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무게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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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력 문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뿐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치료가 논의 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세상이 어찌도 이리 험악할 수 있냐면서 한탄하지만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선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다. 늘 곁에서 24시간 감시하며 살아가긴 힘드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믿을 수 없는 사람도 많아졌다. 성폭력의 과반수가 지인에 의해서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엔 아무리 얼굴을 알고 지내는 이웃사촌이라고 해도 함부로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신고를 당한다. 예전엔 뭐 그리 삭막한 나라가 다 있나 싶었지만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종종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조차도 같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꼬마가 먼저 '안녕하세요.'하는 인사를 하면 저절로 미소를 지으며 이것저것 물어보다 보면 아이가 어느 틈에 입을 다물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럴 땐 '아차!'싶으면서 내가 너무 과잉된 행동을 했음을 눈치 채며 씁쓸함을 느낀다.


4살 때 칼리는 눈앞에서 엄마(안토니아)가 8개월짜리 아이를 사산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빠(그리프)가 엄마와 2층에서 말다툼을 하다가 엄마가 그만 계단에서 구른 것이다. 어린 나이에 울면서 두려움과 엄마에 대한 걱정을 표현할 줄 밖에 몰랐는데 아빠의 귓속말 한마디 때문에 칼리는 그 날 이후 말문을 닫는다. 자상한 오빠 벤이 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유일한 친구인 페트라와 침묵의 대화를 나눈다. 페트라는 이웃에 살면서 칼리의 목소리가 되어주었고 엄마, 아빠와 다정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술을 마신 그리프는 딸 칼리를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분개한다. 안토니아의 첫사랑인 루이스의 자식이 아닐까 하며 의심을 하고 있었고, 술김에 숲속 너머에 살고 있는 루이스를 찾아간다면서 맨발의 칼리를 질질 끌고 산으로 가는데……. 같은 날 새벽, 페트라는 우연히 깬 잠에서 밖에 서있는 그림자를 보고는 잠옷 바람으로 자의에 의해 그들을 따라 가게 되고…….


그런데 이 책이 전반적인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소설의 실마리로 쓰인 것인데, 책을 읽은 독자들의 일부들은 성폭력 문제를 큰 주제로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와해된 가족 개개인의 심경과 박진감 있는 전개로 소설을 읽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안토니아는 사랑하는 첫사랑 루이스를 떠나보내고 그리프와 결혼을 했다. 그리프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서 가정 내 폭력을 휘둘렀지만 그를 쉽게 떠날 수 없었던 우유부단함은 오히려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타인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자신의 가정사를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했던 가족개개인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함께 살고 있으면 어디까지가 가정폭력의 수위인지 구성원들은 분석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소설을 읽다보면 분개도 하게 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대를 위해 소를 버리는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도 하게 되었다. 이 책 역시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이나 가족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책은 시작부터 8명의 주요 등장인물을 한 줄씩 소개하고 있다. 어릴 적 소설책을 읽을 때엔 이번처럼 등장인물을 간략하게 소개했었는데 나같이 등장인물을 잘 기억 못하는 독자를 위해서 이런 소개 글이 앞으로도 종종 있었으면 한다. 한정된 공간에 이틀 동안 일어난 사건을 정리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책의 후반부에 가서도 범인을 계속 추리해야 하는 살짝 반전의 스릴도 있다. 전개방식도 상당히 독특하다. 8명의 등장인물의 심경을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낱낱이 분석하며 전개한다. 자칫 전개방식에 따른 시점이 혼동되어서 불편하면 어쩌나 했지만, 오히려 옴니버스식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으면서 점점 완성되어가는 퍼즐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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