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잊지 마
미셸 뷔시 지음, 임명주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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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밝혀지고 이야기가 끝나 가는데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듭니다. 이런 경우에는 마지막까지 의심을 버릴 수 없지요. 결국 밝혀지는 진실에 한숨을 내쉬고 저자에게 졌음을 고할 수밖에 없는 그런 스릴러 소설을 원한다면 <절대 잊지 마>를 추천하고 싶네요. 뻔한 결말의 소설을 이제 그만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집어 들면 됩니다. 독자의 예상을 엎어버리는 이야기를 구상하려면 저자는 얼마나 머리를 써야 할까요. 그의 소설 중 <절대 잊지 마>만을 봤을 뿐이지만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 노력가, 거기에 인간을 보는 따뜻한 시각까지 겸비했다는 찬사를 들을 만큼 뛰어난 작가라는 데 동감합니다.

 

프랑스의 노르망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주인공 자말의 시선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아랍인 출신으로 의족을 끼고 있습니다. 피부색과 의족으로 인해 늘 경계의 눈빛을 받아야 했던 그는 스스로 운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요. 그러나 몽블랑 울트라트레일을 완주하는 최초의 장애인 선수가 되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매일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겨울 휴가 기간에도 작은 마을 이포르에서 절벽을 오르내리며 훈련을 하는 것을 보면 그 목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운명을 바꾸게 될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그날도 자말은 날이 밝자마자 해안절벽을 뛰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달리다 철조망에 걸린 빨간색 스카프를 보고 멈춰 서고 말지요. 그는 스카프를 들고 가다 절벽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서 있는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찢어진 옷을 입은, 슬픈 얼굴의 그녀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합니다. 자말은 여인을 구하려 스카프의 끝을 건네지만 그녀는 스카프를 들고 뛰어내립니다. 그는 분명 그녀의 몸에 손댄 적이 없는데 스카프는 떨어진 그녀의 목에 감겨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자살이라 생각한 그와는 달리 경찰은 타살로 결론을 짓고 자말은 용의자가 됩니다. 절벽 밑에 있던 목격자들도 자말의 결백을 믿지 않는 눈치입니다. 10년 전에 일어난 2건의 살인사건과 범행수법이 똑같다는 이유로 자말은 용의자에서 연쇄살인 용의자가 되고 맙니다. 빨간 스카프를 보고 멈추지 않았더라면, 여자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뒤 자말에게 배달된 갈색 봉투 안에는 예전의 살인 사건들에 관한 문서가 들어 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는 갈색 봉투는 자말과 독자를 동시에 혼란스럽게 합니다. 누군가가 그를 도와주려는 것인지 파멸시키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거기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행동이 이상합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유머 있고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자말. 그가 순수해 보였지만 점점 거짓말에 능숙한 사기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연쇄 살인범으로 쫓기는 자말은 어떻게 보면 결백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사이코패스인 것 같기도 합니다. 

 

위험에 처한 이에게 손을 내밀었을 뿐인데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를 보며 결말이 궁금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명을 쓴 것인지 결백을 가장한 것인지 끝까지 알 수가 없었으니 다 읽어내야 했지요. 이야기 중간 중간경찰서와 국립과학수사국 사이에 오간 서신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이 흥미를 더합니다. 절벽이 붕괴되면서 발견된 세 구의 유골이 살인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 시신들은 누구인지 추측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저자가 뿌려놓은 여러 가지 단서들이 서서히 조합되는 것을 바라보며 탄식할 때까지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상황을 의심할 때 떠오르는 진실을 잡아챌 수 있는 사람은 스릴러 소설의 강자라 할 만 합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노르망디의 해변을 떠올리게 하고 죄수의 딜레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이 소설은 아름다운 풍경에서 일어나는 처참한 사건들을 통해 삶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듯합니다. 사람들이 자행하는 부당함에 대해, 믿음과 배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일 또한 생각나게 하는지라 한참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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