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서평단 활동이 3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마감일을 며칠 앞두고부터는 어떻게든 다 읽고, 뭔가를 끄적거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는 것과 서점에 가게 되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의 신간들을 조금 더 주의깊게 보게 되는 의무감이 생긴다는 점. 그러나 이것은 기분좋은 압박감이고, 나쁘지 않은 의무감이다. 오늘도 서점에 들른 김에 일종의 의무감으로 신간들을 살펴보았는데, 조금은 새로운 사실을 눈여겨 보게되었다.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꽤나 상당수의 책들이 비닐에 고이 싸인 채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글쎄. 서점에서 하는 것인지, 출판사 쪽의 조치인지 모르지만, 이것은 씁쓸한 기분을 들게 한다. 서점이나 출판사의 고충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인터넷 서점이 점점 발전하고 있고, 많은 책 수요자들을 그들이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프라인 서점 역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책의 물리적 속성들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책을 들었을 때의 그 적당한 무게감, 책을 펼쳐든 후에 느껴지는 새 책 냄새, 종이의 느낌, 종이의 질, 활자의 모양, 그리고 구입한 책을 들고 집으로 향할 때의 그 묵직한 기분좋음. 그러나 책에 싸여진 투명한 비닐은 그 모든 것을 원천적으로 방해한다. 더구나 나는 대부분의 경우, 목차를 주의깊게 보고, 저자 소개를 충분히 읽어본 후 책을 구입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제 어떠한 책들은 도리어 온라인에서 다시 책의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이제 표지나 명성만으로 책을 고르는 때가 도래한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의 와중에서 건져낸 2010년 12월에 출간된 내가 읽고 싶었던 인문/사회 신간들.
증오의 세기 - 20세기는 왜 피로 물들었는가 / 니얼 퍼거슨 / 민음사
인간은 생존이나 식량의 확보라는 이유가 아니고서도, 같은 종족을 죽이는 유일한 종이다. 즉, 그것만으로는 20세기에 일어났던 수많은 대량학살들을 설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유대인의 절멸 계획은 그 당시, 게르만인들이 유대인에 느꼈던 경제적 위협에 근거하여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사실 굳이 먼 곳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의 20세기야말로, 학살이 횡행하였으며, 그 중 많은 수의 죽음이 단지 그들이 우리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에서였고, 아주 단순한 증오 때문이었다. 클라이브 폰팅의 <진보와 야만>도 20세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는데, 이 책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줄 것 같다.
게임의 문화 코드 / 이동연 / 이매진
우리가 가끔 게임을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것은 거의 대부분 그것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게임에 열중하던 40대가 게임방에서 3일 밤낮을 어쩌구..혹은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청년이 실은 게임에 빠져 있던 사람이었다는 어쩌구..즉 우리가 접하는 것은 그 게임을 둘러싼 부정적인 '현상'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현상'은 그 현상에 주목하면 할수록, 그 '본질'과는 조금씩 더 멀어져가며, 그 '본질'을 모르면 우리는 '현상'을 '현상'만을 놓고 설명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의 하나는 패륜범죄가 단지 게임의 폭력성때문이었다는 이상한 결론이다(예를 들어 그것은 게임의 '다른 면' 때문일 수 있다). 저자 이동연은 현상이 아니라, 게임을 문화 텍스트로 정의하고, 그것의 본질을 살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을 것 같다. 뭐 아무튼 게임은 인류가 존재하면서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테니.
미디어 카르텔 / 이은용 / 마티
드디어 이 정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지난 연말, 모두들 한 해의 마감과 새로운 새해 준비로 정신없던 그 때를 노려, 정부는 몇몇 보수신문들에게 종편이라는 엄청난 떡고물을 아니, 먹고먹어도 다 못먹을 엄청난 케익을 던져주었다. 소셜 네트워크의 등장이나, 블로그 등의 새로운 미디어들의 출현으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미디어 혁명을 꿈꾸었으나, 혁명은 장미빛 전망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소셜 네트워크나 블로그는 거대한 미디어들과 기이하게 결합하고 있고, 저질 콘텐츠와 왜곡된 정보들은 예전의 몇 배 이상으로 많아졌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의 이면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 우리 앞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인간과 뇌에 관한 과학적인 보고서 / 에두아르도 푼셋 / 새터
인간의 기원에서부터 현대 인간까지 372페이지 안에 넣는 것이 가능한가. 이 불가능해 보이는 작업을 이 책은 용케도 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아무래도 책의 내용이 부실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서점에서 읽어본 앞의 몇 장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며, 뒷 내용들을 계속 궁금하게 만들었다. 뇌과학과 진화생물학, 심리학, 인류학을 넘나드는 책. 우리는 아직도 인간에 대해서도, 뇌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다.
리영희 평전 / 김삼웅 / 책으로보는세상
마지막에는 이 책을 넣을 수밖에 없다. 대학 시절, 많은 선배들이 리영희 선생의 글들을 읽어볼 것을 권했지만, 그 글들은 고루하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어리석어 보였다. 나는 읽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많은 인간들이 지금의 이 이상한 세상을 만들어내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이 세상이 이상하게 느껴지고, 몇 가지가 도무지 알 수 없어진 나는 뒤늦게야 리영희 선생의 글들을 쪼가리로 접했다. 그리고 뒤늦게야 어렴풋이 감지했다. 선생의 글들은 그 시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말들이었다는 것을. 그가 지금의 시대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듣고 싶지만, 이제 그는 더이상 여기에 없다.
(축구를 보면서 썼더니, 6권이 된 줄 몰랐다. 책 중의 한권을 뒤로 돌려 그저 번외로 넣어본다. 나도 평소에는 지나친 애국심 어쩌구 하지만, 일본이 지는 건 여전히 고소하다...)
소설 파는 남자 / 이구용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이 책이 추천도서로 선정될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하고, 솔직히 '에세이' 파트에 들어가야 하는지 '인문/사회' 파트에 들어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저 단순히 '읽고 싶다'는 기준에서 넣어본다. 한국 문학은 오랫동안 노벨문학상을 노려왔고, 그간 수상에 계속 실패해 왔다. 물론 노벨문학상을 타야만, 한국문학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라는 경쟁적 사고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왜 한국문학이 그간 수상에 실패해 왔는지도 궁금하며, 한국문학들이 외국에서는 어떠한 시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 변명이 될까. 한국 문학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한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로 일하는 저자의 경력이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