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선형 옮김 / 오멜라스(웅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을 구입했을 때 가장 기대했던 것은 휴고상(중편부분) 수상작 골드였습니다. 문학을 대상으로 하는 상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상은 노벨상이겠지만 제가 가장 신뢰하는 상은 휴고상입니다. 휴고상 수상작은 재미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아니다 싶은 작품도 있지만, 최소한 책을 읽는데 들인 시간이 아까운 작품은 없었습니다.

사람마다 식습관이 다른데 어떤 사람은 맛있는 걸 가장 먼저 먹고 어떤 사람은 가장 나중에 먹습니다. 저는 먼저 먹는 쪽이고 그래서 골드를 가장 먼저 읽었습니다. 그리고 실망했습니다. 아시모프 단편에 휴고상 수상작이라 무척 기대가 컸는데, 그 탓인지 골드는 그냥 그랬습니다.
아시모프의 단편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최후의 질문이었습니다(본서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단편의 마지막 한방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는 골드도 그런 마지막 한방이 있을 줄 알았는데 골드는 과정을 즐기는 단편이지 마지막에 한 방 먹이는 단편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을 기대하며 급하게 읽었던 저는 골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셈입니다.(제가 기대했던, 혹은 예상했던 내용은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마지막에 언급하겠습니다.)

골드로 첫 단추를 끼웠는데 제대로 끼워지지 않은 격이 되어서 김이 샜습니다. 다른 단편도 취향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다른 단편은 좋았습니다. 아주 짧은 단편은 두 쪽짜리도 있었는데 대개 분량이 길수록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편들 중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송가, 페그후트와 법정은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면 제대로 즐기기 어려운 성향의 작품입니다. 영어의 말장난, 혹은 속담을 알아야 유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번역문으로 읽으면 한 박자 늦게 이해가 됩니다. 역자의 역주를 통해서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 아무래도 재미가 떨어지지요.

칼, 키드는 로봇이 등장하는 단편인데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로봇은 아시모프의 전매특허(?) 같은 분야죠. 로봇, 컴퓨터가 반란을 일으켜서 인간을 지배한다는 류의 이야기가 꽤 많은데 아시모프의 로봇은 그런 이야기들과는 성향이 많이 다릅니다. 로봇 3원칙에서 보듯 상당히 낙관적입니다. 그런데 이 두 단편은 초기의 낙관적인 성향과는 좀 거리가 있었습니다. 칼은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로봇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주인과 칼의 관계변화가 재밌습니다. 키드는 로봇 자체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데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책에 실린 단편 중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신이 되려 한 알렉산더입니다. 골드를 읽으면서 기대했던 마지막 한 방을 여기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시모프의 단편을 읽기 위해서 이 책을 샀습니다. 책의 절반에 해당하는 에세이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에세이가 일관된 주제와 계획에 의해서 창작된 게 아니라 아시모프 사후에 여기저기서 끌어다가 묶어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너스라고 생각했던 에세이가 예상외로 좋았습니다. 에세이 중에서도 진지하게 털어놓는 이야기보다는, SF의 뒷세계를 엿볼 수 있는 뒷얘기 쪽이 더 좋았습니다. 하인라인은 퇴고를 하지 않았다거나(정말일까요?) 아시모프는 한 번만 퇴고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아시모프가 수다스럽다고 평을 하는 글을 꽤 읽었는데 저는 왜 그런 줄 몰랐습니다. 단편에서는 별로 수다스럽게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논픽션을 읽으니 확실히 수다스럽네요. 어떤 때는 은근슬쩍, 어떤 때는 대놓고 자기 자랑을 하시는데 그게 밉지 않고 귀엽게 느껴집니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인터뷰에서 왜 경제학을 전공했느냐는 질문에 파운데이션을 감명 깊게 읽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심리역사학이 없어서 비슷한 학문을 찾다보니 경제학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시모프 옹이 아직 살아 있었다면 이 인터뷰를 가지고 한바탕 잘난 척을 했을 겁니다.

올해 돌아가신 아서 C. 클라크를 끝으로 에스에프의 삼대 거장은 모두 돌아가셨군요. 안드로메다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두 분에게 노벨상 수상자가 내 책을 감명 깊게 읽었어, 하고 자랑하는 아시모프의 모습을 즐겁게 상상해 봅니다.




사족- 앞에 말한 골드의 스포일드가 약간 나옵니다.




저는 컴퓨드라마를 의뢰한 사람이 외계인인 줄 알았습니다. 또 의뢰된 이야기가 소설이 아니라 진짜 외계인 이야기일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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