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큐레이터 - 자연의 역사를 읽는 사람들
랜스 그란데 지음, 김새남 옮김, 이정모 감수 / 소소의책 / 2019년 4월
평점 :
과거와 미래를 잇는 교두보, 큐레이터는 누구인가.
큐레이터? 나의 얄팍한 상식으로는 보통 이 단어를 미술관에서 사용한다. 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관람객들에게 해설해주는 사람. 이 단어가 자연사박물관에서도 사용된다는 걸 <큐레이터> 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미국 3대 자연사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시카고 필드박물관의 큐레이터 랜스 그란데는 이 책을 통해 자연사 박물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일반 사람들은 알 수 없었던 큐레이터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들은 자연사박물관의 주역이지만 관람객들의 눈에 띄지 않기에 존재가 미미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무심코 지나쳤던 자연사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박물관에 가면 대단해 보이는 게 너무 많아 정보 과잉으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곤 한다. 하지만 그 전시를 위해 일평생 연구에 전념한 큐레이터의 시선에서는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모든 전시물이 얼마나 의미가 있었을지. 내게는 그냥 화석이지만 큐레이터에게는 그 화석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쏟았을지, 관람객들에게 전시를 보이기까지 얼마나 정밀한 작업을 했을 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가 어떻게 고생물학 큐레이터가 되었는지, 사소해 보이는 계기지만 그의 일생을 바꾼 학창시절의 에피소드는 다시 봐도 신기했다. 무엇보다 기존의 통념을 뒤바꾸기 위해서 (혹 기존의 통념이 잘못된 것일지라도) 벌어지는 알력다툼 속에서 희생될 수 있는 학생들의 기구한 운명이 안타까웠다. 끊임없이 기존의 통념을 뒤바꾸는 싸움을 통해 과학계는 발전했지만 그 과정은 아직까지는 성숙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인 랜스 그란데도 예외는 아니지만 연구 활동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큐레이터들의 열정은 감탄을 자아냈다. 맹수도 그들의 연구 열정은 꺾을 수 없다니. 못 말리는 사람들이다. 왜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연구 활동에 전념하는 것일까? 저자는 큐레이터의 사명으로 지구와, 지구에 사는 생물의 다양성과 역사를 탐구하는 막중한 임무를(p186) 수행해낸다고 말한다. 그들의 연구가 모이고 모여 거대한 자연사 박물관이 탄생할 수 있다. 저자가 근무하는 시카고 필드 박물관의 핵심 사명은 과학과 기록 연구 그리고 지식보급인데 큐레이터들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것을 고루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시카고 필드 박물관의 명물, 거대한 공룡 수가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서술한 파트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영화화될 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수의 운명은 기구하지만 책에서도 수가 필드박물관에 왔을 때 느꼈던 저자의 기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도 꼭 시카고의 필드박물관에 가서 수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연구를 위해 윤리를 저버린 선배들의 잘못을 속죄하는 일, 생태계의 위기, 순수과학의 몰락으로 인한 박물관의 재정적 위기 등 큐레이터들이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지, 단지 연구만이 그들의 전부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 느꼈다.
그는 <큐레이터>를 통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무려 400페이지에 육박하는 엄청난 책이지만 사진도 많고 행간도 넓고 내용도 흥미로워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다. 큐레이터들이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고충이 있는지. 큐레이터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어떤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