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시인이자 이튼칼리지 지도교사였던 윌리엄 존슨 코리(1823~1892)가 남긴 '교육'의 정의를 인용해 보여준다.
"당신이 훌륭한 학교에 가는('당신이 훌륭한 소설을 읽는'이라고 쓰고 싶다) 이유는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과 습관을 배우기 위함이다.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 표현의 예술, 새로운 지적인 지위를 순간적으로 성취하는 기술, 타인의 생각 속으로 재빨리 들어가는 기술, 비난과 반박에 복종하는 습관, 점진적인 용어로 찬성이나 반대를 표현하는 기술, 정확성의 미세한 부분을 고려하는 습관, 주어진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기술 그리고 취향, 구별, 용기, 냉철한 정신 말이다.(p.32)
내가 생각하기에 톨스토이는 최고의 소설가이자, 아마 모든 시대와 장르를 통틀어서 가장 훌륭한 작가다. 그가 만든 모든 인물은 살아 숨 쉬고, 그가 집필한 모든 소설과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도입부는 독자를 끌어들이고, 결말은 절대 독자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으며, 도입부와 결말 사이에 있는 모든 디테일은 지속해서 독자의 관심을 끈다. 소설 속 지루한 부분(가령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역사 부분)조차 흥미롭다. 톨스토이의 책을 한번 읽으면 다른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p.171)
이 책의 원제인 ‘소설, 누구를 위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우리 모두가 소설을 필요로 한다. 심지어 소설을 읽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소설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례 없는 산만함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소설이 필요할지 모른다.(p.214)
저자 : 조지프 엡스타인(Joseph Epstein)
야망, 우정, 시기, 가십, 이혼 등을 다룬 책 30여 권을 집필했다. 명예 학술 협회인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아메리칸 스칼러American Scholar》의 편집인으로 활약했으며, 노스웨스턴대학교 영어과에서 30년간 교편을 잡았다. 《뉴요커The New Yorker》, 《코멘터리Commentary》, 《뉴 크라이티리언The New Criterion》, 《타임스 문예 부록Times Literary Supplement》, 《클레어몬트 리뷰 오브 북스Claremont Review of Books》, 《뉴욕 리뷰 오브 북스The New York Review of Books》, 《포에트리Poetry》 등 수많은 잡지에 기고한 바 있다.
역자 : 권진희
영어·프랑스어 번역가. 미국 몬트레이 통번역대학원과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각각 한영과, 한불과 석사 과정을 졸업한 후, 현재 유럽에서 전문 한영불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글의 힘을 믿는다. 해외 저자와 한국 독자 간의 만남에서 소통자 역할을 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