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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시간이 있어 (미뤄두고 미뤄두었던) 책장을 정리했다. 한동안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과 읽지는 않았지만 보지 않게 될 것 같은 책들을 빼내고, 그렇게 비워둔 자리에 그간 사놓고 아무렇게나 쌓아둔 책들을 꽂아두었다. 책을 정리할 때 되도록이면 같은 주제의 책들, 같은 분야의 책들을 모아놓으려고 하는 편인데, 이렇게 새롭게 정리하다보면 어떤 특정 분야의 늘어나고 줄어드는 물리적 공간의 비중이 최근 나의 관심사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이번에 정리할 때 보니 소설 분야의 비중이 꽤 늘어났는데, 최근에 소설을 더 많이 사게된 것도 이유겠지만, 한편으로는 신간평가단으로 받은 책들이 꽤 되는 것에도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또한 그것은 지난 6개월 동안 제대로 정리를 안했다는 얘기도 될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좋은 책들을 받아서 읽게 된다는 것이 늘 고맙다.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되고, 이 신간평가단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분명히 읽지 않았을 책들을 어떻게든 읽게 된다는 것이 고맙다.
정리하는 김에 알라딘 보관함에 있던 책들도 같이 정리했다. 이미 구매한 책들, 혹은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은 책들, 언제 넣어 놓았는지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 책들, 아마도 앞으로 읽지 않게 될 것이라고 믿는 책들의 목록을 하나하나 지워나간다. (생각난 김에 첨부하는데, 알라딘 보관함도 책을 분야별로 더 세밀하게 분류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물리적인 책장이 이미 읽었거나, 가까운 시일 내에 읽게 될 것들의 목록이라면, 알라딘 보관함의 책들은 언젠가 읽을 것이라는 기대의 목록이다. 그 기대가 막연한 기대를 넘어서 간절한 욕망으로 바뀐다면, 그 보관함의 책들은 실물로 변해 내 책장 어딘가에 꽂혀있게 되겠지. 그 기대의 목록에 있는 몇 권의 책들을 여기에 늘어놓는다. 이 막연한 기대는 실물로 바뀔 수 있을까. 왠지 어려울 것 같지만, 모르지, 알 수 없지. 욕망은 늘 힘이 무지막지하게 센 법이니.
이번 신간평가단에서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면 우리 작가의 소설들을 많이 읽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희망마저도 질식하고 있는 것 같은 사회, 이 사회를 읽어내는 동시대인의 날카로운 시선들을 통해 세상을 본다면, 희망을 구출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작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은 분명히 무력하지만, 우리는 늘 무력한 것들을 통해 위로를 받아왔으니까.
사십사, 백가흠, 문학과지성사
출판사 책소개를 보니 꽤나 우울한 내용일 것 같다. "불편한 진실에 가닿는 고통스러운 일, 외면하고 싶은 모습의 속절없는 경험 등 진실 발견을 위한 특유의 고행" 그런데 뭐 그것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사실 백가흠의 소설 속 세계는 거의 그랬다. 끔찍한 무엇이 담겨 있었고, 등장인물은 고통을 피하지 않았으며, 아니 거의 부러 고통 속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고통의 이면에는 늘 서늘한 진실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그의 소설에서 어떤 극악한 것을 보게 될지를 알면서도 읽게 만드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신촌의 개들, 이상운, 문학동네
지나간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단지 청춘의 회고담은 아닐 것 같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 책을 골랐다. 하나는 신형철의 "오십 년 만에 다시 쓰인 「환상수첩」(김승옥)을 읽었다는 생각도 든다."라는 문장. 다른 하나는 '신촌'이라는 공간이 불러오는 기억의 무한한 환기.
빨간구두당, 구병모, 창비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다고, 구병모 작가의 책을 지나칠 수는 없겠지. 출판사 책 소개대로, 구병모의 이야기가 권선징악의 교훈만을 담은 청소년 권장도서에 들어갈만한 동화는 아닐 것이다. 그 세계는 환상 속 무엇이지만, 늘 현실을 가장 날카롭게 담고 있었다. 아마도 어떻게든 내 책장에서 실물로 만나게 될 것 같다.
조선소,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 문학과지성사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내용에 끌려서 골랐다. 소개된 내용을 봐서는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고독과 소외로 존재의 무의미성을 느끼는 현대인의 실존적인 고뇌"까지는 읽지 못하더라도, "우루과이의 혼란스러운 정치.경제 상황, 부패한 관료제도, 불의한 인간 군상" 정도만 읽을 수 있어도 꽤나 성공일 것 같다.
신들의 마을, 이시무레 미치코, 녹색평론사
책의 내용보다도 출판사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녹색평론사에서 내는 소설이라니. 산업공해로 생긴 미나마타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데, 책의 내용과 출판사 이름이 주는 선입견과는 달리, 단지 사건의 경과와 피해를 다룬 사회고발문학의 성격만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근대는 무엇이며, 과연 좋은 삶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하니 신간평가단이 아니더라도 읽어봐야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