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Brightburn , 2019
감독 - 데이비드 야로베스키
출연 - 잭슨 A. 던, 엘리자베스 뱅크스, 데이비드 덴맨, 제니퍼 홀랜드
이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스포일러 몇 개가 들어 있어요!
아이를 원하던 브라이어 부부의 농장 근처에, 미확인 비행물체가 떨어진다. 부부는 그 안에서 발견된 갓난아이를 기르기로 한다. 열 두 살이 될 무렵, 브랜든에게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뭔가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빼앗으라’고 말하는 것 같고, 잔디 깎는 기계를 던져버릴 만큼 엄청난 힘도 생긴다. 그와 동시에 그는 다른 십 대 아이들처럼 이성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인간의 해부도에 눈길을 돌리고, 기이한 문양을 그리는 데 열중한다. 그러던 중, 관심과 호감을 보이던 여자아이에게 외면을 당하자, 브랜든은 그 아이의 손을 부러뜨리는 사고를 치고 마는데…….
처음 이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외계에서 온 아이가 착한 슈퍼맨이 아니라면? 정의와 질서를 수호하는 별의 계승자가 아니라, 폭력적이고 사악한 정체성을 가진 외계인이라면? 그리고 슈퍼맨의 부모처럼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부는 게 아니라, 그를 의심하고 꺼린다면? 무척이나 신선한 발상이었다. 하긴 외계인은 무조건 지구를 공격하고 지배하려는 악당으로 묘사하면서, 슈퍼맨만 선하고 지구를 수호하는 인물로 그리는 건 좀 웃긴다. 하다못해 어떤 미국 드라마를 보면, 어떤 평행 지구에서는 흑화한 영웅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니 슈퍼맨이 언제나 착한 아이일 리가 없다.
그래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궁금하고 두근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동안 기대했던 내가 안쓰러웠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어쩌면 사춘기 십 대 시절을 너무 오래전에 겪어서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심리를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굴러가는 낙엽이 왜 웃긴지 이제는 모르겠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영화에서 브랜든이 흑화하는 계기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우선 영화에서 드러난 첫 번째 이유는, 그를 태우고 왔던 비행물체에서 나오는 기이한 광선이 있다. 그것은 밤만 되면 붉은빛을 뿜으면서, 브랜든에게 말한다. 세상을 빼앗으라고. 마침내 창고 아래에 숨겨둔 비행물체를 찾은 브랜든은 거기서 주문을 외우며 발작을 일으킨다. 이 장면을 보면서, 문득 만화 ‘드래곤 볼’이 떠올랐다. 거기서 카카로트가 지구로 온 이유는, 지구 정복이었다. 그 별 주민들이 달을 보면 거대 원숭이로 변신하여 마구 때려 부수는데, 그건 누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유전자에 저장된 본능이었다. 그래서 브랜든도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유전적으로 각성하여 파괴적으로 변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 설정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 그의 흑화 이유는 사람들의 외면이었다. 아무래도 브랜든은 머리가 너무 좋아서 학교에서 놀림당하는 아이였던 거 같다. 그런데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던 여자애마저 등을 돌리고, 아빠마저 그를 의심하고, 이모와 이모부마저 그를 혼내자, 이에 분노한다. 이렇게 설정만 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실제로 얘가 놀림을 받고 왕따를 당하는 게 그렇게 흑화할 정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애 엄마는 자기 딸의 손을 부러뜨린 브랜든과 자기 딸을 놀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공격받는다. 그런데 그거 당연한 거 아닌가?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해꼬지를 한 아이와 다시 놀라고 할까? 거기다 이모는 학교 상담교사라서 최대한 그의 편의를 봐주려고 노력했다. 이모부 역시 그가 밤늦게까지 서성이는 것을 보고 화를 낸 것이다. 그들은 그럴만했다. 하지만 브랜든은 그들이 화를 내고 부모와 경찰에 알리겠다고 하자, 분노한다. 하아, 이건 완전히 꼬꼬마 애들이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마트 바닥에 누워 발버둥 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보였다.
어쩌면 제작진은 브랜든이 아직 사리 분별을 잘 못 하고 앞뒤 정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꼬꼬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 그 전까지 브랜든은 머리 좋고 침착하며 상위 1% 안에 드는 모범생이었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도 의젓했다. 음, 그러면 제작진은 융통성 없는 모범생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미숙함을 보여주고 싶었나? 어린아이라서? 그래서 이모나 이모부에게 엄마·아빠에게 이르지 말아 달라고 징징대다가, 안된다니까 다 죽여버린 건가?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그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면 첫 번째 이유와 충돌된다. 사람들을 죽인 후, 브랜든은 침착하게 자기가 만들어낸 기호를 곳곳에 남기고 과자까지 꼭꼭 씹어먹는 여유를 부린다. 외계인이라는 걸 모르면, 사이코패스로 보일 정도다. 그런데 징징댄다고? 물론 그 징징거림이 연기라고 생각하면 말이 되긴 한다.
하여간 그가 흑화하는 과정이 어딘지 모르게 많이 부족해서, 클라이맥스로 가면서 펑터지는 강렬함이 없었다. 조용하던 아이가 흑화하는 영화의 대표작으로는 ‘캐리 Carrie, 1976’를 들 수 있는데, 솔직히 브랜든이 당한 건 ‘캐리’의 백 분의 일도 못 미치는……. 아니 이게 아니고, 하여간 그 영화는 초반부터 캐리가 당하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면서 그녀가 분노를 표출하는 순간, 보는 이도 쾌감을 느낄 정도로 펑펑 터트린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아무리 봐도 중2병 걸린 꼬꼬마가 징징대는 거 같다. 문제는 그 꼬꼬마가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거겠지. 하아, 내가 진짜 영화 ‘크로니클 Chronicle, 2012’이 훨씬 더 낫다고 말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애 아빠 지능이 떨어지나? 애가 괴력을 가진 걸 알았으면, 제대로 파악하고 죽이려고 해야지. 외계인이 산탄총에 죽을 거라고 누가 그래? 봤어? 그래놓고 살려달라고 빌면, 퍽이나 살려주겠다.
이 영화에 별점을 준다면, 다섯 개 만점에 두 개만 줄 거다. 그런데 한 개는 순전히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빌리 아일리시’ 노래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