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2) 삶의 해석의 차이
나이 사십을 넘기면서 ‘이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할 텐데’ 하면서도 좀처럼 운동하게 되질 않았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워낙 운동에 취미가 없어서다. 학창시절에도 체육시간을 싫어했다.
어느 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날이 많아지게 되어 급기야 내과에서 내시경 검사를 하게 되었다. 검사 결과는 위장에 큰 이상은 없으나 소화능력이 약하다는 것. 의사는 몸을 많이 움직이라며 방치하면 큰 병을 키울 수도 있다고 조언하였다.
의사의 이런 말에 걱정이 되기도 했고, 소화가 되지 않아 배가 더부룩하고 답답한 느낌이 심해져서 기분이 좋질 않았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그때부터 난 필요에 의해 스스로 매일 걷는 운동을 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걷고 나면 소화불량 증세가 없어졌다. 이것이 지금껏 매일 한 시간씩 산책을 하게 된 이유다. 이젠 걷고 싶을 정도로 산책을 좋아한다.
나는 산책을 하며 감미로운 음악을 듣기도 하고 아름다운 하늘과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햇살의 따사로움을 온몸에 받으며 만끽하기도 한다. 평소 소화가 잘 되었다면 산책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 뻔했다. 이런 즐거움은 ‘소화불량’이 내게 준 선물인 셈이다.
우리의 삶을 잘 관찰해 보면 이렇게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이것을 간과하며 살 때가 많은 것 같다. 이것은 삶의 해석의 차이에 기인하는데, 매사 긍정적인 생각으로 삶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다음의 글처럼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려고 한다.
10대 자녀가 반항을 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내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 차동엽 저, <무지개 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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