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 저택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교향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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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Hollow, 1946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아,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포와로가 나오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안타까웠다. 다른 소설들은 범인이 잡히면 ‘그렇지!’하고 탄성을 질렀는데, 이번 이야기는 어쩐지 피해자가 나쁜 놈이었고 가해자가 불쌍했다. ‘내가 이번 이야기 속의 살인범 입장이었다면?’하고 상상하니, 권총으로 단번에 죽인 건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놈은 좀 더 괴롭혀야하는데 말이다.

 

  존 크리스토는 꽤나 유능한 의사로, 손님들에게 평판 좋고 이름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에게는 한없이 충실한, 그를 거의 우상시하는 부인 저다가 있다. 하지만 그가 잘못한 것도 원인을 제공한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저다에게 존은 싫증을 느낀 지 오래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15년 전 헤어진 첫사랑인 베로니카와 지금 몰래 만나고 있는 먼 친척 헨리에타가 들어있다. 앙카텔 저택에 헨리에타를 비롯한 친척들이 모인 주말, 존은 베로니카를 우연히 만나고 격정적인 정사를 벌인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시체로 발견된다. 모든 혐의는 현장에서 총을 들고 있는 부인 저다에게 쏠리지만, 그녀가 들고 있는 총과 살인에 사용된 것과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책을 읽으면서 존이 잘 죽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부인인 저다를 무시하는 것도 그렇고, 헨리에타와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저다에게는 별것도 아닌 일로 트집을 잡으면서 화만 내고, 헨리에타에게는 더없이 자상하고 이해하려는 모습에서 무척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저다는 병원 점심시간에 딱 맞춰서 상을 차려놓았는데, 자기가 딴 여자들 생각하다가 늦게 왔으면서 고기가 식었다고 신경질을 부리는 모습은 참……. 자기 친척들 앞에서는 주눅이 드는 저다를 무시하고, 언제나 당당한 헨리에타에겐 눈길을 보내는 것도 재수 없었다. 부인이 시댁을 어려워하면 옆에서 도와줘야지, 도리어 자기가 더 짜증을 내면 어쩌자는 걸까?

 

  이번 이야기의 관계도는 참 재미있다. 존은 베로니카와 헨리에타를 좋아한다. 하지만 저다와 이혼할 생각은 없다. 헨리에타는 존을 사랑한다. 그래서 계속 청혼을 해오는 에드워드를 밀어낸다. 에드워드는 십여 년 동안 오직 헨리에타뿐이었다. 그런 그를 미지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존과 헨리에타, 에드워드 그리고 미지는 촌수는 좀 멀지만,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온 친척이다. 친척과 불륜관계에 빠지고, 계속해서 청혼을 하고 마음에 둔다는 설정이 좀 놀라웠다. 친척이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다 알면서……. 그게 가능한가? 영국의 문화는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존에 대한 헨리에타의 마음이 별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무슨 비련의 여주인공 코스프레인가! 마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한 만화나 연애 소설을 읽고 감동받은 망상에 찌든 여자 같았다. 거기다 에드워드의 급작스런 심경 변화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헨리에타를 그리도 쉽게 포기하고 금방 다른 여자에게 청혼하는 게 가능한가? 그러면 지난 십여 년 동안 뭐한 거지? 뻘짓? 집착? 아니면 원래 자기도 자각하지 못했던 감정을 그제야 느낀 건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 이거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추리 소설이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추리 소설이니까 로맨스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한 거겠지. 게다가 예전에는 지금처럼 몇 백 페이지짜리 소설은 별로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지금 나온다면 아마 여러 커플들의 과거사와 관계, 그리고 심리 변화에 대해 장황하게 서술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포와로가 훨씬 더 피곤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심리를 중요시하는 탐정이니까.

 

  하여간 피해자에게 동정이 가지 않는 책이었다.

 

  그리고 미지, 난 네가 그런 대사를 읊을지 몰랐어. 배신이야 배신. 64페이지에서 미지는 이런 말을 한다. ‘너무 살이 쪄서 뒤룩거리고, 몸에 맞는 옷을 고르느라 이것저것 입어 보는 뚱뚱한 아줌마들을 안 보니 살 것 같아요.’ 크리스티 여사, 너무해요. 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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