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이주은 지음 / 이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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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저자 - 이주은




  벨 에포크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책을 대충 휘리릭 넘겨보니 외국 명화가 많이 들어있어서, ‘미술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벨 에포크란, ‘belle epoque, 좋은 시대’라는 뜻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대략 1차 세계 대전까지 파리의 평화로운 시대 그리고 그 문화를 회고하여 사용되는 단어라고 한다. 꼭 프랑스 파리만 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문화를 가지면 다 해당하는 것 같다.


  그럼 이 책은 그 시대의 그림을 통해 문화를 설명하는 책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 시대의 그림 얘기를 하긴 한다. 동시에 그 당시 유행하던 화풍이나 유명인 얘기라든지 커다란 사건 그리고 문학작품도 다룬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저자는 거기에 현대를 덧붙인다.


  저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감각과 현실, 이상을 백 년 전인 20세기 문화와 연결시킨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거의 열 번 넘게 바뀌었을 기간인데도, 두 시대의 연결은 자연스럽기만 하다.




  도리어 어떤 부분에서는 그 때가 더 화려하고 낭만적이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금처럼 치열하게 오로지 한가지만을 위해 무작정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아간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어떻게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세기말이 다가오면서 느꼈던 기대와 불안과 초조, 하지만 세기 초가 되어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삶, 이런 상반된 현실이 준 뭔지 모를 상실감과 허무함과 동시에 그것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욕망까지. 두 시대는 다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많이 닮아 있었다.


  저자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문장과 그 시대의 화려하면서 감각적인 그림을 나란히 보고 있자니, 어쩐지 가을이 떠올랐다. 신기한 일이다. 그림의 색감만 보면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나는 화사한 봄인데, 쓸쓸한 분위기의 글과 함께 읽으니 서서히 사라져가는 가을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 시대를 추억하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100% 똑같지는 않지만,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 사람의 본성은 세대가 지나도 별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럼 인류는 그동안 내적이건 외적이건 진화가 아닌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는 걸까? 약간의 변화만 덧붙이고?


  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추측과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처음에는 옛 시대를 회상하는, 단순한 그림이 곁들어진 사적인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간단한 책이 아니었다. 그래서 꽤 마음에 들었다. 요즘 나이 들면서 감수성이 메말랐다고 한탄하는 친구에게도 권해줘야겠다.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는 순수함이란, 하나를 포기할 때 비로소 느껴지는 미덕이다. 아무 욕망에도 눈뜨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눈을 떴음에도 그것에 마음을 주지 않았기에 순수한 것이다. -p.51 소설 ‘순수의 시대’에 대한 얘기 중에서


  결국 진실과 기억 사이의 간극은 허구로 꾸며지게 된다. 허구는 공백이 아니라 경이로움이다. 세상에 돌아다니는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창조적인 것들은 대부분이 진실이 아닌 허구의 영역 안에 있다. -p.62


  살다보면 기쁜 때도 있고 슬픔에 빠지는 때도 있지만, 그 순간들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물살처럼 결코 잡히지 않는다. 모든 것이 흘러간다. 그러다가 언젠가 어떻게든 모이고 합쳐져 하나의 삶을 이룬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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