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부제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창조하는 힘’

  작가 - 구본형



  읽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에 읽었던 진 시노다 볼린의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이 떠올랐다. 아, 지금은 개정판이 나오면서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여신들’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두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의 특징을 잡아서, 현대에 어떻게 적용해야할 지 말하는 점이 비슷했다. 다른 점은 진 시노다 볼린의 책은 여신들만 나왔지만, 이 책은 신화에 나오는 남신, 여신 그리고 인간까지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헐, 우리에게 다중 인격을 요구하는 건가?’라는 웃기지도 않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하고 싶을 정도로 엉뚱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다시 읽어볼까 찾아보니 없다. 아, 애인님에게 선물로 드렸지. 조만간 빌려달라고 부탁을 해봐야겠다.


  삼천포는 여기까지 가고, 본 책으로 돌아와야겠다.


  이 책에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물론 몇몇 경우는 ‘이건 좀 무리수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아마도 내가 그동안 나이를 먹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해봐서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은 신화의 현대적 적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현대인들이 무수히 많이 느끼는 감정들을 신화의 인물들에 대입해서,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정도의 제시를 하고 있다.


  즉, 자기 계발서 라고 볼 수 있다.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움.' 이라는 의미라면 계발이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자기 계발이라는 게, 남이 하라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거나 읽고, 공감을 하고 느끼는 바가 있어야 1 밀리그램이라도 변화가 있는 법이다.


  사람이란, 남이 뭐라고 하면 반발심을 먼저 느끼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나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글은 그런 거부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초반까지는.


  초반까지는 조곤조곤한 어조로 신화와 현대를 논리적으로 잘 연결시켜,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맞아, 그런 법이야’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리고 연상 작용의 기발함에 무릎을 친다. 아,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될 수 있구나! 특히 ‘크로노스와 시간’, ‘시시포스와 반복적인 일’, ‘니오베와 허영’ 등은 진짜 ‘오, 그렇구나! 이렇게 해야겠다.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후반이지만 ‘다이달로스와 사유 불능’도 고개를 끄덕였고 말이다.


  하지만 몇 가지, 예를 들면 ‘오디세우스 두 번째 이야기인 교활함’에 관한 것이라든지 ‘안티고네와 불복종’ 그리고 ‘미노스와 추기경과 조소’는 다소 억지스러운 연결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그건 남과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적절한 고전 그림의 삽입과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행동 그리고 그들이 남긴 말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견해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런데 133쪽 두 번째 문단 다섯 번째 줄의 ‘당시에는 비록 남자라고 하더라도 남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이 대단한 수치였기 때문에 왕비는 왕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했다.’ 이 부분을 읽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왕비는 여자였고, 그녀가 남자에게 알몸을 보인 것인데 왜 ‘비록 남자라고 하더라도’라고 적혔을까?


  차라리 ‘당시에는 남자끼리라도 남에게’로 썼으면 이해가 더 쉽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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