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 남자와 함께하기로 결정한 당신에게
남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남자를 다시 생각해봐

 

 

 

   누군가 결혼은 택시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마침 잡아타려고 하는데 내 앞을 지나가다 운 좋게 걸리면 타게 되는 것이 택시이듯 결혼도 내가 지금 하려고 작정한 그 타이밍에 하필(?) 내 앞에 있던 남자와 하게 된다는 뜻. 즉 결혼은 서로 죽고 못 살아야만 이루어지는 사랑의 결과물이 아니고 죽고 못 살게 될 수도 있는 운명적 인연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다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할 줄 몰랐던 사람이라고 꼭 결혼을 안 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나만 해도 뜻하지 않은 사람과 전혀 뜻하지 않은 시기에 결혼을 했고 뜻하지 않게 헤어졌다. 그러다 또 뜻밖의 남자를 만나 뜻하지 않게 인연을 만들고 지금은 뜻과는 달리 헤어진 상태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여튼 나는 결혼도 이혼도 재혼도 모두 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내 인생에서 남자는 늘 뜻밖 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어쨌거나 남자는 나와 맞지 않는다, 정도가 살면서 얻은 깨달음이고 이 책을 마주한 내 심경이었다고 할까... 돌이켜보면 결혼하고 일 년 간을 가장 많이 싸우고 분노하며 상대를 이해해보려 사력을 다했던 것 같다. 그때 이런 책이 있었다면 나는 좀 더 남자에 대해 빨리 편해질 수 있었을까, 싶은 책이다. 아마도 그때라면 나 잘난 맛에 이런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2,30대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라, 는 식의 충고 혹은 위로형 서적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한 술 더 떠 여자는 이렇게 살아야 하고 남자는 이렇게 길들여야 하고 사랑과 이별은 잘 해야 하고...하는 책들은 웃기다는 쪽이었다. 그건 독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땐 책을 읽지 않았던 이유이다. 한마디로 일과 성공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남녀간에 발생하는 성격차를 통해 원인과 결과를 제시하는 방법론적 서적들은 거의 사치에 가까웠다. 어떤 면에선 남자에 대한 분석이나 방안에 대한 신뢰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였기도 하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책과 같은 일반론 속에 포함시키고 싶지 않은 낭만이나 치기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책을 덮고 나니 내용의 주 타겟은 한창 그 남자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남자 때문에 정말 죽을 것 같은 여자이어야 할 듯하다. 도저히 내가 택한 이 남자와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시점의 여자이어야 할 듯 하다. 그런데 실상 그 시기엔 이런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는다. 너무 배가 고프면 요리책 따윈 너무 멀거나 귀찮은 것이다. 나만해도 이제 남자에 대해서 알만큼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남자 분석 같은 건 필요치 않을 줄 알았는데 바로 이런 시점에 아무런 기대가 없기 때문에 외려 내 열린 마음에 이런 책이 무리 없이 안착하는 이상한 경우가 발생했다. 그냥 이 책이 끌렸다. 이젠 모두 이해하고 긍정하며 남자뿐 아니라 여자인 내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난날 내 남자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높았던 여자였을 뿐이었다. 단점이 있다면 그다지 새롭진 않다는 것인데 -사실 여자에게 남자처럼 진부한 소재가 어디있단 말인가 - 성실하고 논리적이고 치밀한 자세로 그 점을 편안하게(치밀하면서 편안하기 힘들다)보완했다. 느낌은 생각보다 괜찮다.

 

 

   지금 남자가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내게 있어, 이 책의 느낌은 이렇다.

 

 

   평소에 여기저기서 잘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한번 원 없이(?) 다양하게(?) 써본 제품이라 그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데-그래서 다시는 구매의사가 없었던 차인데-그래도 한번 마음을 바꾸어 보라고 작정하고 설득을 하는 느낌. 제품의 피상적, 구체적, 추상적, 심리적 모든 문제들을 다 알고 있는 전문가 한분이 콕콕 집어 올바른 사용법을 쉽게 가르쳐주는 느낌. 그동안 제품 사용에 있어 내가 이해할 수 없었거나 그냥 묻었거나 넘어가 버린 문제점들을 소상히 밝혀주는 느낌.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이 어필하듯 남자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내 생각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당신 생각이 원래 맞지만 더 현명하고 우월한(?) 당신이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는 이야기인 것이다. 다시는 남자와 헤어질 생각이 없다면 같이 가는 방법을 달리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와 잘 살고 있거나 이미 헤어졌다면 이 책은 필요치 않을까? 내 생각에 남자와 사는데 잘 살고 있는 여자는 없다고 보기에 어느 시기든 유용할 것이며 남자와 헤어졌더라도 그 시기를 돌이켜보며 조용한 회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듯 하다. 비록 지나갔지만 앞으로의 시행착오를 막는 의미에서도 이 책은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한 가지 남자에 해당하는 혹자들은 이 책이 여성이라는 우월적 위치에서 남자를 관찰하는 시각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시종일관 이 책에 의하면 남자들은 오로지 여자를 통해서야만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여자를 통해서만 성숙한 인간, 철든 남성이 된다. 여자를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불안감을 관리할 수 있으며 ‘언제고 여자에게 길들여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남자라 말하기 때문이다. 아니라 반박하고 싶은 남자만 이 책을 들쳐 보면 된다.

 

 

남자는 진짜 남자가 목표라구

 

 

 

   우선 작가가 진단하는 병인은 남성성에 집착하는 남자病이다. 남자가 대화에 소질이 없는 이유,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이유, 서열을 중요시 하는 이유, 게임이나 술 중독, 우울증에 빠지는 이유, 폭력적이 되는 이유, 일찍 죽는 이유 등등 결국은 진짜 남자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라 말한다. 여자는 결코 ‘여자가 되는 게 인생의 목표가 아닌데, 남자는 진짜 남자가 되는 게 인생의 목표’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내가 가장 짜증나고 이해할 수 없었던 남자들의 태도중 하나는 누가 봐도 잘못한 일에 절대로 사과를 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대체로 아내가 조목조목 하나부터 열까지 지나온 경위를 밟아가며 잘못된 부분을 하나씩 짚으면서 결과적으로 당신이 잘못했다고 따져드는 순간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못견뎌한다. 아내 입장에선 미안하다 한마디면 될 것을 그 한마디를 하지 않는 서운함이 괘씸함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남자의 잘못을 역순으로 톺아보는 시뮬레이션 과정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남자는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물론 끝에 가선 모멸감을 느끼기 때문에 절대 미안하다는 답을 해줄 리가 없다. 아내는 억울하다. 애초에 잘못은 남자가 했는데 잘못한 사람은 잘못을 추궁하는 것만 서운해 하고 자기 자존심만 중요하게 생각하니 어떻게든 목숨을 걸고서라도 사과를 받고 싶은 것이다. 이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다보면 끝까지 그 소리를 안 하고 넘어가려는 꼴을 죽어도 못 봐주는 아내 때문에 또 진정성 없이 일단 순간을 모면하려고 대충 미안하다 얼버무리는 태도로 사태는 전환된다. 이 상황을 이미 예상하는 아내는 점점 입을 닫게 되고 남편은 항상 화나 있는 아내를 보게 된다. 남자들은 말한다. 왜 화가 나 있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하하하. 아내들은 말한다. 내가 백번을 이야기해도 달라지 않고 똑같다고. 부부싸움을 하다보면 늘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이유로 스파크가 일어난다. 나처럼 남자를 과감하게 버린 내 지인들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남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남자는 결코 철들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남자들이 아니라 그걸 못 견디는 여자인 자신일 뿐이다. 고로 결혼 생활을 그런대로 평화롭게 유지하는 여성들은 남자들이 특별히 우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자들이 남자를 잘 견디는 방법을 터득했거나 아니면 특별히 남자를 잘 견디는 성향으로 타고 났거나인 것이다.

 

 

   작가는 남자가 대화에 소질이 없는 이유는 대화를 싫어하기 때문이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학습해온 남자공식에 위배되는 발언이기 때문이라 정리한다. 그리고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 변화에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한 절대 ‘단 1센티미터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옮겨 앉으려 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남자는 죽자고 남자를 이기려 드는 여자를 가장 싫어하며 ‘스스로 멋진 남자라고 느끼게 만드는 여자’, ‘자신을 남자로 느끼게 해주는 여자’에게 끌린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여자에겐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기 위해 별별 일을 다 하면서도 종국에는 여자가 그것을 찾아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마침내 찾아낸 여자에겐 충심으로 투항한다. 한마디로 남성성을 모독하는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어하면서도 또 그 자기만의 약점을 알고 보살펴 주고 챙겨주길 원하는 것이다. 이에, 남자는 자신이 진짜 남자라고 느낄 때에만 사람구실을 한다는 것이 작가의 심오한 결론이었다.

 

 

   작가는 이 진짜 남자 컴플렉스에 해당하는 질병을 ‘유리커브’에 비유하며 유리커브의 열쇠를 여는 것이 유리커브를 발견한 여성의 역할이자 임무라 하였다. 아니 여성이야 말로 유리커브의 열쇠가 되어야 한다고 들렸다. 오랫동안 사회에 여성의 승진을 막는 유리 천장이 있다면 남자들에겐 오랜 세월 환경과 교육에 의해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자아의 감옥, ‘유리커브’가 있다는 것이다. 감정의 표현과 교류가 서툴고 자신의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두르고 있는 갑옷처럼 유리큐브는 사방이 좁아 터진 밀폐의 은신처이다. 여자들이 답답하다고 망치를 들고 유리큐브를 깨려 들지 말고 지혜롭고 유일한 산소통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그의 유리큐브를 인정하고 때로는 반들반들하게 닦아 주고 때로는 질식하지 않도록 열어 주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이다.

 

 

남자도 힘들고 슬픈 거야

 

 

 

   또 하나 맞벌이 여성들의 불만에 해당하는 가사부담의 정도에 대해서도 명쾌한 분석이 이어졌다. 나 역시도 늘 집안일과 육아는 그저 자신의 일이 아니라 보조로서 도와주는 일이라 여기는 구석이 못마땅했는데 남자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감 때문에 여자들이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자신의 일과는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고 그만두었을 그때는 자신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하므로 일찌감치 가사를 자기 영역에서 제외시켰다는 분석이다. 이제 작가는 여자들이 가장으로서의 남자들의 책임감을 나누어 가져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는 내심 남자들의 부양에 기댈 목적으로 결혼을 하는 여성들이 반드시 감당해야할 태도라 느껴진다. 여자들 스스로 나는 아이 낳고 뒷바라지하고 살림을 하니까 앞으로 경제적 활동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평생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남자들은 잠시 바깥일 하는 아내의 원래 담당인 집안일을 해주는 것이 선심 쓰듯 도와주는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는 차라리 남자의 책임감을 덜어주고 그 책임감을 핑계로 회피하고 있는 많은 의무들을 나누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 충고한다. 세상엔 공짜가 없는 것이다.

 

 

   직장 다닐 때는 같은 경력인데도 군가산점 등의 이유로 남자들이 조금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재수안하고 휴학안하고 군대 못가고 졸업하자마자 취직한 죄로 재수하고 휴학도 하고 군대까지 갔다 온 신입사원이 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시절을 보내었다. 나는 이미 밤새고 뺑이치고 삼년 경력자가 되어 있는데 그들은 갓 들어와 내 지시를 받으면서도 나와 월급이 같았고 슬그머니 일 년 지나면 나와 같은 직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결혼하고 대학원 졸업하고 그 와중에 애까지 낳고 돌아온 오년은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았다. (물론 군대는 국가가 부른 것이고 출산은 내 개인의 선택이므로 보상을 해줄 이유도 없고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남자들에 대한 보상은 언제나 국가적으로 시스템화 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여자들의 세월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보상도 꼭 여자를 차별하는 결과로 행해져야 하는 것이란 말인가.) 업무적으로 차별을 받거나 직종 특성상 남녀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회사 생활하는 동안엔 남녀차별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 축에 들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여자들의 경력은 세월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억울함과 여자들의 결혼과 출산은 사회에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는 -외려 민폐일 뿐- 피해의식이 많았다. 그리고 결혼해서도 맨날 야근이다 회식이다 늦게 오는 남편이 아무리 힘들어 죽겠다 소리쳐도 속으로는 다 밖에서 누릴 것을 누리고 대접받을 건 받으니까 그 정도 힘들어도 견디는 것이겠지(아니 당연히 견뎌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누릴 거 누리고 받을 거 받아도 힘든 건 힘든 것이었구나, 당신들이 힘든 것도 내가 힘든 만큼 같은 것이었구나를 새삼 깨우친다. 주로 약자이고 피해자인 여성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슬픔이 있듯이 강자이고 보호자이고 책임자인 남자도 남자이기 때문에 슬픈 것이었구나, 힘은 누가 더 세고 눈물은 누가 더 많을 수 있지만 그 힘겨운 슬픔 만큼은 누가 누구보다 더 인 것이 아니었구나... (작가가 대단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남자가 아니면서 남자 속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남자보다 더 남자를 잘 말하고 그로써 여자의 생각을 슬슬 바꾸어 놓는다는 것. 작가를 보면서 남자를 말하는 것도 여자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구나 싶다. 남자에 대한 오해를 여자가 풀어주는 것을 보면)

 

 

   유익한 책이다. 작가는 마지막에 칸느 여우 주연상 전도연은 못되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페르소나 중 그를 대할 때 필요한 것만을 골라 잘 연기하라고 마무리 한다. 거짓이 아니라 진심으로 연기하라 충고한다. 알면서도 저주고 저주었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 원하는 행복을 성취하라 말한다. 이 책은 각 챕터마다 초반엔 주제와 관련된 짧은 이야기가 제시 되고 그 원인과 해석이 뒤를 잇는다. 중국 고전 <금병매>의 캐릭터 반금련, 무대, 서문경, 춘매, 설화를 패러디 했다는 소설이 재미나다. 어쨌거나 남자가 필요한 주인공에 해당하는 금련이 연애에 몇 번 실패하고 무대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남편의 실직등 위기를 맞이한 후 중년을 맞는 구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남자를 조종 및 통제하기에 불가능으로 접어든 시기는 마흔 이후로 보는 것 같다. 남자 역시 여자의 도움을 거치지 않고 중년을 맞이하는 인생은 불행하다고 보는 것 같다.

 

 

   이 책을 (너무 많은 걸 깨우친 중년이 아닌) 아이 하나 낳고 집장만 하느라 뒤도 안 돌아보고 부지런히 뛰었더니 어느덧 낼 모레 마흔을 앞둔 마음 울적한 주부에게 권한다. 나 같이 남자한테는 학을 떼어서(?) 더 이상 남자는 필요 없다는 돌싱내지는 싱글맘에게도 권한다. 나쁜 남자가 필요 없다는 것이지 좋은 남자야 왜 필요 없겠는가(그러나 불행히도 남자는 잘난 남자와 못난 남자로 구분 지을 뿐이란다...) 가끔 내가 몇 살까지 살게 될까를 상상해 볼 때가 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또 뜻밖의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으므로 당분간은 이 책의 가르침을 가슴에 고이 간직해두어도 나쁘지 않을 성 싶다. 어쨌거나 내겐 남자가 되었건 그 남자의 여자가 되었건 그 문제와 대안을 말하는 책이 필요했던 것 같다. 요즘 하루 한권 읽고 그 다음날 리뷰를 쓰는 폭풍의 독서가 이어지고 있다. 아...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이 놈의 남자 근육보다 더 끌리는 저 단단한 책들과 그리고 그를 질펀히 통과한 후 내가 즐기고 있는 이 육체적 사유의 시간을. 다만 좋은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필요한 가르침이었다. 이 가르침이 현실에 써먹을 날이 부디 다시 돌아오기를 몰래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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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5 0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gimssim 2012-02-0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십 년 세월을 살면서 저희 부부만큼 많이 싸운 부부도 드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싸우다가 앞뒤 안맞는 남편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했더니 돌아오는 말, "그렇게 똑똑한 여자가 왜 나랑 결혼했어?"
참고로 우리 남편은 아직도 "한 집에 한 사람씩만 똑똑하자!"고 입에 거품을 뭅니다.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지러운 세상이라구요.
얼마 전, 오제은 교수의 <자기 사랑 노트>를 읽고 생각을 바꿨어요.
나이 탓인지 싸우기도 힘에 부쳐서요. ㅎㅎ
싸우고 서재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다가 끼니 때가 되었는데 밥을 줘? 말아? 잠시 갈등했어요.
저는 별로 왜곡이 없는 환경에서 자랐는데 남편은 중학교 때부터 하숙, 자취를 했지요.
오제은 교수 이론에 의하면 남편은 '내면 아이'가 성장하지 않고 멈춘 상태라는 거지요.
제가 내린 결론은 '에미가 속상한다고 새끼 밥을 굶기면 되겠어!'
그때부터 '어진 에미'가 되기로 작정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당신 요즘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묻는 것이었어요.
(남편만 모르지만 저는 자타가 인정하는 천사표에요.)
속으로는 '넌 내 새끼니까!'
겉으로는 "나같은 마누라 데리고 살아주는 것이 고마워서!"

폭풍 독서, 리뷰...부러워요. 멈추지 마세요!

2012-02-05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8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물선 2012-02-08 19:46   좋아요 0 | URL
난 집에 있는 맘들이 젤 부럽다!
굶고 사는 것도 아니고
골치 안아파도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