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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정의로운가 - 서울대 이정전 교수의 경제 정의론 강의
이정전 지음 / 김영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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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이 끝나고, 방영 되었던 시사 프로그램이니 다큐멘터리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떤 아주머니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무슨 질문에 대한 답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주머니의 대답은 "MB가 다 해주실거야" 였다. 종교에 미쳐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광신도들이 흔히 말하는 "신이 다 해주실거야"라고 하는 것처럼 근거가 없는 맹목적인 믿음이다. 이런 믿음에 대해서 비웃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사회의 건전성을 쉽게 해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수 경제학자들과 보수 언론 그리고 재벌이 똘똘 뭉쳐서 만들어낸 "시장이 다 해결해 줄꺼야"라는 믿음은 사회의 건전성을 크게 해친다.

 

시장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두 가지 관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시장이 자유로울 때 사회적 부는 증가한다는 믿음과 시장은 그 자체가 정의롭다는 믿음인 것 같다. 시장이 사회적 부를 증가 시킨다는 믿음은 누구나 노력하면 시장에서 부를 얻을 수 있는 욕망과 합쳐진다. 그래서 시장이 가지고 있는 추악한 내면, 냉혹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쉽게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너도 노력해서 강자가 되면 되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한다. 시장의 모순을 바로 잡으려 하기 보다는 시장 참여자 개인의 무능으로 돌려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시장은 신성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에 시장의 모순이나 잘못이 아니라는 맹목적 믿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럼 시장은 절대적으로 옳은 가, 그래서 시장은 그 자체로 정의로운가? 여전히 학문적 이론과 연구를 바탕으로 시장이 그 어떤 것보다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시장은 이상론적 시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곳과 전혀 다르다. 이론과 현실의 차이는 우리가 이상론적 시장에 대해서 회의를 품을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장을 추종하는 주장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광신도들의 맹목적인 믿음이나 특정 정치인을 그 자체로 우상화 하는 믿음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시장에 대한 맹신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다른 시장만능주의 비판 서적과는 다르게 시장이라는 것을 경제학적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학문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이 많이 부족해 보이는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사회 현상의 분석에만 치중하는 저작들이 많은 반면에, 서양의 석학들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경제적 문제를 접근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경제학자들 서적 대부분이 휘발성이 강하다. 시대의 흐름에 취합하는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서적들이 많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국내 경제 현상에 대해서 알고 싶을 때를 제외하고는 국내 경제학자의 서적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저자의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연구가 경제학이라는 학문과 어우러져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책 표지에 "한국의 경제학자가 이런 책을 써주길 기다렸다!"라는 문구를 보면서 그냥 광고려니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이 책은 그 문구 그대로 내가 정말 기다려왔던 책이다.

 

한 때 큰 인기를 끌며 우리 사회에 '정의'에 대한 화두를 던졌던 마이클 센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였다면, 이 책은 우리 사회에 '시장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센델의 책과 많이 중복되는 면도 없지 않다. 이 책의 저자가 인용하는 저자들 역시 센델이 인용했던 철학자들이 중심이기 때문에. 차이점이 있다면, 센델은 양쪽의 의견을 아주 균형있게 다룬다. 함부로 어느 것이 가장 정의롭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란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만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의관을 제대로 바라보고 다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생각의 수용 가능성의 폭을 상당히 넓혀준다.

 

하지만, 이 책은 센델과는 다르게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명확한 근거를 들어서 설명한다. 시장에 대한 맹목적인 신화에 강하게 도전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경제성장의 신화에 대한 부분이다. 저자는 경제 성장에 대해서 "경제성장이 없이 상태를 가장 용납하지 못하는 체제가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우선 경제성장으로 인한 물질적 풍요가 자본주의를 정당화함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구실이 되고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한 구조적 불평등과 모순을 은폐하는 효과적인 장막이 되고 있다. 경제성장을 통해서 앞으로 언젠가는 누구나 잘살게 된다는 희망을 가지게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소외 계층의 불평을 무마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자본가계급의 엄청난 사치와 낭비를 선망의 대상으로 미화시킨다."라고 말한다. 학문적으로 전혀 증명된 바가 없는 낙수효과가 유효하다고 대중을 기만하는 기득권층의 행태에 대한 인상 깊은 분석이다. 또 한편으로 성장의 한계와 낙수효과의 미미 또는 실패를 직접 경험하고 있음에도 아직 우리 사회는 성장과 분배를 두고 여전히 논쟁 중인 상태를 보면 이 프레임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세삼 느끼게 된다.

 

저자는 자본 소득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그는 자본소득이 구린 이유는 단순히 자본 시장 참여자들의 탐욕 때문이 아니라, 자본시장 자체가 가지는 부정함 그 자체가 문제라고 말한다. 자본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 자체가 가지는 일반 상품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서브 프라임 사태를 야기했던 파생상품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다한 경영진의 보수가 자본주의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것까지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들은 기본적으로 철학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더 깊이 있게 파고 든다. 이렇게 시장의 한계에 대해서 근거를 들을 쌓아가면서 시장의 태생적 한계를 마르크스를 인식을 통해서 보여준다. 저자는 "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까닭은 정의롭지 못해서가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가 정의의 개념과 권리의 개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근원적 결함이 있는 사회라고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 만큼 지금 우리에게 만연한 시장의 신화는 근본적으로 치명적인 결함 숨긴 채 만들어진 허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쉽게 시장의 정의가 어떤 것이라고 단정하지 못한다. 그만큼 정의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는 쉽게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회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분화되고 역으로 분화되고 각 영역별로 독자적인 정의의 원칙이 지배하는 현상 역시 그런 분화 및 합리화의 큰 흐름 속에 있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 영역을 지배하는 정의의 원칙은 옳고 다른 것은 틀렸다고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 어렵다. 또한 어느 특정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서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지 아닌지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도 어렵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장의 정의를 세워야 할까? 저자의 주장은 센델의 주장과 유사하다. "진정한 사회적 통합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참된 이해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라고 말하며, "참된 상호이해란 아무런 강압이나 강제가 없는 상태에서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자유롭게 진솔하고 성실한 대화를 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상호이해를 뜻한다."라고 한다. 이러한 과정의 전제로 "합의가 진정 사회적 정당성과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우선 참된 이해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아무런 강제와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수평적 사회 구조와 소통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기본적 사회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시장과 사회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과정을 커녕 기본적인 기본조차 흔들리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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