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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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와 물의 이미지가 책에 넘쳐난다. 물의 도시를 배경으로 끊임없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장면이 많다. 비오는 날 읽으면 기막히게 어울리는 책.)

 

 

 

온다리쿠의 [달이 뒷면]을 읽다

그러나 지금 그의 손안에 이 세계의 진실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일상이라는 한가로운 벽의 갈라진 틈새 밑에 그런 것이 존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달의 뒷면](p.235)

당연히 연속돼 있어야 할 세상과 당연히 연속돼 있어야 할 시간이 끊겨 있을 때의 그 공백과 틈이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그곳은 정말로 찢겨 있는 걸까? 그 건너엔 무엇이 있을까? [틈 (p.160)]

온다리쿠는 찢겨진 틈새에 고여있는 풍경에 천착해 온 작가이기에 위의 인용이 이 글의 편리한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그녀를 수식하는 말이 세상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숨겨진 이면을 다른 각도로 보여주길 좋아하는 작가'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이 작품 [달의 뒷면]은 아예 제목부터 대놓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두운 진실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듯 보인다. 물의 도시 야나쿠라를 배경으로 일어난 의문의 연쇄실종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이야기는 작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단순한 호러/판타지/SF물 보다는 중층적으로 읽히는 작품이다. 일단 이 작품은 표면적으론 고전적인 신체강탈을 소재로 한 호러작품으로 읽힌다.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는 생명체가 세계를 조용히 침식하고 있는 배경이 세계와 접점인 물가이기에 더욱 무섭다. 적어도 우리는 물이 없다면 생명을 유지 할 수 없는 존재라서 물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간은 물 없이는 살 수 없어.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네. 도망치기엔 이미 늦었어.(p.172)라고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작가의 특기인 '숨겨진 이면 드러내기'에 대해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표면적인 호러소설 뒤에 '달의 뒷면'처럼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의 소재에 힌트를 얻은 잭 피니의 [바디 스내쳐]가 단순히 호러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사회속에서 개성 상실의 알레고리로 읽히듯이.

 

 

 

    (이 책을 읽고 나면,물 웅덩이가 살짝 무서워지기도 한다.ㅋㅋ:;;;;)

하나됨과 다양성 사이의 갈등 (리처드 도킨즈의 '밈')

우리는 은연중에 다른 사람들을 흉내내어 하나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학생들 사이에 전염병이 번지듯 대유행하는 놀이나 음악, 패션등은 바로 그 좋은 예이다. 나 스스로도 누군가를 모방하고 있다는 자각도 없이 어떤 멜로디를 흥얼거리거나, 남들이 다 산다는 브랜드의 옷을 사입거나 한다. (이 책에서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다들 유괴되었다(도둑 맞았다)는 자각도 없다"(p.164)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일찍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라는 영국의 진화 생물학자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 이유를 '밈(meme)'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설명했었다. 밈은 그리스어 '모방되어진 어떤것'을 의미하며, 투박하게 말하자면, 지금은 '문화의 자기 복제 요소로서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도킨스는 밈이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수직 전달되는 것과 바이러스가 수평 전달되는 것과 비슷한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인간이 모방을 통해 언어를 배우기에 자신의 부모와 비슷하게 말을 하게 되는 것, 종교가 대대로 이어지는 것도 모두 이 '밈'의 특징 때문이다. 온다리쿠는 그 '밈' 개념에 부분적으로 의존하여, [달의 뒷면]이라는 작품 속에서 심도있게 재조명했다.

작가는 타인에게 동화되는 것, 하나 되는 것에 대한 갈망을 책의 이곳 저곳에 힌트처럼 흘려놓았다. 가령 "말이 다르다는 것은 그 인간이 이분자라는 것을 보여준다.자기 몸을 지키고 공동체에 친화되려면 그 공동체의 말을 배우는게 수단으로서 유효하다.(p.81)나, "다들 서로 생각하는 걸 완벽하게 알고 있다면 언어도 문자도 발달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 (p.136)" 같은 말들은 모두 작가의 생각이 양각되어 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밈' 역시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변이, 돌연변이, 경쟁, 되물림을 통해 진화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작가는 '다양성'과 '하나됨'과의 갈등을 끄집어 낸다. 온다리쿠의 세계상에 있어 세계는 <다양성과 하나됨 사이의 갈등>으로 파악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적어도 우리는 '그것'을 피해 도망쳐 오긴 했을 걸세. '그것'은 '하나'이기때문이야. '그것'에 붙들리면 우리는 누구나 동일한 '하나'의 '그것'이 되고 말아. 우리는 무의식중에 타자와 동화하기를 기피하고 두려워해왔네. 다양성이 바로 우리가 생물로서 취하는 전략이기 때문이지....우리는 각자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각각의 가능성을 시험해봐야 하는게 분명해. 그게 생물로서 올바른 전략이야." (p.215)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늘 '그것'에게 붙들리고 싶은 유혹과 싸우고 있네. '하나'가 되고 싶은 유혹이지. 종교도 가족도 사회도 '하나'가 되고 싶다는 유혹이 낳은 형식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거든. 저마다 자기 전략을 탐색하려면 다대한 스트레스가 따르지만 '하나'가 되면 편하거니와 아무 생각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거기에 생물로서의 딜레마가 있네. '하나'가 돼버리면 다양성이 생기지 않아...우리는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중인지도 몰라. 아니면 무의식중에 인간이란 생물의 전략이 도저히 수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걸 깨닫고 다시 한번 '하나'로 되돌아가려고 하는지도 몰라." (p.216-p.217)

위 인용은 작품 전체를 통틀어 작가의 진의가 가장 잘 드러나 있어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나는 전설이다] 같은 좀비가 나오는 작품을 볼때마다 나는 의식이 있는 소수자로 남느니 차라리 좀비가 되어 그들 무리에 섞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했는데, 그래서인지 윗글에 언급된 "하나가 되면 편하거니와 아무 생각 않아도 되니까"라는 말에 유달리 공명했었다. 실제로 이 작품엔 최후의 4명만이 사람들이 증발된 마을에 남는 데,이 말은 후반부에 펼쳐질 사건을 암시하기도 해서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또한 이 작품에서 '도둑 맞은자들'에 대한 구분 방법이 한순간 무의식 상태가 되었을 때, 두사람이 (같은 의식의 지배하에 있기에) 거울에 비친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동작이나 속도가 똑같다라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진짜인간과 가짜인간의 구분 방법이 눈자위가 흰색없이 검은색뿐인 경우는 복제인간이라는 상투적인 방법이 아니다. 혹은 영화 '더 씽(The thing) 프리퀄'에서처럼 입안의 금속 물질(가령 금니)을 복제 할수 없는 경우는 외계 생명체로 판별하는 것 같은 방식도 아니다. 이것과 비교해 보면 작가가 말하려는 바가 더욱 두드러진다. 똑같은 동작과 속도는, "하나되는 것, 타자에게 동화되는 것, 모방 대한 이미지라는 것을 독자는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우리는 늘 '하나'가 된다는 것, 누군가에게 엎드려 복종한다는 것에 강한 동경을 품고 있으니까'(p.258)라고 말하며 동화의 순간에 유혹을 느끼며 기다리는 다케오에 대한 묘사는 다름 아닌 평범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작가는 이런 묘사를 통해 묵시적이고 포괄적인 비판을 가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을 획일화에 대한 경고나 몰개성에 대한 작가의 걱정과 비판으로 읽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겉으론 '호러와 SF'의 기조를 띠고 있지만 온다리쿠는 그 뒷켠에 <하나 되려는 것과 다양성의 갈등>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숨겨 놓았다. 그 주제를 이루는 근간에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의 '밈'개념이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다고 확언할 순 없지만, 작가는 독자에게 도킨스의 생각에 이끌렸음에 대한 힌트를 슬쩍 남겨 놓는다. "한동안 유행한 '이기적 유전자'같은 거야?" " 뭐 그렇지." "어째 기분 나쁘군. 나도 모르는 새에 가마에 태워진 거 같아.""우리 자신이 유전자의 탈것이잖아."(p.254)

 

 

오셀로 게임의 상징성

또 하나. 이 작품에서 오셀로 게임 장면(p.31)은 작품 내에서 짧게 등장했지만, 중요한 의미가 돋을새김되어 있는 부분이다. 오셀로 게임이란, 상대방의 말을 포위하면 상대방말을 뒤집을 수 있는 규칙을 갖고 있는 보드게임이다. 가령 상대방 흑색 말에 포위되면 보드 위에 늘어선 백색 말들이 뒤집혀 갑자기 흑색 말들로 바뀌어 버린다. 순식간에 '도둑맞은' 느낌이 드는 게임. 다몬은 오셀로 게임을 하면서 게임말이 내는 목소리를 듣는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의 대목중 "저 녀석을 우리편으로 끌어 들이고 싶은데, 저위치에선 다보이겠지?"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읽은 독자들은 알겠지만- 순식간에 상대방으로 존재변이 되어지는 오셀로 게임의 속성과 겹쳐지면서 후반부에 펼쳐질 사건에 대한 암시로 읽힌다. "선생님, 아이코도 이 게임에 참가합니까?(p.86)""이 게임은 보아하니 어제 오늘 시작된게 아닌 모양이다.그 기원은 다몬이 교이치로를 알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이렇게 큰 게임이었다니 반칙 아닙니까.(p.98)" "그게 이 게임의 답입니까?(p.107)" 이와 같은 술회에서 '게임'은 표피적으로는 다른 게임이지만, 주제와 호응하는 큰 맥락상 오셀로 게임의 이미지로 종착되어진다.

 

 

 

작품의 주제와 호응하는 책커버에 관하여

옛날부터 사람들은 모든 생명체가 물에서 태어나며, 생명을 지속시켜주는 물질이기에 물을 '탄생과 소생'의 상징으로 보았다. 내가 따뜻한 물로 채워진 욕조 속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는 것도 어쩌면 내가 물로부터 온 존재이기때문일런지 모른다. 물 속에 잠겨서 나는 비,강, 바다, 수액, 젖, 체액, 피등으로 자연순환되는 물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종교적인 세례의식은 죽음과 매장, 생명과 재생을 의미하고, 물에 잠겼다가 물 밖으로 나올때 새로운 인간으로 소생한다고 한다. 세례와는 다른 맥락이지만, 여기 물이 다른 존재로 재생되어지는 배경으로 쓰인 한권의 소설이 있다. 온다 리쿠의 [달의 뒷면]. 이 작품은 일본의 수상도시 '야나가와'를 모델로한 가상의 도시'야나쿠라'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기이하고 오싹한 이야기인데, 배경으로 상정된 물이 중요한 상징성을 띠고 있다. 물이 삶과 죽음의 매개자라는 인식은 고래(古來)로 부터 있어왔었다. 땅을 비옥하게하는 인자이기도 했지만, 홍수와 같은 파괴의 힘을 갖고 있기에 양면성을 지닌 존재. 이 작품에서 물은 단순히 이러한 양면성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평소 깊이를 알수 없는 물에 대해 막연한 공포와 신비함을 느낀적이 많은데,그 심연에 대한 공포는 인간 누구에게나 내재된 감정일지도 모른다. 온다리쿠는 그런 인간의 감정을 재빠르게 간파하여 자신의 상상력의 볼륨을 최대치로 올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뒷면을 뒤집어 보여준다.이 책 어디에서인가 작가 스스로가 이야기한 "인간의 상상력만큼 무서운 건 없으니까(p.93)"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비채에서 만든 책 장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역시 물의 색이라 부를 수 있는 푸른 빛을 사용했다. 청색계통은 진한 코발트빛 부터 연한 사파이어색까지 다양한데, 비교적 밝은 색조의 사용은 전반적으로 책의 분위기를 산뜻하게 만들었다. 책의 내용은 조금 어둡고 스산한 느낌이라, 뜻밖의 이런 밝은 색채의 대담한 사용은 무척 참신하고,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책커버에 펼쳐져 있는 그림은 분명 물의 도시 '야나쿠라'를 형상화한 것일텐데, 물길에 파란색을 칠하지 않고, 백색으로 남겨놓은 반면 하늘 쪽에 파란색이 칠해져있다. 하늘 쪽에 파란색을 입힌 것은,어쩌면 비를 표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이 작품 내내 하늘에서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비는 '생명과 물'을 표징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런데, 생각의 지느러미를 좀더 움직여보니, 그것보다는 편집부쪽에서 의도적으로 고정관념을 살짝 뒤집은 것이 아닐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되었다. 물길을 일부러 파란색을 넣지 않아서 좀더 무기질적인 느낌이 강하고, 어찌보면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달의 뒷켠에 있는 마을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오셀로 게임에서 늘어선 말을 살짝 뒤집듯이 기존 생각을 뒤집어 색다른 효과를 내준 편집부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기존생각을 뒤집어, 안보이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 [달의 뒷면]의 큰 테마이기도 하기에 더욱더 인상적이다.

 

한가지 더 말하자면, 책 커버에서 눈에 띄는 것은 마을 곳곳에 보이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자니,[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형태의 나무가 오래된 목조가옥을 에워싼 모습은 흡사 검은 불길이 집을 휩싼 채 하늘을 저주하는 것처럼 보인다.(p.24)],[사이프러스는 생명을 나타내는 동시에 죽음을 상징한다고 해요...여기 야나쿠라에 딱 맞지 않아요? 삶과 죽음이 늘 등을 맞대고 거기에 있어요.(p.353)]같은 묘사나, 후반부에 다몬이 검은 사이프러스로 둘러싼 민가를 찾아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스인들이 사이프러스를 지옥에 바쳤다는데서 이 나무는 '죽음과 장례'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고, 지금도 카톨릭에서는 교황이 죽으면 사이프러스 나무로 만든 관에 시신을 넣어 매장한다고 한다. '죽음과 재생'... 이라는 작품의 주제 속에서 나름 중요한 메타포를 담고 있는 이 나무를 놓지지 않고 책 커버에 표현해낸 디자인팀은 상찬받아 마땅하다.

 

끝으로 북커버 위에 펼쳐진 야나쿠라 마을 그림중 색채를 부여받은 네집은 (겹친 부분제외하면 네집만 색채가 있고 나머지는 흑백이다),단순한 생각이지만, 다몬, 교이치로, 아이코, 다카야스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텅빈 거리에 남겨진 4명. 그러나 책 커버의 마을엔 사람이나 어떤 동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황량하다. 하늘은 텅비어있다. 그점이 무척 의미심장하다. 생중사(生中死).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느낌이랄까. 종합적으로 볼때, 소재에 부합하여 굉장히 신경 쓴 책장정이다.

 

 

 

 (원래대로라면, 사진처럼, 물길에 파란색이 들어가야했겠지만, '비채'는 오히려 하늘 공간에 파란색을 칠해서 그 고정관념을 전복시켰다. 그결과 다른 시각을 펼쳐보이며 색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책에 등장하는 비둘기 모양의 피리를 밤에 불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보오 또는 오오하고 낮고 단속적인 소리가 달빛 아래에서 울리겠지. 비둘기 모양의 피리는 그 묘사가 잔잔하게 스며드는 감성에 맞닿아 있어 직접적인 충격은 좀 둔화된 듯 싶지만, 가만히 곱씹어 볼 수록 꽤나 소름끼친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째서 섬뜩한지는 아직 이 책을 읽지않은 독자의 기쁨을 뺏어갈 수 없기에 말할순 없지만, 서정적인 감성과 차오르는 공포의 혼거는 온다리쿠의 매력이자 특징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특정 장소가 가지고 있는 힘'이란 것에 상당한 매력을 느껴서, 접근 가능한 장소에 이야기 입히기가 수월하다는 온다리쿠. 예의 이 작품에서도 모세혈관처럼 수로가 펼쳐진 야나가와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견고한 상징성으로 무장된 수작(秀作)을 만들어냈다. 읽는내내 온다 리쿠가 발견한 우주의 비밀에 놀라움을 금치못했음을 고백한다. 굳이 나눈다면, 만화계의 작품이겠지만 (작가 내부에서 분명히 자신의 작품을 만화계/소설계로 나눈다고 한다), 허황되고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작가가 펼쳐보이는 축축한 정서와 소름끼치는 상상력에 침윤되다보면, 오히려 손으로 까끌하게 만져질 듯한 사실성이 느껴진다. 이젠 온다리쿠의 팬들은 온다리쿠의 장편 중에서 가장 주목할 작품중 하나로 망설임없이 이 작품을 꼽아야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이책을 만족스럽게 읽은 독자들의 관심이 주인공 다몬이 등장하는 다른 작품 [불연속 세계]에 (작가의 고민이 다양한 방향으로 전이되었음을 알수 있는 단편집이다) 쏠릴 것이라는 것은 바보라도 어렵지 않게 추측 할 수 있다. 이 작품 [달의 뒷면]과 [불연속 세계]가 얼마만큼의 친연성을 맺고 있는지 살펴보는 방식의 독법도 꽤나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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