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국가들 - 누가 세계의 지도와 국경을 결정하는가
조슈아 키팅 지음, 오수원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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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도에 없지만 실재하는 나라들의 경이롭고 안타까운 이야기

태어날 때부터 국가라는 하나의 집단에 속해 있는 것은 마치 주변에 공기가 존재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 사실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세계지도에 빈 공간이 하나 없이 거의 모든 장소가, 심지어 바다와 하늘까지도 어느 국가에 속해 있다는 사실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책 등장하는 국가들의 이야기를 만나기 전까지는.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에 존재하는 소수민족 거주지 압하지야(Abkhazia),

미국과 캐나다 국경 지대에 걸쳐 있는 원주민 보호구역 성격의 정치적 공동체 아크웨사스네(Akwesasne),

소말리아 북부 자치지역 소말릴란드(Somaliland),

이라크령 쿠르드 자치구 쿠르디스탄(Iraqi Kurdistan),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Kiribati),

인도양 차고스 제도 섬나라였지만 섬에 군사기지를 세우면서 내륙으로 추방 당한 차고스(Chagos),

분리된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역사적 지역 펀자브(Punjab),

세르비아 자치주에서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Kosovo),

스칸디나비아 북부 토착민 집단 사미(Saami),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의 무주지에 터를 잡고 웹사이트로 국민 신청을 받는 리버랜드(Liberland)

 

표지에 인쇄되어 있는 국명 중 코소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생소한 국가들이었다.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재로 영토와 국민, 정치체가 존재하는 국가, 지도에는 존재하지만 기후변화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국가, 역사적으로는 현재 지도에 표시되는 국가보다 먼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국가. 다른 국가들의 인정을 받지 못해 지구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없다고 여겨지는 국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을 여는 코니파(ConIFA) 또한 생소한 단어다. 국가 자격 기준을 넘지 못해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나라, NGO들이 인정한 반자치국가, 소수자 집단 등 FIFA(국제축구연맹)에 가입하지 못하는 나라, 혹은 가입하지 않은 나라들이 가입된 독립축구연맹이라고 한다. 저자가 취재를 위해 참석한 2016년 압하지야에서 개최된 코니파 월드 풋볼 컵은 압하지야, 소말릴란드, 사미를 비롯하여 총 12팀이 참가하였고, 2018년 코니파 월드 풋볼 컵에는 재일조선인들이 모인 UKJ(United Koreans In Japen, 일본의 통일 코리안들)팀도 참가했다고 한다.

 

소말릴란드와 비슷한 위상을 지닌 나라들과 스웨덴 같은 국가를 구별해주는 요소는 스웨덴은 동료 국가들(다른 국가들)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인정은 법적 행위가 아니라 ‘정치적’행위다. (P145)

 

모호크 정치적 공동체인 아크웨사스네는 미국과 캐나다라는 국가가 생기기 이전부터 그 지역에 존재했지만 현재는 두 나라가 정한 국경 사이에 위치해 나라 한 가운데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이 길게 늘어서 있고,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국경의 처소를 거쳐야 한다. 아크웨사스네 사람들은 자신이 미국 국민이나 캐나다 국민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국제사회에서는 두 나라에 속해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이나 정치적 공동체로 인식할 뿐 인디언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소말릴란드는 소말리아보다 안정된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로서의 요소도 제대로 갗추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영토도, 국민도, 법도 존재하며 국민들이 자신을 소말릴란드 국민으로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들이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소말릴란드는 형태가 있는 유령과도 같은 상태로 존재한다.

 

하나의 국가는 왜 다른 나라의 인정을 받아야만 국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국경’이다. 모든 국가는 국경을 가지고 있다. 주변에 다른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경 역시 존재할 수 없고, 평화적이던 강압적이던 국가 간의 합의로 국경이 결정된다. 하지만 문제는 타국에 대한 인정도, 국경에 대한 결정도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몇몇의 강대국의 의견에 좌지우지된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은 UN가입국 중 100개국이 넘는 국가의 인정을 받고 있지만 미국의 반대로 아직도 회원국이 아닌 옵서버국으로 등록되어 있다. 한국과 북한의 관계 역시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미국과 중국, 다양한 국제 정세에 영향을 받고 있다.

 

저자는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는 것은 정치적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지도에는 없지만 실재하는 나라에 직접 방문하여 그 나라를 사랑하고 그 곳을 자신의 국가로 인식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국가란 국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며, 그들을 보호하고 정체성을 유지해주는 장소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불과 100여 년 전 일본에 주권을 빼앗겼다 되찾은 과거가 있는 국가이다. 또한 휴전 상태인 북한과의 관계 변화가 일어난다면, 냉전시대 이후 변동이 정체된 세계 지도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북한, 주변국인 중국, 일본, 미국과의 관계가 끝없이 변화하는 지금, 국가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에게 있어 국가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쯤 깊게 생각해 볼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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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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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가출한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니혼바시서에 머무르는 가가 형사. 이야기의 시작은 오래 전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떠나 온 여인, 가가의 어머니 유리코로부터 시작된다.

가족을 보고 싶어 할 자격조차 없다고 자책하며 낮선 도시에서 외롭게 살아가던 그녀는 마지막까지 홀로 죽는다. 일하던 가게에서 만난 와타베라는 손님과 특별한 관계가 되지만, 어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유리코가 죽은 후 그녀가 일하던 가게의 사장인 야스요를 통해 아들인 가가에게 사망 소식을 전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몇 년 후 교토의 어느 맨션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어 시체로 발견이 되고, 그 맨션의 주인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사라졌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그 장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하천 둔치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노숙자의 시체.

지방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상경한 여인과 도쿄에 살고 있던 노숙자.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두 사람의 죽음 사이에 기묘한 의문을 느낀 마쓰미야 형사는 사촌인 가가 형사와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두 사건이 가가의 어머니의 흔적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살해당한 오시타니 미치코의 동창이자 가가와도 과거 인연이 있었던 극단 연출가 아사이 히로미, 사라진 맨션의 주인 고시카와 무쓰오, 과거 유리코와 인연이 있었던 와타베와 신원을 알 수 없는 또 한명의 피해자. 그들은 대체 무슨 관계이고, 두 사람은 대체 누구에게 살해당 것일까?

이 사건은 누가 범인인가보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과사람 사이의 관계, 과거의 자신에 대한 후회, 가족에 대한 사랑, 사람들의 감정이 엉키고 헝크러져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람은 자신의 과거에서 결코 도망칠 수 없는 것이다.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부모와 자식,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 모두 같은 모습인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가족을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소중히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가족보다 자신을 우선시하기도 한다. 가족관의 유대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서로의 감정의 불일치가 큰 불행을 낳기도 한다. 다시금 나에게 있어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사건을 통해 오랫동안 궁금해왔던 어머니의 과거와 심정을 알게 되면서 가가의 삶의 관문 하나를 넘어 이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것 같다. 오랜 시간 여러 작품을 통해 예리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침착하고 냉정하게 사건을 쫒지만 반대로 정도 많고 인간미 넘치며 가끔은 의외의 모습도 보여주어 이제는 친한 이처럼 느껴지는 가가형사 시리즈가 벌써 마지막이라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시 경찰청 수사1과로 돌아가는 가가 형사와 또 다시 어딘가에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면 본질을 알 수 없는 법이야.

사람이나 땅이나.”(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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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세계 : 세상 별별 춤을 찾아 떠나는 여행 - 2020 세종도서 인문 선정도서
허유미 지음 / 브릭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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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정서, 감수성 같은 것들이 몸에 반영되어 오래 쌓이고 여러 사람 몸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레 춤사위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 춤사위는 그 지역의 땅이고, 물이고, 바람이고, 사람이다. 그렇게 귀중하게 빚어진다. (P93)

어느 나라나 각자 고유의 춤과 저마다의 몸짓을 가지고 있다.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저자는 스위스, 알바니아, 조지아, 중국, 인도, 발리, 아일랜드, 카자흐스탄, 일본, 고성, 서울,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 나라의 춤과 사람, 문화, 그리고 삶을 들여다본다.

여행을 하다보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바디랭귀지는 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 춤은 몸으로 하는 말이다. 춤은 말과 또 다른 방식으로 그 나라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되어준다. 인도의 바라타나티얌, 아일랜드의 탭 댄스인 스텝 댄스, 조지아의 양치기의 춤 칸즐루리, 상인의 춤 킨토우리, 알바이나의 민속 춤 발랴, 일본의 전위무용 부토 등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각국의 춤을 보면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의 단면을 만남과 동시에 세계가 얼마나 다양성 있는 곳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감정, 정서뿐 아니라 신앙심, 공동체,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표현하는데도 춤은 곧잘 사용된다. 인도의 전통춤 바라타나티얌은 춤을 통해 우주와 신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고, 마을공동체 단위로 의무적으로 출현하여야 하는 발리의 께착 춤 공연이나 다양한 의례는 발리의 마을공동체 질서가 얼마나 강한지 잘 보여준다.

이민족의 지배, 강제 이주, 전쟁으로 문화가 혼재 된 알바니아의 민속춤을 보다보니 문득 영화 ‘콜드 워’의 소비에트 연방국가들의 민속춤과 노래를 수집하여 만든 민속예술단의 흥겨운 공연장면과 동시에 공연의 지속을 위해 사회주의 국가의 지배자에 대한 찬양하는 공연을 해야 했던 장면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마오쩌둥이 중국을 지배하던 1960년대 영화로, 중앙국립중앙발레단 발레 작품으로 제작되어 대중적 작품으로 자리 잡은 ‘홍색낭자군’에 대한 춤을 보면서 춤과 예술이 그 시대의 사회, 정치적 측면과 결코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춤이란 정서, 사상, 감정을 몸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이라는 보통의 인식과 다른 의미의 춤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궁중춤 종묘제례악은 유교사상, 팔괘, 음양오행 등의 동양고전의 개념과 선조에게 예를 올리는 의미를 몸의 움직임을 통해 기호로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직접 야간종묘제례를 꼭 한번 관람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세계란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 춤의 세계가 얼마나 깊이 있고, 또한 즐거운지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책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QR코드를 통해 책 속에 등장하는 춤들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어서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물론 이 여행의 가장 큰 주제는 춤이었지만, 그 이외에도 여러 장소 풍경, 삶이 담긴 사진들은 지금 당장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든다. 여행과 춤. 정말 멋진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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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인들의 성 이야기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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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상속에 아들, 딸 구분이 없어 여성도 많은 재산의 소유가 가능하고, 혼인 후에도 부인이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아도 되었던 고려시대와 달리 선비의 나라, 유교사상,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여성들은 통제되고 억압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따르라는 삼종지도,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이유가 되는 칠거지악을 지키는 것이 여성의 당연한 의무처럼 여겨지고, 유교적 가치관이 여성의 삶을 지배해 성에 대한 문화 역시 관습과 제도의 굴레 속에서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측면이 강하게 드러났다.

 

흔히 인간의 기본 3대 욕구를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고 말한다. 성욕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인 것이다. 또한 성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문화, 예술의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부부사이에도 애정표현의 제약이 많고 중매를 거치지 않은 혼인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등 성과 사랑에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저자는 1부 에로틱 심벌이 된 여성들에서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펼쳐지는 기생, 궁녀, 의녀, 첩의 애환과 삶을, 2부 춘화와 육담의 에로티시즘에서 조선시대 춘화와 육담을 통해 당시의 성 풍속과 사회상을, 3부 조선의 섹슈얼리티와 스캔들에서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스캔들을 통해 조선의 성에 대한 인식과 성문화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실록에 기재되어 있는 다양한 사례들은 그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기록의 중요성 역시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기생이나 첩, 궁녀의 삶으로 보는 조선시대 성의 모습은 지위, 성별에 따른 불합리성을 강요당하는 사회이다. 유교사상이 지배하던 조선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법으로 허용된 기생, 첩 제도로 인해 집의 여종을 강제로 첩을 들이거나, 그것을 참지 못한 부인이 첩을 학대하거나 죽여도 양반인 경우 큰 처벌을 받지 않았고, 기생을 향한 남성들의 열망은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을 수없이 일으켰다.

왕만 바라봐야 했던 여인인 궁녀들은 왕을 위해 수절 관례를 치르고 나면 궁에서 벗어날 수도, 왕 이외의 남자를 가까이 할 수도 없이 평생을 홀로 보내야했고, 여성으로서 드물게 글을 배우고 의술을 익힐 수 있는 의녀들은 양반들의 첩으로 가장 선호되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조선시대의 성 풍속과 욕망을 담은 춘화집 중 대표적인 ‘운우도첩’과 ‘건곤일회첩’은 조선의 대표적인 화가인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작품이라고 한다.(아직 진위 여부의 논란이 있다고 한다.) 양반과 기생, 양반과 첩, 스님과 여인 등의 모습을 담은 춘화는 당시의 사회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 시대의 섹슈얼리티를 살펴볼 가장 좋은 렌즈는 바로 스캔들이다. 뭇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회를 뒤흔든 섹스 스캔들이야말로, 성을 바라보는 당대의 시각을 가장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P235)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는 섹스 스캔들은 조선의 시대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같은 간통 사건의 경우라도 신분에 따라 처벌의 수위가 달라지고, 종첩의 경우에는 잔인하게 살해당하거나 학대를 당하더라도 가해자는 벌금형 또는 유배와 같이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궁중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양반들이 서로의 첩을 빼앗고, 급기야 살인사건까지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였으며, 여성의 간통사건은 남성들보다 훨씬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조선시대는 유교사상과 양반, 신분사회가 만들어낸 성과 여성에 대해 폐쇄적인 사회였다는 점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역시 천인 신분으로 능력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후대까지 연모의 대상이 되었던 황진이나 자유로운 연애를 꿈꿨던 유감동, 어을우동, 왕의 깊은 신뢰를 받은 어의녀 대장금 같은 여성들과, 다양한 삶, 사랑이 존재했다. 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모습의 조선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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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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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았다고, 축하해! 이제 모든 게 네 잘못이 될 거야."

퍼펙트 마더. 그 기준은 대체 누가 정하는 것일까? 완벽한 엄마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뉴욕 브루클린의 5월에 태어난 신생아 엄마들의 온라인 모임, 5월맘의 초보 엄마들은 출산 후 정기적으로 공원 나무 아래에서 육아에 대한 정보, 고민 등을 나누는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다. 뉴욕에 처음 온 활동적인 프랜시, 걸크러시의 매력을 가진 대필작가 콜레트, 무언가 비밀을 품고 있는 대범한 여성이자 곧 출산 휴가를 마치고 다시금 직장에 출근할 예정인 넬, 5월맘의 유일한 남성회원 토큰, 유코, 스칼릿, 그리고 마이더스의 엄마인 아름다운 싱글맘 위니.

넬의 제안으로 5월맘 모임의 엄마들은 출산 후 두달만에 처음으로 아이들 없이 바에서 엄마들만의 저녁 모임을 가지기로 한다. 단 하룻밤의 일탈. 위니는 넬이 소개해준 베이비시터 알마에게 마이더스를 부탁하고 모임에 참여하지만, 그날 밤 마이더스는 실종이 되고, 엄마들의 일상이 하나씩 하나씩 파괴된다.

20년전 TV드라마에 출연했던 하이틴 스타였던 위니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마이더스의 실종은 큰 이슈가 된다. 그날 밤 모임 멤버들이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위니와 다른 엄마들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프랜시, 콜레트, 넬은 범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넬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숨겨진 과거가 들어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범인이 누구일까에 대한 궁금증과 동시에 자기자신이, 그리고 타인이 기대하는 완벽한 엄마의 조건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해보게 된다.

넬은 경제적인 사정으로 생후 두달밖에 안된 베아트리스를 타인에게 맡기고 출근을 해야 한다. 프랜시는 경제적 어려움과 육아에 도움을 주지 않는 남편때문에 힘들어하며, 더이상 모유가 나오지 않아 윌에게 분유를 먹어야 하는 상황에 죄책감을 가진다. 콜레트는 포피에 대한 걱정에 몰두하여 작가로서의 자신의 일과 남편인 찰리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계속 발생한다. 엄마가 되면, 사랑하는 아기가 태어나면 모든 것이 행복할거라는 생각과 달리, 처음 해보는 육아에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의심이 가지고, 아기의 안전에 대한 걱정에 매일이 불안하다.

왜 퍼펙트 파더가 아닌 퍼펙트 마더일까? 과거에는 육아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요즘은 오히려 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는 더 완벽한 엄마를 바라고, 어떻게하면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 책, 방송 등에서는 정보가 넘쳐난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점점더 남성의 육아참여에 대한 기대와 비중도 높아져 가지만, 그럼에도 모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크게 바뀌지 않고, 엄마들 역시 아기에게 있어 자신이 좋은 엄마이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한다. 아직도 사회는 엄마라는 존재에게 그다지 관용적이지 않다.

마이더스를 유괴한 범인이 누구인지, 과연 이야기가 해피앤딩으로 끝이 날 것인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미스터리적 요소와 출산과 육아, 완벽한 모성이라는 무의식적인 사회적 굴레라는 손에 땀이 나는 스릴러와 사회적 이슈를 잘 섞어내 책 [퍼펙트 마더]. 책을 펴는 순간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을 땔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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