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진보
심보선.장석준.박상훈 외 지음 / 이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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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심보선,장석준,박상훈,홍기빈,이택광,하종강,서동진,엄기호,박경신,홍세화 공저


  총 열 명의 사회 진보인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각각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알아보는 이름은 홍세화씨 한 사람뿐.


  어릴 적에 ‘진보’ 내지는 ‘좌파’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해리 포터’에서 이름을 부를 수 없던 그 사람처럼 말이다. 중학교 때 역시 분위기는 비슷했다. 고등학교 때가 되어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학교 주위로 매캐한 냄새가 종종 바람을 타고 실려 왔고, 거리가 시끌벅적했다. ‘진보’라는 말은 조금 허용이 되었지만, 여전히 ‘좌파’라는 말은 금기어였다.


  대학교에서 나에게 ‘좌파’라는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뿌연 담배 연기로 가득한 학회실에서, 수업도 듣지 않고 민중가요나 부르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선배들의 모습밖에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난 아마 그 당시 꽤나 잘난 척하는 아이였다고 기억한다. 그런 학회 선배들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난 너희와는 달라’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내 머리에는 ‘대학생 좌파 = 멋도 모르고 선동당하는 모임’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렇게 허송세월하려고 대학을 온 게 아니라면서 그들을 한심해했다. 변화를 원한다면, 세력을 키워서 집권층이 되면 되지 않느냐고 의문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물어본 이런 내 질문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이라는 비웃음만 돌아왔을 뿐이다.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느라 바빠서 한동안 그런 쪽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뉴스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적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진보’란 결국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하다고 씁쓸하게 웃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 ‘좌파’나 ‘진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왔다 갔다 할 때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카드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 때와 다르지 않다. ‘진보 = 빨갱이’라는 말이 대뜸 나오는 시대이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런 인식이 퍼져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모 사이트 댓글을 보면, 진짜 가관이다.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댓글을 달면 단번에 ‘너 빨갱이지?’라는 답글이 달린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과연 저 공식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무지로 빚어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동안 이런 장르의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최근에 뉴스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인지 도대체 이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 떠올랐다.


  쉽게 풀어서 모두가 다 이해할 수 있도록 쓸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써도 되지만 그러면 ‘진보’라는 고고한 이미지에 손상이 간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예상한 이 책의 독자층 수준이 높은 것인지 의문이다.


  대학 때,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고 대답하던 동기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그건 네가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대꾸하고, 자기들끼리 민족이니 평등이니 하니 씨알도 안 먹히는 것이다.


  이 책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읽어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인 나 같은 사람은 접근을 불허하는 그런 느낌. 그러니 ‘진보’가 사람들에게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아니, 이건 어쩌면 처음부터 맞지 않는 레벨의 책을 고른 내 책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진보’라는 것이 현 상황에 머무르거나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보거나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소외받고 자신의 주장을 잘 펼치지 못하는 계층의 권익 대변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진보’는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Fail이다. 그런 사람들은 종이책에서만 볼 수 있나보다, 도도새처럼 말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사람들과 많이 만나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난 집과 직장만 다니는 소심한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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