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내린다. 예보를 무색하게 만들며, 느닷없이


비가 내릴 때마다, 나는 성서에 나오는 대홍수를 떠올린다. 땅의 완전한 사라짐은 재생을 예고한다. 어쨌거나 우주는 폭발에서 탄생했다. 


나는 자주 읽고 들었다. 비는 깨끗하게 씻어준다고. 인도, 대로, 지붕 ... 가리지 않고. 공리적인 이 왜곡된 생각은 비를 쓰레기를 말끔하게 쓸어내주는 공공서비스와 동일시한다. 하지만 씻겨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 씻는다는 것은 단지 때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때는 우리가 살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 쌓인다. 


비의 아이러니. 우리는 쓰레기를 아득히 먼 곳으로 보내버린다. 인도나 코트디부아르 쓰레기매립장에서 삭은 그것들은 하늘로 올라가 구름 속을 떠돌다가 다시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진다. 


비는 어린 시절의 유전자들을 품고 있다. 우리는 호스로 물을 뿌리며 장난을 쳤고, 물웅덩이에서 폴짝폴짝 뛰었고, 신이 나 물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이젠 어른이 된 듯하기 때문에, 우리는 실수를 가장해 도랑에 발을 빠뜨리고는 짜증이 난 것처럼 연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튀는 물에 젖는 것은 우릴 즐겁게 한다. 바지, 양말이야 젖건 말건. 어린 시절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우리는 남몰래 지저분한 개구쟁이로 되돌아가는 것을 자신에게 허락한다.


원칙적으로 나는 소수의 편에 선다. ... 나는 비가 마음에 든다. 다수가 싫어하기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을 때, 사랑은 드물어진다. 아무도 착각하지 않는다.


비가 내리면 우리는 발아한다. 비옥함은 정신의 한 자질이다. 새싹, 떡잎, 생각들이 자라난다. 우리는 그 과일들을 수확한다.


우리는 비 때문에 무위로 끝나 수많은 전쟁을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비는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 


비를 눈물에 비유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 눈물은 슬픔과 상을 장식하지만, 비는 삶과 사랑을 동반한다.


나는 내 몸에 비의 지문이 찍히는 걸 좋아한다. ... 손에 잡히지 않는 그 귀한 보석들이 자랑스럽다. 그것들은 금방 하늘로 돌아간다.


비와 음악은 같은 기능을 한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듣지 않을 자유와 들리지 않을 자유를 준다.


비는 풍경과 건물들을 미화한다. ... 비가 내리면 모든 것이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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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생 - 칼릴 지브란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

절반만 친구인 사람과 벗하지 말라.

절반의 재능만 남긴 작품에 탐닉하지 말라.

절반의 인생을 살지 말고

절반의 죽음을 죽지 말라.

절반의 해답을 선택하지 말고

절반의 진리에 머물지 말라.

절반의 꿈을 꾸지 말고

절반의 희망에 환상을 갖지 말라. 


침묵을 선택했다면 온전히 침묵하고

말을 할 때는 온전히 말하라.

말해야만 할 때 침묵하지 말고

침묵해야만 할 때 말하지 말라.

받아들인다면 솔직하게 받아들이라.

가장하지 말라.

거절한다면 분명히 하라.

절반의 거절은 나약한 받아들임일 뿐이므로.


절반의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고

그대가 하지 않은 말이고

그대가 뒤로 미룬 미소이며

그대가 느끼지 않은 사랑이고

그대가 알지 못한 우정이다.

절반의 삶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대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그대에게 이방인으로 만든다.


절반의 삶은 도착했으나 결코 도착하지 못한 것이고

일했지만 결코 일하지 않은 것이고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그대는 그대 자신이 아니다.

그대 자신을 결코 안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대의 동반자가 아니다.


절반의 삶은 그대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는 것이다.

절반의 물은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하고

절반의 식사는 배고픔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절반만 간 길은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며

절반의 생각은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한다.


절반의 삶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지만

그대는 할 수 있다.

그대는 절반의 존재가 아니므로.

그대는 절반의 삶이 아닌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하는

온전한 사람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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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아버지는 자신이 처한 불행과 고독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어떤 여자라도 사랑할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단지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내게 무슨 일이고 일어나길 바라는 생리적 욕구와도 같은 것이었다. 첫사랑을 겪어보고 싶은 욕망.


그녀는 나를 재워주려고 <송아지의 자장가>를 불러주거나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프루스트의 <갇힌 여자>의 한 대목을 읽어줄 때도 있었다. 어린 시절 내내 우리 부모는 동요를 불러주거나 책을 읽어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 그런 순간이 내게 그토록 큰 즐거움을 안겨주리라고 짐작도 못 했던 나는 자주 읽어달라고 청했다.


나의 유일한 관심사는 A와 그녀의 관계였고 나는 그것을 모두 알고 싶어서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녀와 함께 있는 행복을 만끽하는 대신에 나는 그녀의 과거, 그녀의 애인에 관심을 쏟았던 것이다. ... <단순한 열정>을 읽기 전에는 하찮았던 이런 흔적들은 내 질투심을 통해 '신성한' ... 차원으로 변했다. 그것들의 의미가 갑자기 반전되었다. 그녀의 집은 이제 더이상 우리의 행복한 공모 관계가 아닌, A에 대한 그녀의 숭배를 떠오르게 했다. ... 나는 그녀가 또다시 A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는 초조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가 나의 감시에서 벗어난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A라는 인물이 아니라 언제라도 글쓰기를 통해 축복받을 수 있는 그들의 재회에 대한 질투심에 빠졌다. 


나의 상상적 질투가 그녀의 이미지를 변형시키고 윤곽을 과장하고 실제 여자를 수수께끼 같고 모순투성이 인물로 만들고 우리의 역사를 허구로 만든 터라, 실제하는 A.E.는 내가 묘사한 것과 다르다. 그러나 이 초상화가 실제로 존재하던 여자와 일치하는지 아닌지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 나의 질투심 그 자체가 바로 한 권의 소설인 것이다. 


어머니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고 싶었던지 내가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붙기를 바랐다. ... 이제 무언가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머지않아 우리를 떠날 것이고 아버지, 나, 그 누구도 어머니를 붙잡을 수 없으리란 걸 그 순간에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의 사랑은 폭력적이었다. 그녀는 저녁마다 전화를 해서 내가 밖에 나가는지 확인했다. 


미래의 그녀 애인들을 생각하며 나는 내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다. 그들은 그녀가 내 것이었으며, 내가 이렇게 쓴 책 속에 감금당했음을 알게 될 터이다. 또한 그녀가 자기들과 하는 것은 나와 했던 일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역자후기(이재룡)

죽음이나 이별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남아 있는 사람은 프로이트가 말한 소위 장례 작업이란 심리적 과정을 거치는데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이러한 과정을 언어로 물질화한 것이다. 무덤은 죽은 자를 곁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재의 강력한 물증으로 우리를 체념에 이르게 하듯 그녀의 글은 사라진 사람을 포기하려는 강한 의지의 결과이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치열하고 정직하다. 필립 빌랭이 <포옹>을 택한 소재도 연인과의 이별이다. ... <포옹>은 갓 대학에 입학한 필립 빌랭이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작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출간 직후 이 작품을 둘러싼 문학적 스캔들, 아니 에르노의 명성에 기댄 불순한 출판 기획, 원고 상태에 남아 있어야 했거나 최악의 경우 아니 에르노만이 읽어야 했던 글 등과 같은 비난은 필립 빌랭도 충분히 예측했을 것이다. 문학 외적 비난을 유보하며 말을 아낀 평론가는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렸을 것이다. ... 그것 역시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의 자리>나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다>를 빼닮았다. ... 치열한 답습도 의미 있는 문학일까, 라는 것이 번역하는 동안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든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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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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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니란다." 커다란 바구니 가득 담긴 뜨개질감을 어루만지며,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멀리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는 말이란다. 그건 그냥 행복의 얼굴을 한 쓸쓸함 같은 거야. 잡지도 못할뿐더러, 설사 잡았다고 해도 스르르 빠져나가버리지. 우리의 손은 그런 걸 잡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하지도 못하고, 정교하지도 않거든. 그러니 얘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단순한 것들을 잡으렴. 기꺼이 네 발치에 무릎을 꿇는 것들, 네 소유가 되고 싶어하는 것들, 너의 사랑을 구하는 것들 말이다."


기꺼운 마음으로, 나는 마음을 묶어둔 몇 개의 매듭을 풀고 이별을 시작했다.


그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단 한 번이라도 걱정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인생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 혹시 떨어질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것이 걱정이다. 당장 코앞의 걱정거리가 없으면 십 미터, 백 미터, 천 미터 거리에 있는 걱정거기를 수소문하여 품는 것이 걱정 많은 사람들이 즐겨 하는 일인데, 굳이 천 미터까지 가지 않아도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이 또 걱정거리이므로, 걱정에 대한 걱정만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걱정 많은 사람들의 유일한 기쁨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든, 겨울은 지나간다. ... 그리고 또한, 어떤 식으로든, 사랑도 지나간다.


어떤 이들은 그녀가 따뜻하다고 했고 다른 이들은 그녀가 차갑다고 했지만, 둘 다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남들보다 조금 높은 체온, 조금 낮은 온도의 심장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건 충고도 아닌 거네. 생각을 해봤자 소용이 없고, 그런 소리를 미리 들었다 해도 준비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잖아." "그래."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너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사랑은 언젠가 끝이 나는 것이며,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나야 하는 것이며, 그 이후에도 나의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그는 나를 떠났으나, 그를 사랑하던 나는 사랑과 함께 죽지 않았다. 나는 살아 남았고, 사랑을 위해 슬퍼하고 기뻐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사랑이 내게 행한 방식이므로, ... 그러므로 소녀들여, 기억하라. 첫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 만들어낸 오해일 뿐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불렀어오. 그런데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노래를 열 번쯤 불렀을 때, 나는 알았어요. 이 사람은 더 이상 내 노래를 듣지 않는다는 걸. 모든 게 끝났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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