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며칠 동안 예비군 훈련을 갔다왔다. 언뜻 보면 예비군 훈련이란 건 책과 어지간히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예비군 훈련만큼 책이 어울리는 시간 및 장소도 없다. 앞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미안한 말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실외 학과를 제외한) 강의들이 거의 들을 만한 가치가 없는 데다가, 훈련의 특성상 여러 자투리 시간이 많이 생긴다. 그리고 폰도 강의 중에는 허용되지 않고, 음악을 대놓고 듣기에는 너무 눈치 보이고, 다른 전자기기의 반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제약에도 불구하고 책은 가능하며, 그래서 책은 (어떠한 내용이든) 여전히 그곳에서 그 나름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기간 중 손에 책 한 권 씩을 들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책은 알라딘 서평단으로 받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였다. 자투리 시간 중 읽기 좋도록 글들이 짤막하게 나뉘어져 있는 데다가, 상당수가 전쟁 기간에 쓰여졌으며, 전체주의에 끊임없이 항거하는 조지 오웰의 이 에세이들은 예비군 훈련과 놀랍도록 잘 어울렸다. 뭐 아무튼 고맙다는 인사는 이것으로 대신.

그리고 이달의 추천하는 (사실은 그저 내가 읽고 싶은) 책들. 다시 보관리스트에서 건져본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공장 - 기억, 시간, 그리고 나이 / 다우어 드라이스마 / 에코리브르

인지심리학 시간에 들은 몇 개의 이야기들은 나를 실망하게 했다. 우리가 가진 기억의 신비로운 부분, 그리고 우리가 동시에 반복하는 망각의 그 아련함이 그저 뇌 속의 정신 작용의 일부분이라니. 그것이 그저 우리의 뇌의 몇 개의 뉴런들과 호르몬들과의 복잡한 신경 작용이 불러 일으키는 물리적인 현상일 뿐이었다니. 우리의 놀라운 반응과 기억의 메커니즘이란 실상은 많은 혼란과 오인의 산물로서 구성된 것이라니. 그러나 다우어 드라이스마의 <나이들수록 시간은 왜 빨리 흐르는가>는 일상과 밀착된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그것이 단순한 어떤 물리적인 작용만이 아님을, 그것에는 아직 많은 신비로움이 남아 있음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그런 다우어 드라이스마의 신작.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 폴 슈메이커 / 후마니타스

세상의 여느 곳이나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우리나라만큼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 있을까. '100분 토론'을 즐겨보곤 하는데, 가끔 놀랄 때가 있다. 내가 지극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인사가 의외로 상당히 진보적인 발언을 하는가 하면, 상당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던 인사가 의외로 매우 보수적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어떤 방송의 영향인지, 일종의 미봉책인지, 아니면,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보수와 진보의 개념들이 잘못된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하기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이 나라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것의 의미는 그저 상대방과 나와 구별짓고, 상대방에게 낙인을 찍으려는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그리 놀랄 것이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 기본적인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될까. 



당신이 모르는 줄도 모르는 100가지 수학 이야기 / 존 배로 / 이미지박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인간의 삶에 있어서 수학은 밀착되어 있다. 고등학교 때 수학선생님들이 나중에 사회나가면 다 써먹을 때가 있다고 할 때 속으로는 비웃었지만, 나이가 점점 들면서 수학이란 게 이렇게나 많은 부분과 사실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종종 깨닫고 한다. (예를 들어 예비군 짐 쌀 때도 말이다!) 그리고 수학에 연관된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의외로 수학의 세계는 재미있는 부분이 너무 많고 뒤늦게 깨닫게 되는 점도 많은 것 같다. 아마도 이 책도 한 재미 할 듯. 



위스트르앙 부두 / 플로랑스 오브나스 / 현실문화

이 책에는 '우리 시대 '투명인간'에 대한 180일간의 르포르타주'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실업자에서 시급 8유로의 청소부가 되기까지의 몇 개월의 경험을 적은 르포. 얼마전에 <한겨레21>에서 몇 개월의 노숙 체험을 바탕으로 노숙인의 생활실태를 분석한 논문을 발췌해 놓은 것을 읽었다. 그것을 읽고 조금 충격이랄까, 놀라움이랄까, 혹은 찜찜함이랄까 하는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애써 내가 외면하려고 했던 마음 한 구석의 불길함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프랑스에서 투명해졌고, 또 동시에 많은 이들이 여전히 투명해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창백한 얼굴을 늘 거울에 비춰보며, 불안감을 애써 지우며. 



선제공격 / 앨런 M. 더쇼비츠 / 바이북스

약간은 위험해 보이는 책이다. '국가 간의 전쟁에서 선제공격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먼저 이같은 일들이 실제로 매번 반복되고 있음을, 따라서 그것에 대한 어떤 고찰과 국제법적인 논의가 필요함을 부인하기란 어렵다. 예를 들어 부시 행정부의 (어떤 불확실한 정보에 따른)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에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지금은 지나간 논의가 되었지만, 한국전쟁을 둘러싼 선제공격 논란도 있었다.) 원혜욱 교수의 반론도 같이 들어 있는 것으로 봐서 꽤 흥미로운,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볼 만한 논쟁거리들이 들어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 이상 어렵게 5권을 골랐다. 움베르트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도 넣고 싶었으나, 왠지 마음에 걸려서.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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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0-11-05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써놓고 다른 분들 리스트를 보니 겹치는 게 거의 없넹..;;

cyrus 2010-11-05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슈메이커, 존 배로, 플로랑스 오브나스의 책이 끌리네요.
특히 플로랑스 오브나스의 책 내용이 조지 오웰의 르포와도 흡사하고요.
그리고 지금 신간도서 후보 중 대세가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군요^^;;
이 좋은 책을 19분의 신간평가단원분이 읽으면 참 좋을텐데,,
가격이 세다보니 출판사가 선뜻 알라딘 신간도서로 제공해줄지 모르겠네요.

맥거핀 2010-11-05 22:52   좋아요 0 | URL
사실 제가 위에 올린 책 중에 폴 슈메이커의 책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거든요. 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읽고 싶은 마음에 선정해 봤어요. 사실 800쪽이 넘어가는 책이라 선정되어도 문제지만..^^; <궁극의 리스트>는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소장 욕구에 더 가깝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