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게 어때서
로빈순 지음 / 동아일보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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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 자는 것을 좋아하고 냉장고에 늘 초콜릿을 숨겨 놓을 정도로 단 것을 좋아하는 여자. 배우 오드리 헵번과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좋아하는 여자. 사랑스런 할머니로 아름답게 나이 먹고 싶어 하는 그녀는 <평범한 게 어때서>의 저자 로빈순입니다. 40대의 직장여성이자 쌍둥이의 엄마이며 곰 같은 남편의 아내인 그녀가 그리는 에세이에는 일상과 세상살이에 대한 생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무심한 듯하지만 표정이 살아있는 그림이 더해져 이야기가 더욱 재미있어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자신을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 여기면서 평범한 일상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아이들의 예측 못한 귀여운 행동들을 발견하면서, 이제는 능숙해진 회사일이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웃어넘기면서, 감정표현이 소극적이지만 그래도 한결같은 남편과 친구처럼 지냅니다. 특출나게 능력 있고 예쁘고 잘난 사람들을 만나면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지나친 관심은 사양하고 싶은 성격인지라 평범해서 좋은 점을 열거합니다. 그녀에게 부러움은 그저 잠시 스쳐가는 생각일 뿐 그들을 따라잡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음을 느낄 수 있지요. 그 마음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우들의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누리는 마음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한 장 정도 되는 이야기를 죽 늘어놓는 저자의 글 솜씨가 정말 좋습니다.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아 지루할 때 읽으면 활력소가 됩니다. 여러 면에서 저자와 비슷한 점이 많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빵에 대한 글에서 빵은 영혼을 보듬어준다는 표현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고 따끈한 음식을 좋아하는 그녀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대목에서는 내 주변의 따뜻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가족 이야기를 보면서 같은 나라에 살지만 자주 볼 수 없는 가족이 떠올라 그리워지고 결혼 전의 일상을 보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지요. 그녀는 글은 제게 기쁨과 위로를 전해주어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저자가 서른 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과거의 자신에게 할 조언 열 가지 중 대부분은 과거의 저에게도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 중 가장 공감되는 항목은 '한 시간 이상 신고 걸을 수 없는 높은 굽의 신발은 사지 말 것'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신은 굽 높은 구두는 임신하기 전까지 줄곧 발을 괴롭혔습니다. 조금만 오래 서 있어도 다리가 퉁퉁 붓고 발가락이 저리는데 왜 그렇게 높은 구두만을 고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임신 후 신게 된 굽 낮은 신발은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지요. 이렇게 좋은 세상이 있었는데 그동안 멋 낸다고 고생한 걸 생각하니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생이 끝날 때까지 7cm나 되는 구두 굽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의지대로 안 되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가짐이 참 좋아 보입니다. 감사할 것에 미처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던 게 사실인지라 책을 읽으며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 실천 좀 하고 살아야지.' 하는 말들을 중얼거렸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을 가져다주는 책을 본 게 너무나 오랜만이라 신나기도 했지요. 친한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 좋았습니다. 이런 책이라면 하루에 한 권씩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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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핀란드 육아 - 아이 스스로 행복을 찾는
심재원 지음 / 청림Life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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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의 나라로 알려진 핀란드. 사실 최근까지는 이 나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무민 캐릭터와 자일리톨 껌을 좋아하지만 유래한 나라는 별로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지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관심이 가는 나라가 바로 핀란드입니다. 엄마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하고 개인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교육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똑똑똑! 핀란드 육아>는 핀란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던 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관심 있게 본 책입니다.

 

저자는 두 달 동안 가족과 함께 핀란드의 여러 가정에서 그들의 삶을 체험합니다. 현지인들과 함께 여름을 보내다 온 그는 문화 충격을 제대로 받습니다.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우리나라와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시스템이 갖춰진 핀란드가 여러 방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책에는 핀란드 부모의 육아 방식뿐 아니라 교육과 복지에 대한 이야기도 비중을 꽤 차지합니다. 사회와 육아를 떼놓고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핀란드는 일 년의 대부분이 추운 나라라 한 달 간의 여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 합니다.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냐는 질문에 돌아온 짧은 대답은 대단히 인상 깊습니다.
"Just only sleeping and swimming!"
방학숙제는 물론 없습니다. 오로지 아이들은 물속에서 물장구치고 수영하고 보트를 타며 그야말로 신나게 놉니다. 맨 발로 흙을 디디며 산 속에서 딸기를 따먹고 버섯을 캐기도 하지요.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아이 없이 온전히 자연을 즐기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습니다.

 

방학이 아닌 기간에는 아이들이 방과 후에 무엇을 할까요? 바로 스포츠 활동입니다. 야구, 테니스, 농구, 수영 등의 운동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도 이만한 것이 없다고 여깁니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면서 원하는 운동을 하고 원하는 교육을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나라. 핀란드는 제게 점점 더 가고 싶어지는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립적인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교육을 받습니다. 남녀 모두 혼자서 집을 고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에 대한 교육도 많이 받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를 고치거나 화장실을 수리하는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요. 그래서 그런지 집을 고치는 사람도 많습니다. 방문하는 집마다 집 구조가 달라 화장실 위치를 꼭 물어봤야 했다는 저자는 가족의 필요에 따라 내부를 바꾸는 창의성을 높이 삽니다. 거실등을 없애고 아이의 그네를 설치하기도 하고 집 한가운데 화장실을 배치하기도 합니다. 베란다를 서재로 사용하기도 하지요. 이런 '재미있는 집'에 사는 아이들은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게 될 것 같습니다. 틀에 박힌 듯한 사고를 하지 않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네요.

 

핀란드인 사람들은 평등과 배려를 중시합니다. 핀란드에서는 임신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출산용품이 들어 있는 마더 박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생후 12개월까지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옷, 이불, 동화책 등이 가득 담긴 박스는 실제로도 유용하지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마더박스를 통해 태어나면서부터 평등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상관없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은 평등의 개념을 몸으로 체득합니다. '같은 출발'을 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겠지요.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핀란드도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나라입니다. 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내는 세금은 소득의 최대 50퍼센트를 상회하지만 사람들은 세금 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세금을 낸 금액 이상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기반이 된 데에는 투명한 세금관리 정책의 힘이 컸겠지요. 세금을 올바로 사용한다는 믿음 없이는 그 많은 세금을 낼 생각이 없어질 테니까요.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라는 사실만으로도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이런 정보들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보니 정말 핀란드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누리는 듯 합니다.

 

핀란드에는 아름다운 옛 건축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건물의 내부는 최첨단을 걷고 있지요. 정부 차원에서 펼친 부엌 합리화 정책은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기여합니다. 하루에 가사노동을 하는데 드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장면에 눈이 번쩍 뜨일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절약된 시간은 고스란히 가족과 함께 하는데 쓰이게 되지요.

 

가족을 중시하는 핀란드 사람들은 4시에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갑니다. 퇴근 후에 직장동료와 시간을 보낼 일은 거의 없지요. 가족을 우선순위에 두는 문화는 정말 마음에 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 분위기나 회사 구조상 야근을 밥 먹듯 하고 회식에 꼭 참석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많지요. 회식을 낮 시간으로 바꿔 식사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회사도 생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술 권하는 사회'를 벗어나려면 앞으로 한참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육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조금은 희망을 가져도 될까요. 부모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데 시간을 들이고 애정을 많이 쏟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핀란드에도 입시 경쟁이 있고 사교육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분에 한정된 것이라 대부분이 누리는 교육환경은 충분히 부러워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선행 학습이 필요없는 수업, 친구와 경쟁해야 할 필요가 없는 교육은 꿈속에서나 볼 만한 일이라 절로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나라도 서서히 복지에 대한 개념이나 교육에 대한 개념이 바뀌지 않을까요. 경쟁만을 하면서 어린 시절을 몽땅 보내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건강한 몸, 건강한 정신을 기르려면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열심히 노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더 그런 마음이 큽니다.

 

지금은 그런 부러운 점들을 가정에서 실행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의 말을 중간에 끊는 법 없이 경청하고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 우선 그것이라도 시작하면서 아이의 미래를 내다봐야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교육제도가 조금씩 바뀌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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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초지로 - 고양이와 집사의 행복한 이별
고이즈미 사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콤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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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있는 고양이의 뒷모습이 참 편안해 보입니다. 저자가 고양이, 초지로를 떠올리며 과거에 봤던 모습을 그려냈겠지요. 매일 봤던 익숙한 창가 풍경에서 초지로가 빠지면 얼마나 허전할까요. 책을 덮고 생각해 보니 마음이 묵직해집니다.

 

<안녕, 초지로>는 초지로가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후 반 년 동안의 일을 글과 그림으로 엮어낸 책입니다. 저자가 그린 따뜻한 그림은 초지로의 느긋한 성격이나 때에 따른 기분을 잘 보여줍니다. 남매 고양이가 햇볕을 쬐고 뒹구는 모습, 아이와 고양이들이 함께 자고 노는 모습은 흐뭇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온 가족이 평범하게 그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살았었지요. 초지로가 10살이 되던 해, 갑작스러운 종양을 발견하기 전까지는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정신을 집중해 초지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지 고심하는 부부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초지로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평소처럼 대하려 노력하는 저자는 더할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지만 긍정의 힘을 믿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하지요.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영정사진을 준비하고 초지로를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그녀는 마지막까지 돌봐 줄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초지로의 갓 태어난 모습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울고 웃는 저자를 보며 참 힘들었겠다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야 하는 기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픈데 실제로 겪는 사람은 그 마음이 오죽할까요. 10년 동안 함께 한 초지로를 떠나보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만나는 것은 운명인 것 같습니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말입니다. 사랑을 주고받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그 시간들은 정말 소중하지요. 시간이 흘러 돌이켜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낌없이 사랑을 했을 때인 것 같습니다. 동물은 사람보다 수명이 짧아 키우다 보면 그 마지막을 보게 되지요. 그럴 때 너무나 슬프지만 소중한 추억들을 꺼내 보듬어 보며 함께 지낸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못 다해 준 일들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기기보다는 '그리워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는 저자처럼 말입니다.

 

동물털 알레르기가 있는 제 친구는 강아지를 키웁니다. 새끼 때부터 키운 강아지는 12살이 됐는데 아픈 데가 무척 많지요. 온 가족이 강아지를 돌보는데 그 정성이 대단합니다. 친구는 알레르기 때문에 많이 안아주지는 못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사랑을 표시합니다. 떠날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고 슬퍼하는 친구를 어떻게 위로하면 좋을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작은 존재들을 이렇게라도 생각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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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잊지 마
미셸 뷔시 지음, 임명주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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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밝혀지고 이야기가 끝나 가는데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듭니다. 이런 경우에는 마지막까지 의심을 버릴 수 없지요. 결국 밝혀지는 진실에 한숨을 내쉬고 저자에게 졌음을 고할 수밖에 없는 그런 스릴러 소설을 원한다면 <절대 잊지 마>를 추천하고 싶네요. 뻔한 결말의 소설을 이제 그만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집어 들면 됩니다. 독자의 예상을 엎어버리는 이야기를 구상하려면 저자는 얼마나 머리를 써야 할까요. 그의 소설 중 <절대 잊지 마>만을 봤을 뿐이지만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 노력가, 거기에 인간을 보는 따뜻한 시각까지 겸비했다는 찬사를 들을 만큼 뛰어난 작가라는 데 동감합니다.

 

프랑스의 노르망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주인공 자말의 시선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아랍인 출신으로 의족을 끼고 있습니다. 피부색과 의족으로 인해 늘 경계의 눈빛을 받아야 했던 그는 스스로 운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요. 그러나 몽블랑 울트라트레일을 완주하는 최초의 장애인 선수가 되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매일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겨울 휴가 기간에도 작은 마을 이포르에서 절벽을 오르내리며 훈련을 하는 것을 보면 그 목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운명을 바꾸게 될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그날도 자말은 날이 밝자마자 해안절벽을 뛰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달리다 철조망에 걸린 빨간색 스카프를 보고 멈춰 서고 말지요. 그는 스카프를 들고 가다 절벽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서 있는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찢어진 옷을 입은, 슬픈 얼굴의 그녀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합니다. 자말은 여인을 구하려 스카프의 끝을 건네지만 그녀는 스카프를 들고 뛰어내립니다. 그는 분명 그녀의 몸에 손댄 적이 없는데 스카프는 떨어진 그녀의 목에 감겨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자살이라 생각한 그와는 달리 경찰은 타살로 결론을 짓고 자말은 용의자가 됩니다. 절벽 밑에 있던 목격자들도 자말의 결백을 믿지 않는 눈치입니다. 10년 전에 일어난 2건의 살인사건과 범행수법이 똑같다는 이유로 자말은 용의자에서 연쇄살인 용의자가 되고 맙니다. 빨간 스카프를 보고 멈추지 않았더라면, 여자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뒤 자말에게 배달된 갈색 봉투 안에는 예전의 살인 사건들에 관한 문서가 들어 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는 갈색 봉투는 자말과 독자를 동시에 혼란스럽게 합니다. 누군가가 그를 도와주려는 것인지 파멸시키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거기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행동이 이상합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유머 있고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자말. 그가 순수해 보였지만 점점 거짓말에 능숙한 사기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연쇄 살인범으로 쫓기는 자말은 어떻게 보면 결백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사이코패스인 것 같기도 합니다. 

 

위험에 처한 이에게 손을 내밀었을 뿐인데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를 보며 결말이 궁금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명을 쓴 것인지 결백을 가장한 것인지 끝까지 알 수가 없었으니 다 읽어내야 했지요. 이야기 중간 중간경찰서와 국립과학수사국 사이에 오간 서신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이 흥미를 더합니다. 절벽이 붕괴되면서 발견된 세 구의 유골이 살인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 시신들은 누구인지 추측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저자가 뿌려놓은 여러 가지 단서들이 서서히 조합되는 것을 바라보며 탄식할 때까지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상황을 의심할 때 떠오르는 진실을 잡아챌 수 있는 사람은 스릴러 소설의 강자라 할 만 합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노르망디의 해변을 떠올리게 하고 죄수의 딜레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이 소설은 아름다운 풍경에서 일어나는 처참한 사건들을 통해 삶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듯합니다. 사람들이 자행하는 부당함에 대해, 믿음과 배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일 또한 생각나게 하는지라 한참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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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건드리니까 사계절 동시집 12
장철문 지음, 윤지회 그림 / 사계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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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습니다. 햇살은 따뜻해지고 날카롭던 바람은 부드럽습니다. 겨울이 유난히 긴 것 같아 봄을 기다렸는데 '저수지는 일렁이고 / 바람은 살랑이고 / 나뭇가지는 하늘거리고(「봄이잖아, 봄이니까」)' 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날씨를 드디어 맞이했네요. 이 동시를 쓴 시인은 봄을 맞는 기분을 한껏 느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기쁨을 나눠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자꾸 건드리니까>는 동시집입니다. 봄 뿐 아니라 사계절의 변화가 담겨 있습니다. 자연과 주변 사람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이의 표현은 솔직합니다. 꾸밈없이 활달한 모습이 느껴져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지요. 엄마의 잔소리, 좋아하던 언니들, 시골에 갔던 기억, 친구들과 놀던 기억들이 떠올라 한동안 즐거웠습니다. 아이가 보는 세상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다는 생각도 듭니다.

 

 

시인의 마음에는 어릴 때의 순수함이 아직도 가득한 것 같습니다. 어른이 동시를 쓰기는 참 힘들 것 같은데 이렇게 동심을 잘 표현해 내는 것을 보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다정하게 보는 마음이 없이 이런 시가 나오기는 힘들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어려운 시를 보면 그 의미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플 때도 있는데 이 동시집을 읽다보면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어 좋습니다. 귀여운 그림이 시와 잘 어울려 그 뜻을 더 잘 나타내는 듯 합니다. 아이들이 쉬운 단어, 참신한 표현력을 보면서 동시의 세계로 빠져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으면 좋을 시집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사람들이 찾는 시가 되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참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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