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히만 쇼
폴 앤드류 윌리엄스 감독, 앤서니 라파글리아 외 출연 / 아이브엔터테인먼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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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The Eichmann Show, 2015

  감독 - 폴 앤드류 윌리엄스

  출연 - 마틴 프리먼, 안소니 라파글리아, 니콜라스 우데슨, 조라 비숍





 

  1961년 4월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2차 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을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다룬 작품이다. 그 당시 이 재판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는데, 이 영화는 그걸 담당한 프로듀서 ‘밀턴 푸르투만’과 감독 ‘레오 허위츠’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유태인 학살에 책임이 있는 전쟁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 프로듀서인 ‘밀턴’은 이것을 세계 최초의 TV 생방송으로 만들기로 계획한다. 그는 유명 감독인 ‘레오’를 영입한다. 마침내 방송이 시작되고, 초반에는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두 사람은 의견대립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그와 동시에 그들의 방송을 막으려는 방해가 이어지는데…….



  영화는 그 당시 재판 영상과 영화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흑백 화면의 재판 과정은 실제 영상이고, 그 외에 컬러 화면은 재연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처음에 밀턴은 시청률에만 관심이 있는 남자였다. 그 때문에 방송 계획이 무산될까봐 협박편지가 오는 것을 팀원들에게 숨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증언이 계속될수록, 그의 태도는 바뀐다.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에 알려야만 하는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레오는 아이히만을 통해,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인간이 어떻게 그토록 잔혹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기록 영상을 통해, 그는 아이히만이 감추고 있는 진짜 얼굴을 보고 싶었다.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의 시체를 묻어야했던 남자의 증언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전후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끔찍한 모습에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좋아하는 호러 고어 스릴러 연쇄살인 장르의 영화는 아무리 피와 살이 튀고 비명이 난무해도, 가짜라는 걸 알기에 보면서 그리 잔혹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개중에는 진짜 눈살을 찌푸리는 장면도 있지만, 어차피 가짜니까 기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주로 들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보여준 그 영상들은, 진짜 기록물이 아니길 빌 정도로 잔인하고 끔찍했다. 내가 아무리 인간은 지구에 해만 끼치는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도,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 선은 지키고 있다는 아주 작은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영상은 그런 믿음조차 사치라는 걸 보여줬다. ‘어떻게? 왜?’ 라는 의문만이 계속 들었다.



  그런데 재판 내내 아이히만의 표정은 무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비웃음이었다. 모든 혐의에 대해 부정했고, 자신은 시키는 대로 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증언을 들으면서 그가 보여준 태도는,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왜 내가 나랑 상관도 없는 이런 쓰잘데기없는 이야기를 듣고 앉아 있어야 하는 그런 표정? 그냥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어떤 경우에 모르는 건 죄라고 생각한다. 특히 결정권자나 그와 비슷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이 가져올 영향이라든지 결과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건 무책임이고 방관이며 나태였다. 그리고 그건 중대한 범죄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지금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재판을 받고 있거나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자신은 몰랐고, 관련이 없으며,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고. 그래서 결국 아이들이 살해당했다. 애초에 일본에 붙어 자국민을 억압해도 봐줬고, 다리를 끊어 시민들의 대피를 막아도 전쟁 중이라 넘겼고, 도시 하나를 군대가 진압해도 그냥 넘겼기에, 오늘날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본다.



  레오의 말대로,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그가 보통 사람보다 사악하거나 사이코패스 기질을 타고 나서가 아니다. 누군가 남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고 다른 이들을 억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믿으면, 그는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그런 사람들 여럿이 모인 것이 바로 나치였고, 그 결과 일어난 일이 전쟁과 유태인을 비롯한 인종 학살이었다. 아이히만은 우리나라에도 있었고, 세르비아에도 있었고, 우간다에도 있었고, 캄보디아도, 세르비아에도 있었다. 지금도 어딘 가에서는 미래의 아이히만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영화는 그런 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이스라엘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왜 그걸 팔레스타인에게 퍼붓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을 학살한 건 독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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