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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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좋아하는 작품은 많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 독서 경험을 통해 같은 작가라도 작품에 따라 그 느낌과 감동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좋았던 작품의 작가의 경우 다른 작품을 더 찾아보긴 하지만 작가를 맹신하지는 않는다. 다른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도 이 작가, 왜 이래?’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건 별로네라며 가볍게 넘긴다.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이 작가 이 작품은 좋아라고 콕 집어 말한다.

하지만 이 좁은 길목을 통과하고 당당하게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도 있다. 손에 꼽을 수 있는 몇 명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마스다 미리 작가다.

<어느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를 시작으로 그녀의 만화와 에세이들을 찾아보며 그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아이와 어른 그 경계에 서있는 듯 한 느낌이랄까. 어린 왕자가 여자라면 이런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분함과 순진함, 깊은 성찰과 현재의 행복이 공존해 있는 글과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보고 싶은 사람, 되고 싶은 어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렇듯 작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책을 발견하면 즉시 펼쳐드는 습관으로 굳어졌는데, 그 덕에 이번 책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도 읽을 수 있었다. 올해 읽은 책 중 단연 최고로 뽑을 정도로, 다행히, 아니 어쩌면 당연히 내가 가진 애정에 묵직한 무게를 더해준 책이었다.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는 작가의 삶과 생각이 담겨 있는 글들을 모아 만든 에세이집이다. 간혹 특별한 일도 있지만 대부분 소소한 일상으로, 맞장구를 치며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치통이 너무 심해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는 이야기, 기모노 입기 교실에 가져가 나눠먹을 선물을 사 왔으면서 뭘 가져와야 한다는 규칙을 만드는 건 아닐까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결국 혼자 다 먹어버린 이야기, 여자들끼리 공연을 보고 돈가스를 먹고 웃으며 돌아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인생, 이런 느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 이야기,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취직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일 밤 이불 속에서 무서워, 무서워하며 울었던 이야기.

이런 이야기 하나하나가 그래, 그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준다. 누군가 앞에 있는 듯 격하게 공감하다가도 지난 추억들을 되새기게 만들고, 마음 가는 문장을 옮겨 적으며 가슴속에 새기게 만드는 힘이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게다가 어른인 그녀는 동경하고 싶은 면모도 잔뜩 보여준다.

자전거에서 넘어져 울고 있는 남자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며 다정하게 대해주는 모습과 아이를 달래면서 다정한 말이란 남에게 들을 때만이 아니라 자기가 할 때도 따스한 마음이 드는구나라고 생각하는 모습, 연말에 네 식구가 함께 모여 대낮부터 자정까지 종일 게임을 한 것을 가장 기쁜 세뱃돈이었다고 생각하는 모습, 이별 앞에 엉엉 우는 아이를 보며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아이의 삶에서 그 작은 이별이 얼마나 크게 느껴질지 생각하는 모습.

그 외에도 수많은 모습들에서 성숙하고 깊은 내면이 드러난다. 멋지다는 생각과 함께 닮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만든다.

거기에 재밌게 읽으면서도 가슴에 콕 박혀들게 만드는 글 솜씨와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어 속도를 늦추고 잠시 호흡하게 만드는 귀여운 일러스트는 또 어떤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정도다.

이 책 덕분에 좋아하는 작품 목록까지 새롭게 갱신하며 오랜만에 독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꼭 쓰고 싶다는 욕심에 짬을 내서 리뷰를 작성하며 글쓰기에 대한 바람도 이룰 수 있었고, 서서히 옅어지고 있던 믿음을 지워지지 않을 굵은 글씨로 선명하게 새겨 넣으며 만족감도 느낄 수 있었다.

엇보다 책을 읽는 동안은 물론 책을 다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리뷰를 쓰는 지금까지도 가슴 현 편에 행복감이 느껴질 정도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소소한 행복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추천해주고 싶다. 바쁜 평일에도, 느긋한 주말에도 가볍게 읽기 좋으니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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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 몸도 마음도 내 맘 같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본격 운동 장려 에세이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지수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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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라는 단어를 보면 성실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탄탄한 몸매에, 식습관에 엄격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남/여의 모습이랄까. 어딘가 본격적인 느낌이다.

 

그에 반해 내가 건강을 위해 하는 노력이라고는 걷기뿐이다. 점심시간에 20분정도 짬을 내서 회사 근처를 산책하고, 퇴근길에는 일부러 버스 환승을 하지 않은 채 내려 매일 20분 정도를 걷고, 평소 1시간 이내의 거리는 걸어 다니(려고 애쓰)는 정도. 이따금 자전거를 타기도 하지만, 그것도 운동이라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늘 운동부족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에게 붙였다. 실제로 저질체력이기도 하고.

 

그런 내게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는 뭐랄까, 존경스러우면서도 약간 맥이 빠지는 책이었다. 인내와 습관, 오기라는 점에서 마라톤을 완주하고 여러 가지 종목에 도전하는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한 편,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을 외치며 몸에 빡 들어가 있던 힘이 슬슬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단하면서도 어딘가 물렁한, 착실하면서도 나사 하나빠진 것 같은(?)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첫 시작부터 작가는 엄청난 모습을 보여준다. 도쿄 마라톤에 참여해 먹지도 쉬지도, 심지어 화장실도 가지 않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묵묵히 코스를 완주한다. 그렇게 해서 달린 시간이 무려 4시간 43. 그냥 걷기도 힘든 시간을 계속해서 달렸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이어진 몇 번의 마라톤과 산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도 감탄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렇게 달리는 동안 작가의 머릿속에는 마지못해 달린다맥주’ ‘골인 지점의 포장마차 촌으로 채워져 있다. 얼른 도착해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멈추지 않고 달려 나간다. 멋지다고 생각했던 도전은 얕보기 병에 의한 것이다. 그의 마음을 알게 될수록 나도 모르게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볼수록 점점 허탈해진다.

 

솔직함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진솔하게 털어놓는 작가의 이야기는 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용기가 되기도 하며 충동이 되기도 한다. 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풀리면서 나도?’하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그리 대단할 것 없다고, 네가 지금 하는 것도 충분하다고, 다만 좀 더 욕심내 보는 것이 어떻냐고 말해온다. 다독이는 한편 은근히 부추기는 솜씨가 일품이라 본격 운동 장려(?) 에세이라는 부제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는 결국 그 은근한 부추김을 이기지 못하고 주말을 맞아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왔다. 책과 함께 온 작은 보틀에 시원한 물을 담아서 달리는 중간에 멈춰 수분 보충도 했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쓰는 내 허벅지 근육은 욱씬욱씬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온 몸, 특히 눈 위로 쏟아지는 적당한 피로가 기껍다. 리뷰를 올리고, 씻고, 자리에 누우면 곧바로 잠들겠지.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떠서 새로운 하루를 맞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매일 운동을 하고 싶을 정도다.

 

이 책 덕분에 빳빳하게 힘주는 대신 조금 설렁설렁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보상도 확실히 챙기는 운동을 알게 됐고, 내 버킷리스트에는 외국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참여하기가 새겨졌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작가처럼 운동의 시간과 풍경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글을 써야지. 이것 참, 내겐 아주 확실한 보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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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그림 엽서북 : 핑크 에디션 - 마음 가는 대로 상상해 그려보는 손그림 엽서북
공혜진 지음 / 인디고(글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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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컬러링북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채색 없이 밑그림만 그려져 있는 책에 색칠을 하는 단순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었었다. 마땅한 취미가 없던 사람들에게, 바쁜 하루를 보내며 여유 다운 여유를 즐길 수 없던 사람들에게 컬러링북은 좋은 취미생활이자 힐링이 되었었다.


나 역시 귀엽고 예쁜 그림에 혹 하긴 했지만 그 이상의 매력은 느끼지 못했었다. 이미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점이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했고, 그림을 망쳐서는 안된다는 부담감이 단순한 활동을 무겁게 만들었었다. 가령 딸기는 빨간색으로 탐스럽게 칠해야지 예쁘다는 것, 풀잎은 녹색으로 싱그럽게 칠해야지 보기 좋다는 것처럼 고정관념과 부담감이 나를 유행해서 한 발짝 멀어지게 만들었었다.


이미 정해져 있는 사진이 있다는 점에서 <손그림 엽서북>도 부담스러운 것은 같았다.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예뻐서 그대로 사용하고 싶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괜히 손을 댔다가 망치는 게 아닐까 걱정돼서 한참을 보고 또 봤고, 연필로 살짝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한 끝에야 겨우 색이 진한 볼펜을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수로 볼펜으로 잘못 그렸을 때는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펴보며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까 고민하고, 상상 속의 모습을 밑그림을 통해 윤곽을 잡아나가고, 펜으로 죽죽 그어 나만의 엽서를 만들어내는 그 모든 과정이 즐겁게 느껴졌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그릴 수 있다는 점이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내가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네?!'싶은 것들이 만들어졌다.

 

물론 여전히 지우개 가루 폴폴 날리며 수정을 거듭하고, 잘못 그은 선에 속상해하기도 하지만 그 시간마저도 즐거운 놀이처럼 여겨졌다. 아무런 고정관념 없이 책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실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엽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재미있었다. 직접 만든 엽서에 글을 적어 소중한 이들에게 보낼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이 책 덕분에 오랜만에 창의력을 발휘하고 그림을 그리고 진심이 담긴 글을 쓸 수 있었다. 만드는 시간은 즐거웠고, 만들어진 결과물은 뿌듯했다. 처음엔 부담스러웠던 양이 지금은 두고두고 아껴서 맛볼 재미라고 생각하니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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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3
진 웹스터 지음, 김지혁 그림, 김양미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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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하건데 인디고의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세 번째 시리즈 <키다리 아저씨>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조합이다. 만지면 따뜻한 온기가 묻어날 것 같은 김지혁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과 보는 사람까지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우리의 주디, 제루샤 애벗의 애정 가득한 편지글은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가 없다.

 

읽은 사람보다 읽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책이지만 어디든 예외가 있는 법. <키다리 아저씨>는 고아원 출신의 꼬마숙녀 제루샤 애벗이 마음씨 좋은 평의원의 후원을 받아 대학에 가게 되고, 그 대가로 한 달에 한통 이상의 편지를 쓰기로 하면서 시작된다.

 

고아원 원장이 만든 제루샤 애벗이라는 이름 대신 스스로 지은 주디라는 애칭으로 불러달라는 당돌한 꼬마숙녀의 편지는 시도 때도 없이 키다리 아저씨를 찾는다. 처음으로 고아원을 떠나 새로운 세상과 마주한 주디는 그 모든 것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듯 편지 속에 빼곡하게 담아낸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서 말이다.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주디의 일상.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하루이겠지만 주디에게는 매순간이 생생하고 풍부하다. 새 옷 여섯 벌의 주인이 되는 아찔한 경험, 학교에서 유일하게 <작은 아씨들>을 읽지 않은 아이라는 사실과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책을 사서 읽은 일, 기숙사 학생들이 모여서 즐겼던 당밀 사탕파티, 불규칙 동사 57개를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몰두한 시험공부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며 행복해하는 주디의 모습은 꽉 껴안아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무엇보다 가장 사랑스러운 점은 주디가 언제 어디서든 행복을 찾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고, 가볼 곳도 많으니 자신에게 찾아오는 기회를 붙잡기만 하면 되는 거죠.”라고 말하는 이 꼬마숙녀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까. “행복해지는 진짜 비결을 알아냈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순간순간을 즐기고, 즐기는 동안은 제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할 거예요.”라며 전 매순간 제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온전히 느낀답니다. 아무리 속상한 일이 생겨도 그 사실을 잊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이 멋진 철학자 덕분에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수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통통 튀는 발랄함과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솔직함, 천진하고 고집스러운 면이 있으면서도 사려 깊고 통찰력 있는 모습, 어디서든 행복을 찾아내는 상상력과 감수성, 때로는 아이 같고 때로는 현자 같은 주디의 매력은 끝이 없다. 더 없이 행복할 때는 그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해주고, 한없이 슬플 때는 그 슬픔을 가시게 만들어주는 주디와 주디의 편지는 한 번 맛보면 끊을 수 없는 달콤한 초콜릿과 같다.

 

언제나 곁에 두고 있다가 아침햇살이 풍부할 때, 유난히 지치는 하루의 끝에, 평범한 하루 혹은 특별한 하루 속에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고 싶은 책 <키다리 아저씨>. 다이어리처럼 예쁘고 단단한 커버와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일러스트 속지 덕분에 더욱 소중한 인디고 <키다리 아저씨>덕분에 평생 꺼내먹을 수 있는 행복이라는 초콜릿을 가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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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프레젠테이션 슈퍼히어로 - 스크립트 구성부터 청중을 사로잡는 제스처까지 초보도 네이티브처럼 프레젠테이션하는 기술
론 카훈.클라라 강 지음 / 라온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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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다니는 내내 발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역할을 분담할 때면 입을 꾹 다물고 앉아 적극적인 누군가가 발표를 맡길 기다리거나, 반대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대방한테 떠넘기며 어떻게든 피하려고 들었다. 운명이 발표로 이끌 때면 첫 인사부터 시작해 마무리 멘트까지 모두 적은 발표문을 만들어 머릿속에 입력시켰다. 하지만 발표 당일엔 어김없이 내 머리 속 지우개의 존재를 확인하고 암담한 심정이 되었다. 눈치를 보며 발표문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읽으려 노력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라는 내 발표역사를 말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각설하고 발표에 대해 얘기하자면,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발표하는 것을 꺼려한다. 학생만이 아니라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나서기를 기다리거나 적극적으로 떠넘기려는 사람, 수없이 보고 또 들었다. 그 이유야 제각각 다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발표 시작 전부터 끝나고 나서까지 심적으로 괴로워한다. 피하려고 애를 쓰고, 수없이 연습하고, 청심환을 먹은 뒤 발표를 해도 해결되지 않는 괴로움에 발표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깊어져만 간다.

 

<잉글리시 프레젠테이션 슈퍼히어로>는 이렇게 발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매우 유용한 처방전이다. 마인드컨트롤에서 스킬까지, 발표를 위해 스스로를 다잡는 것을 시작으로 발표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기술에 이르기까지 발표의 A to Z를 세세하게 알려준다. 저자가 발표의 대가 프레젠테이션 코치인 만큼, 그 설명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것은 물론 각 단계마다 자신을 점검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와 한 눈에 볼 수 있는 표를 적절하게 사용해 필요한 것을 정리하고 적용하기에 아주 수월하다. 책 자체가 본문에 적혀져 있는 대로 청중(독자)의 흥미를 끌고 참여하게 하면서 청중이 더 나은 사람을 살도록 돕고” “청중이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고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좋은 것은 이 책이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이라는 것이다. 공감하고 새겨야할 말들을 메모하다가 다음 이야기를 놓치는 경우가 생기지 않는다. 얼마든지 자기 속도에 맞춰 멈춰서 밑줄 긋고 메모할 수 있다. 나 역시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 감탄하며 밑줄, 지난 발표를 후회하며 밑줄, 그리고 따로 정리할 곳을 찾아 표시하느라 책을 읽는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결코 지루하지 않고 시원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그만큼 이 책의 콘텐츠와 스킬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책, “영어로 발표할 일? 난 전혀 없어.” “지금까지 살아봤지만 영어로 발표할 일은 전혀 없었어.”라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을 만큼 유용하다. ‘잉글리시라고 하지만 영어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적인 소통과 글쓰기에도 도움이 될 정도로 좋은 조언들이 많아 책 제목을 커뮤니케이션 슈퍼히어로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다. 본인의 의지와 행동만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상대가 계속 대화하고 싶게 만드는 멋진 커뮤니케이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프레젠테이션 슈퍼히어로는 발표자 자신의 성장과 청중의 발전을 함께 야기한다. ‘함께 성장하는 일, 함께 성장하게 만드는 사람을 꿈꾸는 내겐 꼭 되고 싶은 이상향이다. 그만큼 내게 이 책이 매력적이었음은 더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굳이 이런 거창한 목표를 갖지 않더라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거나 청심환보다 좋은 해결책이 필요하다면 이 책만큼 좋은 것도 없다. 책의 콘텐츠와 스킬에 홀려 메모하며 읽다보면, 그리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다보면 어느새 변해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혹한 당신, 얼른 이 책을 펼쳐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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