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지문 -상 신의 지문 1
그레이엄 핸콕 / 까치 / 1996년 7월
평점 :
품절


  작가 - 그레이엄 헨콕.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적에 아주 조금 읽어봤다. 그 때는 무슨 뜻인지,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냥 글자만 읽었다.

 

  이제 조금은 더 나이를 먹어 그 때보다 아주 조금 들은 것도 많아지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되어 다시 한 번 시도를 해본 책이다.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이제는 글자를 읽는 것은 물론이고 문장과 문단을 읽을 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뭐 이 정도의 발전이 좀 불만스럽긴 하지만 차차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은, ‘과연 성궤는 어디로 가버렸을까?’였다.

 

  성궤는 바로 하나님이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준 십계명을 새긴 돌을 담은 성스러운 궤짝을 말한다. 언약궤라고도 불린다.

 

  대개 사람들은 당연히 그것이 예루살렘에 있을 것이라 여기지만, 그것이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언제 누가 왜 가져갔는지 모르는 그 성궤의 행방을 찾아 저자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오가며 많은 문헌들을 뒤져보고, 유적들을 탐험한다.

 

  이 사건이 기원전에 일어난 것이라 뚜렷한 증거도 없고, 명확한 자료조차 없는 상황에서 저자는 여러 사실들을 이리저리 꿰어 맞추면서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그래서 어떨 때는 비약이 심하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고, ‘그건 당신 생각이지’ 라고 주절거린 대목도 있었다. 그렇지만 저자의 몸을 아끼지 않는 노력과 다양한 수많은 문헌을 뒤진 조수들의 도움 덕분에 ‘어쩌면…….’이라는 일말의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저자는 논픽션, 그러니까 실제로 있었던 일의 기록이라 우기지만 책의 뒷면에 있는 외국 언론지의 추천문을 보면 ‘지적 추리물이라는 새로운 장르.’, ‘환상적인 역사 추리…….’ 라는 말이 나와 있어 한참을 웃었다. 그렇다. 저자가 펼치는 이론은 현 학계에서는 인정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은 이러하다. 구약에 나오는 솔로몬은 시바의 여왕과 정말로 스캔들이 났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은 안타깝게 헤어지고, 여왕은 자신의 나라에서 홀로 아기를 낳아 키운다. 그 아들의 이름이 바로 메넬라크.

 

  그는 성장하여 아버지를 찾아가고, 장자 상속법에 의해 성궤와 이스라엘 각 지파의 맏아들들을 이끌고 돌아온다. 그가 바로 이디오피아의 초대 국왕 메넬라크 1세였고, 아프리카에서 유일한 기독교 왕국인 악숨을 건국한다. 그리고 성궤는 그 이후로 이디오피아의 비밀스런 곳에 보관되어 있다.

 

  그 진상을 알아차린 단체가 바로 그 유명한 템플 기사단이다. 그들은 십자군 전쟁 당시 예루살렘에서 많은 것들을 알아내고, 그 비밀을 지키는 대가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기사단이 사라진 다음 그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 바로 프리메이슨이다.

 

  그런데 성궤는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놀랍게도, 그것이 이제는 사라진 이집트 문명의 모든 학문의 집대성이 만들어낸 무기라고 말한다. 더구나 모세가 이집트의 신관이자 위대한 마법사의 후예라고 가정한다. 그리고 성배와 성궤가 동일한 것이며, 성배는 성궤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하도록 만들어 낸, 일종의 연막이라고 넌지시 내비친다.

 

  재미있지 않은가?

 

  헨콕의 모든 이론은 단 한가지로 귀결된다. 우리가 모르는 엄청나게 발전한 초 고대 문명이 있었다. 그들은 현재의 우리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앞선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남용하다가 멸망해버렸다.

 

  그것을 ‘일부’ 전수 받은 것이 이집트나 다른 고대 문명인 것이다. 이것을 파헤친 것이 ‘신의 지문’, ‘신의 거울’, ‘신의 봉인’ 시리즈이다.

 

  한참 읽다보면 ‘진짜 그렇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모든 증거들과 문헌들의 흐름이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질까. 그렇지만 책을 덮고 생각해보면 ‘개뿔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다. 같은 말을 들어도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양하고, 같은 영화를 봐도 사람마다 결말에 대해서는 각양각색의 의견이 나온다. 전에 영화 '장화 홍련'을 보고나서 그 해석에 대해서 친구 3명과 이야기 했는데, 그 해석이 다 틀렸었다.

 

  그러니 같은 유물을 봐도 헨콕의 해석과 다른 고고학자들의 해석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그 유물들이 엄청나게 오래된, 기록도 제대로 없는 시대의 것이라면 말이다.

 

  뭐랄까, 이미 모든 조서를 꾸며놓고, 거기에 맞춰서 증거를 찾는 격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 평소엔 그냥 무심히 지나치던 담배꽁초 하나도 증거가 되고, 전 국민이 부르던 노래 가사도 뭔가 의미가 내포된 암호로 보이는 것이다.

 

  헨콕의 문제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연결 고리가 없는 일련의 증거들을 무리하게 맞추다보니, 어떤 것은 타당하고 어떤 것은 코미디 대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모든 이론은 앞서 말했지만, 엄청나게 발달했던 초 고대문명의 존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그것이 무너지면 끝장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초 고대 문명의 존재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과연 그의 주장대로 있었는지 아니면 그의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인지.

 

  역사에 100% 진실은 없다고 본다. 흔히 말하지 않는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모양이다.

 

  지적 추리물. 이 말이 맞았다. 어쩌면 나도 이미 기존의 고고학계에 세뇌를 당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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