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아래 고민에 답변 드립니다 -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명쾌한 처방
우에노 지즈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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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사히신문 토요판의 인생상담코너 <고민의 도가니>에서 네명의 상담자 중 한명으로 활약한 우에노 지즈코의 답변을 모은 책이다. 평소 다정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고 논쟁에 강하다는 우에노 지즈코 선생이 인생상담이라니, 상담을 의뢰한 사람이 도리어 상처받는 것 아닌지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뻔하디 뻔한 인생상담에 그녀가 뭐라고 대답할 지도 기대가 되었다.

사실 책을 읽어보면, 책 제목인 '허리 아래 고민'들도 등장하지만 그건 일부일 뿐이고, 대체로 인생 전반에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상담이 더 많다. 나라면 어떻게 대답해주었을까 상상해보고 우에노 지즈코의 답과 맞춰보면서 읽었는데, 글쓴이 후기를 보니 그러기를 바랐다고 하더라. 나도 모르게 글쓴이의 의도에 충실한 읽기를 했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남의 인생에 대해 상담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리고 (상담기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글쓴이도 그리 좋은 상담자는 아닌 것 같다는 것.

상담이라기보다는 개성 강한 그녀가 특정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담 형식으로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하며 읽으면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겠다.

글쓴이는 신랄하고 시니컬하게 답할 때도 있지만(진심으로 답하는 거냐고 묻고 싶은...) 어떤 때에는 다정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의뢰인을 혼내기도 한다.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젠더, 요양보호 등)에 대해서는 더 진지한 답변을 하는 편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맞이한 결과로 고민하는 의뢰인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인생에서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므로. 그 대신에 선택하지 않은 불행(부모의 학대 등)에 대해서는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편이다. 어떤 때에는 겪어보지도 않은 일에 너무 냉정하고 쉽게 말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은 제3자이니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더 객관적으로 사안을 판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불륜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불륜'이 아니라 '혼외연애',라고 하여 일견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평생 한 사람에게만 자신의 육체에 대해 배타적 성적 권리를 부여하는 결혼'계약'을 한 것이니 그 계약 상대방인 배우자에게 허락을 받든지 계약을 파기(이혼)하든지 책임있게 행동하라, 그 대신에 배우자가 똑같이 행동하는 것도 받아들여라, 혼외 연애로 치르는 대가도 받아들이라는 정도의 조언이니, 불륜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건 아닌 것 같다. 근대 가족의 성립과 종언을 논하고 애초에 결혼계약의 준수 가능성(따라서 그 계약으로 맺어지는 관계 자체)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며 비혼을 선택한 그녀에게는 자연스러운 논리의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논란의 '소노 아야코'(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에세이로 서점에서 본) 씨는 이 책에도 등장하는데, 일본의 한 정치인이 선거운동원이던 여대생을 성희롱해서 문제가 되자, 소노 아야코가 신문 칼럼에 '그 자리에서는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으면서 나중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여성의 어리광'이라고 쓰고 그 여대생이 수상하다고, 왜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았냐며 나무랐다는 이야기다. 와우. 이래저래 논란이 될 법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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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지는 중입니다
안송이 지음 / 문학테라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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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손을 맞잡은 선물이, 아이와 함께 응급실에 갔던 일, 옆집의 정원관리 마니아, 몽블랑 만년필에 얽힌 과거와 현재, 미래, 스웨덴에서 만난 친구들 이야기, 지독했던 시간들과 거북이와의 헤어짐 그리고 S와의 만남, 타국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들, 자기의 속도로 성장해나가는 선물이, 모든 따뜻한 말들이 의미 그대로 남아, 아이를 회사에 데려와도 되는 스웨덴의 직장문화, 피카 타임, 명절같은 하지, 친구였던 H 이야기, 계속 투덜거리는 것이 폴란드식 관계맺음 방식이고, 함께 고통받는 것이 러시아식 관계맺음 방식이라면 같이 음식을 나누는 것은 우리나라의 관계맺음 방식이리라, 엄마처럼.

처한 상황도, 장소도 다르지만 공감과 위안을 가져다주는 책이었다.

마흔이 넘으니 삶에 대해 그전과는 다른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냥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가야겠다는. 정말 인생은 짧고, 빨리 지나가고, 어떤 때는 이게 다인가 싶다. 지금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도,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내 생에 없을 일들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마음을 잡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나 자신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어떻게 정직하고 싶은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묻고 그에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언제부터 나는 진실된 사람이고 남의 진실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걸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분명히 괴로운 경험을 했고,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것이 또 다른 사람을 근본적으로 믿지 않으면서 대해 상처 입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타인의 선의를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렇게 설명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말함에도 불구하고 이해라는 건 멀었구나 싶을 때 가슴 한 구석이 서늘했다.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린 왕자>의 여우가 말했다.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지나와 깨달으면, 그때 관계는 이미 달라져 있다.
...
믿지 않는 사람에게 어떤 말로도 나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는 걸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걸.
...
중요한 건 해야 할 이야기를 다 나누는 것이다. 그런 관계에서는 그립다는 말 대신 시간이 지나갔다는 말 한마디로도 그 뒤에 있는 긴긴 사연의 그리움을 다 느낄 수 있다. 이제야 알았다. 한 관계가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 어떤 것도 이야기할 수 있고, 어떤 말도 할 필요 없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건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항상 엄마 보기에 맞는 말이어서 엄마가 이해했던 게 아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인정했고 이해했다.
...
살다보면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 아픔 속에서 깨달았다. 공통된 경험이 꼭 이해를 부르는 건 아니라는 걸.
이해는 사랑이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 한가운데 나는 내가 S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유는 그가 항상 나의 선의를 믿었고,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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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첫 번째 에세이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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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홍당무를 너무 재밌게 본 터라 이 에세이도 처음부터 기대했고 역시 기대만큼 재밌었다.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은 이야기도 참 재밌게 잘 하는구나. 글을 읽다보면 글쓴이에게서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이 보인다. 특히 빵집에서 아저씨한테 소리지르는 장면은 홍당무에 들어갔어도 어색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경미 감독을 여자 박찬욱이라고 하는 말도 있던데. 에세이에도 박찬욱 감독 얘기가 종종 등장하고. 하지만 난 박찬욱 감독 영화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경미 감독 영화는 좋아하니 좀 결이 다른가 싶기도 하고.
8년만의 후속작 “비밀은 없다”의 흥행저조 이야기를 들으니 그 영화를 안 본 게 괜히 미안해지기는 하지만...앞으로도 기대할게요. 조금만 더 열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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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 몸도 마음도 내 맘 같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본격 운동 장려 에세이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지수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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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중년 사이 그 어중간한 나이가 되니 운동을 장려하는 책들이 유독 눈에 띈다. 이 책은 가쿠타 미쓰요의 운동에세이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장려하는 책 말고 은근히 사람을 부추기는 운동 에세이 정도가 나에겐 적당하다.

작가란 모름지기 책상 앞에 앉아 사색과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고만 여기기 쉽지만, 사실 하루키나 김연수처럼 운동을 즐겨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들도 찾아보면 좀 되는 것 같다. 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건 마찬가지라, 글도 잘 쓰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이들이 생경하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몰랐는데 가쿠타 미츠요도 운동을 열심히 하는 작가였나보다. 작가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는데 책을 읽어보는 건 처음이다. 하필 첫 만남이 운동에세이. 소설을 먼저 읽어보았다면 그 갭이 더 재밌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 책은 좀 독특하다. 40대에 튼튼한 마음을 갖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매주 주말마다 달리기를 한다는 그녀는, 운동을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풀코스 마라톤을 몇 번이고 뛴다. 이게 무슨 츤데레인가 싶다. 나는 1분만 뛰어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 책을 읽다보면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별의별 운동을 다 한다. 트레일 러닝, 볼더링, 베어풋 러닝, 납량 마라톤 등등. 등산도 몇시간이고 한다. 여행을 가서도 러닝슈즈를 챙겨가서 10km쯤 달린다. 이쯤 되면 솔직히 인정하시지. 운동 좋아한다고. 본인은 아닌 척 하지만, 읽다보면 성실한 모범생의 기질이 느껴진다. 그녀는 여러 가지 운동을 하고 여러 코스를 달리면서 몸 상태를 느끼고 자신의 취향과 기분, 적성 같은 것을 생각한다. 네 번째 나하 마라톤을 뛰는 부분은 자기계발서 같기도 하다. "지칠 때는 지친다! 그러니 안 지쳤을 때 열심히 해야한다!"라니. 정말 오글거릴 법도 한데, 마라톤을 뛰면서 처절하게 몸으로 깨달은 진실이다보니 그렇게 오글거리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덩달아 동네 운동장이라도 한 바퀴 달리고 싶어지는 기분이 든다. 역시 운동을 부추기는 에세이가 맞다.

 

나는 아무래도 산길이 좋은가 보다. 나 자신도 몰랐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그렇게 좋은가?‘하고 의문이 들지만, 포장도로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다지도 기쁘다니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여기서 걸으면 자신에게 들킨다. 나만은 자신의 꾀를 알고 있다. 신은 잊어버릴지언정 나는 잊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다리를 계속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추추에 의지했다. 놀랍게도 추추 하나 먹었을 뿐인데 쓰러질 듯한 피로와 ‘걷자‘라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

우와, 뭔가 대단하다. 뭐가 대단하냐면 스스로 몸을 내던져 진실을 움켜쥐고, 그것을 바탕으로 힘껏 진실을 증명한 것. 지칠 때는 지친다! 그러니 안 지쳤을 때 열심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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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서점기행 (보급판)
김언호 글.사진 / 한길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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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보고 싶다.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들.
읽지 못하는 책이 태반이라도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 황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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