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
김민재.이지완.황정규 지음 / 해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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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젠더만이 아니라 계급도 포함된다는 것, 여성억압은 초역사적 현상이 아니라 (사유재산과 잉여를 촉발시키는) 생산력 발전에 따른 결과이며 이로인해 성억압과 계급억압이 동시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단순한 성평등을 넘어서 여성해방, 생산수단의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역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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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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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은 작품의 흐름이 희화나 과장으로 치닫는 것을 차단하면서 비탄과 절망이 가득한 현실의 모습을 핍진하게 그려낸다. 회사에 젊음을 바친 어느 중년 남자의 성실성과 헌신성이 어떻게 배반당하는지, 그렇게 내몰린 자의 내면과 미래상이 얼마만큼 망가지는지를 다루는 이 필력은 깊고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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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1-03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까지나 내 판단이지만 최근 여성적/젠더적인 쟁점을 담아낸 작품들은 평단에서 종요롭게 인식하면서 노동적/계급적인 문제를 파고드는 소설들은 ㅡ장강명 정도만을 제외하면ㅡ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읽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혁진의 ˝사랑의 이해˝와 이번에 읽은 김혜진의 작품은 (서로 환경과 풍경의 다름은 있을지라도) 이 땅에서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내면성과 시대상이 충실하게 형상화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들의 작품이 좀 더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집안의 노동자 - 뉴딜이 기획한 가족과 여성 아우또노미아총서 56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김현지.이영주 옮김 / 갈무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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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정책의 그늘에 있었던 사람들, 백인남성이 아니라 절대다수의 여성이 대공황 시기에 겪었던 차별과 격절의 실상에 주목한다. 여성 노동이 노동력 재생산의 근본(출산/육아/가사)으로 규정되면서, ‘여자는 집안일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명제가 사회적으로 고착화되는 과정을 심도있게 고찰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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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12-28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따르면, 많은 여성들은 대공황 시기에 가장과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수동적으로만 대응하지 않았다. 어떤 여성들은 사생아 출산까지 각오하면서 매춘(126쪽)을 했고, 어떤 여성들은 여성보조단체를 결성해서 파업에 참가한 남편을 물질적으로 지원(181쪽)했으며, 어떤 여성들은 반半 군대식 규범에 의거한 비상단체까지 조직해서 남자들과 함께 전투적인 파업 행위(183쪽)에 참여했다. 이러한 비상단체의 지휘를 이끌었던 여성인 제노라는 파업을 진압하려는 경찰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남자들 둘레에 열을 지을 것이다. 경찰이 발포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우리에게 총을 쏴야 할 것이다(183쪽).‘

그럼에도 이러한 여성들의 투쟁은 그 의의와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물론 기혼 여성의 고용 비율 증가, 반강제적인 초과 근무의 폐지, 저임금 노동 여성들(미싱사, 청소부, 미용사 등)의 임금계약 명문화 등의 성과가 있기는 했다. 문제는 국가가 여성을 양성평등의 실현자로, 계급 철폐의 요구자로까지 나아가는 것을 철저하게 막으려고 했다는 데 있다. 루즈벨트 정부가 주도했던 뉴딜 정책은 (백인 남성) 노동자의 입지와 복지를 향상하는 것을 우선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가장과 가족의 안정을 위해서는 여성들이 주부의 역할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 결과 여성이 가정에서 떠맡아야 하는 가사 업무는 대공황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이들은 피임하는 법, 부모가 되려는 과정, 세탁기나 스토브와 같은 최신 기기들의 사용법 등을 사실상 필수적으로 익혀야 했다. 이러한 교육들의 목적은 다른 ‘가족 구성원의 심리적 재생산, 훈육, 사회화(205쪽)‘에 맞추어져 있었으며 여성들의 발본적인 요구(성차별 폐지, 가부장제 지양 등)와는 애초부터 동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소설 보다 : 여름 2019 소설 보다
우다영.이민진.정영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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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편마다 내용적인 흥미로움은 없는데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려는 노력은 충일하다. 이러한 집필 방식이 시대의 흐름이 된 듯한데 몽환적/애도적/불안적인 분위기를 ‘이쁘게‘ 가공하려는 역량들은 보이고 가열함이나, 예리함은 잘 안 보인다. 스타일(만으)로 문학성을 획득하기란 참 지난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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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12-2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관심이 갔던 작품은 우다영의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이라는 소설이었다. 미문으로 수려한 풍경화를 직조하면서 그 안에서 현실과 꿈이 어떻게 착종하고 착란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소설이었으나 그럼에도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보다 돌올했던 이유는 요즈음 흔히 보이는 지적이거나, 애상적이거나, 애정 갈구적인 성향의 글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작중에 나오는 ‘삶이 죽음의 연습이며, 꿈이 삶의 연습‘이라는 저자의 저의가 엿보이는 말은 그다지 새뜻하게 읽히지 않는다. 장자의 호접몽은 둘째치더라도 삶과 그것이 대비되는 지점ㅡ 그것을 죽음이라 부르건 꿈이라고 부르건ㅡ의 간극을 허무는 류의 작품들은 ‘간단히‘ 초월주의나 허무주의로 점프하기 쉽다. 이러한 초월/허무주의는 인간사를 심도 있게 고찰하면서 내놓은 심층적인 결론(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가 여기에 속한다고 본다)이 아니라 대조되고 대비되는 것들의 차이를 ‘손쉽게‘ 뭉개버리면서 만들어내는 작위적, 기만적인 정서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이 작가의 수려한 문장력과 설계가로서의 면모는 호평하고 싶지만 그 이가 추구하는 주제와 정서가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뛰어나게 보이지는 않는다.
 
세잔의 산을 찾아서 - 불멸의 산 생트빅투아르 기행
페터 한트케 지음, 이중수 옮김 / 아트북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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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썰을 푸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가 있다면 문장을 가다듬는 솜씨가 탁월한 작가가 있다. 페터 한트케는 후자에 속하는 소설가인데 이런 작가들은 문체의 단련과 세공을 중시하기에 압축미가 있는 중단편 소설이나 (서사성이 없어도 괜찮은) 에세이를 집필할 때 글맛이 쫀득해지면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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