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13 제일 위에 놓여 있는 책은 "재미있는 산수" 였다. 난 그 책을 집어들고는 첫 장을 열어보았다. 피비의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피비 웨더필드 콜필드, 4B – 1
이쯤 되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피비의 가운데 이름은 웨더필드가 아니라 조세핀이었다. 그렇지만 그 애는 조세핀이라는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나 내가 볼 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 내고는 가운데 이름을 쓰는 것이다.
P216 "’의사’ 라는 영화를 봤어. 켄터기에 사는 어떤 의사 얘기였는데, 절름발이여서 걷지 못하는 아이한테 담요를 뒤집어 씌우는 것 있지? 그래서 그 의사는 감옥에 갔어.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어" (피비)
"그 의사가 왜 그랬냐 하면, 아이를 불쌍하게 여겼던 거야.
그래서 아이 얼굴에 담요를 뒤집어 씌워서 죽이려고 했던거지. 그러고는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가. 그런데 얼굴에 담요를 썼던 그 아이는 그 의사를 계속 찾아가는 거야. 의사가 했던 행동에 감사하면서 말이야. 말하자면 그 의사는 자비로운 살인자였던 거지. 자기도 감옥에 갈 만큼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의사라고 해서 하나님이 관여하시는 일을 대신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피비)
P217 나는 피비에게 레코드 얘기를 해주었다. "내가 널 주려고 음반을 하나 샀었는데, 오다가 떨어뜨려서 깨뜨리고 말았어." 난 코트 주머니에서 깨진 레코드 조각들을 꺼내 보여주면서 말했다. "내가 취해 있었거든"
"그 조각들 이리줘. 내가 가지고 있을래" 그 애는 내 손에서 레코드 조각들을 받아가서는 침대 옆에 있던 작은 탁자 서랍에 넣는 것이었다.
동생은 나를 늘 감격하게 만든다.
P225 "그럼 뭘 좋아하는지 한 가지만 말해봐." (피비)
"그래 대답해줄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말하라는 거니, 아니면 약간이라도 좋아하는 걸 말하라는 거니?" (홀든)
"진짜 좋아하는 것"(피비)
P229 "그 노래는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 이야. 그건 시야. 로버트 번스가 쓴거잖아!" (피비)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넓은 호밀 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 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 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P231 난 앤톨리니 선생을 이제까지 만났던 선생들 중에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같이 농담을 주고 받아도 상대방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분이었다. 아까 이야기 했던 제임스 캐슬, 창문에서 떨어진 그 아이를 안아 올린 것도 그 선생이었다. 그 아이의 맥을 짚어보고는 자기 옷을 벗어, 그 아이를 덮어준 뒤 양호실까지 안고 간 것이다 옷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P237 "다 가져가도 돼. 나중에 갚아. 연극할 때 가지고 오면 되니까" (피비)
"전부 얼마니?"
"8달러 85센트야. 아니다. 65센트야. 내가 좀 썼거든." (피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