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학 (Beyond The Years, 2007)
감독 임권택
출연 조재현, 오정해, 임진택, 장민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씨네21+캡쳐좀 했습니다. 봐주면 안될까
무지하게 정신없는 7월을 보내느라 또 잠시 깜빡하여 故이청준 선생의 기일을 쉭~지나쳤다. 하물며 어제 영화 보러 가서야 광복절이구나 그렇군, 8월이구나 했으니 정신이 없긴 없다.
우리에게는 「천년학」보다는 「서편제」로 더 가까운 이청준의 원작소설 「남도사람」. 이미 한번 만든 서편제를 리메이크 한것임둥 상이 또 받고 싶었냐는 둥 온갖 무식한 악플들이 판치고 있지만 내가 서편제가 아닌 「천년학」을 선택한 이유는 개봉 소식과 함께 본능적으로 무엇인가 '직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직감과 틀리지 않게 개봉 1년 후 즈음하여 그의 부고가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다. 서편제의 포부와는 달리 너무나 조용하게 개봉되고 인터뷰하는 배우들도 참으로 말을 아꼈던 천년학. 아마도 그들간의 유대감과 우정을 바탕으로 하여 한장의 기념사진을 남긴것 같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 임권택 감독 이야기가 나오면 '저 살자고 권력에 아첨한 변절자'라고 뭐 아는듯 지껄였던 적이 있다. 사람은 배워야 된다고 대학물 먹고 예술계의 더러운 이면이라던지 생존의 방법이라던지. 곧은길 가다가 엄청난 실력을 뒤로하고 실종되거나 조국을 떠난 비극의 천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담담히 그의 선택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무슨 자격?). 까라면 까야지요. 반공하라면 해야지요. 벗으라면 벗지요.가난한 좌익의 자식으로 태어나 못배움에 무시당하고 허덕인 진짜 한이진 삶이 아니던가. 본인의 신념과 재능은 고사하고 그냥 속사포같이 정부휘하의 영화만 찍어내다 요절한 이만희 감독처럼, 그저 욕으로 일관하거나 함부로 말로 뱉을 일이 아니다. 지금 다시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도록 민망한 계몽영화들이나 국민의 우민화에 일조하던 일제시대 현대소설들의 영화화등 한 발 담그고 있었지만 결국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 남는 자가 이간다'고 그의 연륜과 함께 나름의 '취향'과 포부를 가진 작품들이 나왔다. 서편제는 아마도 그 늦은 신호탄이었을 것이다.
서편제의 이 장면을 잊지 못해 대학교때 혼자 청산도에 간적이 있다. 그때는 '유명해질까 말까? 조금은 알려졌지만 아직은 관광객이 덜한?' 상태라 조용하고 개끗하고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완도로나오는 뱃길에서 큰 것을 깨달았지만 말이다."이런..필름 3통을 잃어버렸다."
지금은 언어영역에서, 그리고 여러 영화채널에서 교과서 처럼 읊어주니 그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다. 다만「남도사람」을 읽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서편제와 천년학, 원작 소설 사이의 미묘한 차이와 감정 이입이 있다. 천년학을 '기념사진'이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함께 영화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임권택 감독이 '상타려는 영화만 만든다'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고 항상 무슨 영화든 집중조명에 한국적인것과 외신의 반응에 관심을 두게 했는데 왜 천년학은 유독 조용했을까. 원작자와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던 감독은 '정말 순수하게'영화를 만들고 싶었을지 모른다.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어서 '햇덩이'소리꾼 아버지는 더욱 구체적으로 관람자에게 이야기되고 아버지의 거대한 숙명이 아닌 송화의 목소리가 동호의 두려움을 잡고 그리움이 되었다. 「서편제」와 「천년학」의 갈등과 그리움은 더욱 구체적이고 화선지에 배어나온 물처럼 축축하지만 절대 찢어지지 않는다.
■ 영화로 구체화된 소설의 관념
동호의 동거녀 홍단심으로 나오는 오승은. 자식을 잃고 정신병원 갖히고 자살하는 비운의 여인이다.
소설에서는 동호의 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청준의 심오함이 그렇듯 소설에서 동호의 두려움은 영상으로 표현하기에는 무언가 추상적이다. 운명의 압박, 아버지에 대한 위압감. 극에서는 경제적 궁핍이나 소리에 대한 미래가 없어짐에 대한 환멸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동호의 삶도 있다. 소설에서 특별한 직업 없이 그 아버지의 숙명과 한에의해 떠도는 동호와 달리 영화의 동호는 보통 사람의 삶에 뛰어들어 유랑하고 여자를 만나고 가정을 가진다. 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쳐 약재상 영업을 하며 계속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가정에는 소홀하기 까지하는 역마의 포로가된다. 「서편제」에서 소리꾼 아버지와의 만남과 성장과정, 송화의 한과 소리길이 중점이었다면 「천년학」에서는 철저하게 화자인 동호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버지와 누이를 떠난 뒤 동호의 삶. 그리고 송화의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해듣게 되고 계속되는 방랑과 아내(동거녀)와의 마찰은 더욱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소설에서 더욱 개인의 한과 숙명에 대해 깊이 접근하려 했다면 이는 영상으로 표현되면서 눈으로 보여질 수 있는 갈등으로 교체되고 관람자의 이해와 설득을 돕는다. 영화는 소설의 리메이크라기보다는 연작소설이 시선을 달리한 두편의 영화와 만나면서 하나의 완벽한 구조를 이룬 것 같다.
뿌리를 찾아 제주까지 간 송화. 부모는 4.3사건으로 몰살당했다. 감독의 쓰라린 어린시절이 함께 오버랩된다.
소설에서 송화와 동호는 혈연관계다. 영화에서 송화는 주워온 남, 소리꾼아버지와 동호 어머니 사이의 딸은 사산되는것으로 나오는데 이로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매가 가지게 되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표현되지 못하는 가슴아픈 사랑이 느껴진다.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 하나없이 북채와 소리로 그 한을 그나마 '짐작'만 했던 「서편제」보다 「천년학」에서의 그리움이 조금 더 절절하다. 「남도사람」2부에서 송화와 동호의 만남은 거의 훑어가는 수준이지만 「천년학」은 찾는 과정과 함께 그들의 만남을 더욱 기다리고 완전하게 만든다.
■ 욕심없이 익은 소리
「서편제」를 통해 공주처럼(?)데뷔한 오정해. 그녀는 소리를 하면서 명창 김소희, 배우를 하면서 임권택 감독의 고마움에 대해 인터뷰때마다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곤 한다. 소리를 하면서도 송화처럼 한을 끌고 가지 않고 배우를 하면서도 과도한 욕심 부리지 않는, 요즘 말로 하자면 "대충 해서 편하게 살고자 하는거냐?"라는 소리 듣기 십상이지만 사람이 참 웃기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법. 공부도 하고 있고 연극도 진행중이고 마당놀이도 하고 사실상 매해 할일 잘 찾아하고 계신다. 이것저것 잡다한거 하고 과로로 쓰러져야만 연예인이 일을 하는것 처럼 보인 다는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녀의 과도한 욕심없고 항상 의리가득 찬 그 마음가짐이 좋다. 92년 미스춘향 선발대회를 보고 임권택감독의 삘에 딱! 꼳힌 것 처럼 다른 배우는 교체해도 송화만은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16년 전과 비교해도 큰 변화없이(물론 켜놓고 보면 차이는 좀 있지만)한결같이 송화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다. 나이가 먹은 덕에 오히려 그때 보다 소리는 더욱 무르익었고 아버지의 사후 떠도는 인생역정도 더욱 몸에 배어들어온다. 연기에 초짜였던 그녀가 훨씬 연기도 잘하게 된 2007년의 「천년학」은 오정해의 짠밥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지금은 오정해같은 얼굴로 미인대회에 누가 나오겠냐마는 실로 그만한 미스춘향이 또 나올까 싶다.
- 그러고 보니 소설엔 없는 인물이지만 낙산거사도 그대로 나온다.
백사노인의 횡재하는 최후. 지옥이 문전이니 살아서 무릉도원을 느끼고자 함이었을까. 오정해는 김홍도의 그림같다.
백사노인의 소실이 되어 사랑받고 맹인학교에서 공부도한 송화. 병약한 백사노인은 어떤 욕정이라기 보다는 그가 좋아하는 매향리 처럼 매화에 어울리는 한폭의 그림같은 송화를 무척이나 아낀 것이리라. 일정 때 친일하여 재물을 얻었으나 그 모든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백사노인이 숨을 거둘 때 흥타령을 부르는 이 장면에서는 눈물이 콸콸 쏟아졌다. 오정해가 명창 김소희선생의 내제자로 있을 때 '흥타령'같은 노래는 배우지도 못했다고 한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것은 제대로 부를 수도 없거니와 '인생이 그렇게 흘러간다'는 이유에서였다고. 얼마 전 '붕어빵'에 나와서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이 돌아가실때 꼭 막둥이(오정해)가 상여소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단다. 살아서 정작 아버지앞에서 소리를 잘 하지 않아 마음에 걸렸는데 돌아가실 때 본인이 직접 상여소리를 했단다. 왠지 상여나갈때의 그 마음과 목청에서 뿜어나올 한이 느껴져 나도 눈물이 났다. 그녀의 아버지가 '흥타령'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방송중 한곡조 뽑아내는데 버라이어티 분위기 숙연해지고 같이 출연한 어린 아들도 눈물 찔끔해서 내가 '왜이래엉엉' 했었다.
이제 임권택+정일성 영화에서의 아름다운 화면은 더이상 말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백사노인의 죽음과 함께 흩날리던 벛꽃(인듯)과 흥타령은 영화를 흡족하게 본 사람이든 욕을 하는 사람이든 가슴에 깊이 박혔을 것이다. 송화를 예뻐하던 백사노인이 온갖 패물을 주고 다이아, 루비, 진주 반지중 하나를 고르라는 장면이 있는데 제일 싼 진주를 고르는 송화를 보고 '그 큰 욕심보가니고 긴 앞날을 어찌 헤쳐갈까나?'라고 한다. 그나마도 노인의 사후 전부 두고 군바리시절 동호가 탄피로 만든 중금속 반지를 다시 끼고 나오는데 말 그대로 '모든게 꿈이로다' 가진 재물도 자신에게 소용이 없고 사실은 백사노인의 삶이 얼마 남지도 않은것을 잘 알기에 소실로 들어앉았을 것이다. 눈이 멀어 한이오 떠돌아 한이오. 영화를 누리는 듯하다 지아비를 잃고 한이오. 역마에 무슨 도화살인지 그이에 반하는 이들은 많으나 그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떠나니 그 떠도는 한이 있다하더라도 그녀 얼마나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하고 운명과 함께 걸어가는 의연한 모습인가.
왠지 모든것을 '의리'로 하고있는듯 느껴지기 까지하는 과도한 욕심없는 오정해의 모습이 비추어 지기도 한다. 그녀의 삶은 송화의 모습에 비해 무척이나 풍족할테지만 소리를 할 때만은 남편도 자식도 자신의 모든 다른 일도 없이 오롯히 혼자일 것이다. 유행가처럼 곧잘 따라 부르기도 힘들 거니와 '내가 불러 망치느니' 안부르는게 훨씬 나은것이 또 소리아닌가(ㅋㅋㅋ). 송화의 도화살 만큼은 아니겠지만 한번이라도 소리공연을 본 적이 있다면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우뚝 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제자로 고생하던 시절의 기억도 있을 것이고 나름 자기만이 가진 한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소리를 잘 하는 사람들은 궁금하다 어떤 감정이 자신을 휘감고 있는가.
■ 우정과 애정, 혼이담긴 완성
지난 5월 故이청준선생의 고향 장흥에서 장흥군과 순천대 주최의 추모 학술제가 있었다. 문학현장 답사와 판소리 공연에 영화제까지 그야말로 모든 흔적을 한자리에서 볼수있는 투어까지 나름 알찬 학술제였던 것 같다. 생전에 순천대학교 석좌교수로 계셨고 문창과가 우리과와 같은 층이기에 바로 강연회소식들이 쏙쏙 들어왔었지만 청강 한번 해 본적이 없다. 어린시절 너무 지긋지긋한 가난에 시달려 고향과 연을 끊고 싶을 정도 였으나 나이가 들어갈 수록 글에서 삶에서 고향이 자꾸자꾸 묻어만 나왔다고 하던 고인. 「당신들의 천국」이나 「병신과 머저리」같이 이청준의 이름을 한박에 알려주는 대표작들이 무수하지만 본인도 그렇거니와 친구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남도사람」연작과 영화로 그의 이미지를 완성하고 기억할 것이다.
네티즌 평에서 뭐하러 서편제를 또 만들었나 라고 욕을 엄청나게 써 놓은 것도 보았지만 그 글을 읽고 영화를 보고 하루하루 뭔가 배우는 것이 생기고 아는 것이 생긴다면 결국 다들 알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한국적인 것'내세워서 상욕심을 부리는 노인네라던지 '한국적인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영화로 인정받겠다'던 모 젊은 영화감독의 비아냥같은(사실은 아닐지라도 그것을 의식한듯한)인터뷰가 있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 「천년학」에 대해서만은 모든것을 버린 여유가 느껴진다. 군정시절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조롱하던 그냥 그런 계몽영화나 군인영화를 만들고 명성에 비해서 생각보다 긴시간 자신의 색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 감독. 지금은 명성도 어느정도 안정도 연륜도 갖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 마음에 맞는 친구와 혼신을 다해 하나의 완성작을 내 놓았다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사람 죽으려나보다'라는 나의 우스개 아닌 소리는 개봉 1년 쯤 뒤 바로 현실이 되어 이청준 선생은 세상을 떠났고 「천년학」은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도 그를 기억할 수 있는 문학과 영상의 완벽한 결합이 되었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 속이요 이 것 저 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오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고 가는 인생 부질없다.
<그래도 지나칠 수 없는 짤방>
영화의 시작에서 바로 우정출연 하신 故이청준 선생.
엔딩크레딧이나 영화정보에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본인도 이 영화에 엄청난 애정을 쏟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본도 선생이 직접 참여 하심-
서편제에 잠시 출연하신 주요 무형문화제 故 백경 김무규 선생
영화 개봉 이듬해인 1994년 작고하셨다. 담백한 단소 연주로 더욱 이름을 날렸으며
거문고, 판소리, 산조에도 조예가 깊은 그야말로 예술가
거문고는 역시 남자가 퉁기는 멋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