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민음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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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1

나는 책에 대해 속물적 기질이 있다. 그러니까 무슨 상을 받았다거나 고전으로 인정받은 책이라면 일단 욕심부터 내고 본다. 특히 비평가들의 극찬이 붙으면 -상을 받았거나 고전이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질러놓고 보는데, 이게 그냥 ‘좋은 책이라니까 읽어 보자’ 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훌륭한 책이라면 이렇게 훌륭한 내가 안 읽어줄 수 없지’라는 심리에서 하는 짓이라는 거다. 쓰고 보니 웃기네(네, 웃어 주셔요.. ^^;).
이런 나의 독서가 속물적이라는 더 정확한 이유는 내가 읽어내는 데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도 비평가들이 극찬을 하는 영화에 관람객 평점이 별로인 경우가 많은 것처럼, 소설도 비평가가 극찬한다고 해서 다 재밌는 것은 아니다. 비평가들은 영화나 책만 들이판 전문가로서 더 많이 알아서 더 넗게 더 깊이 보고 가치를 매기지만, 일반적인 관람객이나 독자는 대체로 작품을 보거나 읽는 일이 일상의 여러가지 일들 중 하나일 뿐, 그들만큼 지식도 없을 뿐더러 시간과 관심을 더 깊이 투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비교적 표면에 드러난 것들 중 관심을 붙드는 것이 없으면 책이든 영화든 지루해서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라고 생각-이라 쓰고 변명이라 읽어야 하나-하는 것이다). ‘대단한 소설’ 중 내가 포기한 건 한두 개가 아닌데,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좌절하게 했던 소설은 바로 귄터 그라스의 ‘양철 북’이다. 언젠가 (지금은 좀 이상하게 변하신) 서민 교수의 글에서 ‘양철 북’을 ‘끝도 없이 지루하지만 읽고 나면 와, 정말 다 읽었어! 라는 성취감이 큰 책이다’ 비슷한 구절을 읽었는데, 읽고 나서 어찌 되었든 ‘다 읽었다!’ 하나 남기려고 그 지루함을 견뎌내야 하는 거라면, 그건 진정한 속물에게도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니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이런 속물적 기질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불문학사는 물론 세계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자 고전이라는 이 책은, 1부 <스완의 집 쪽으로> 외에 우리말로 완역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찾기 시작했을 때는 아직 없었던 것이 몇 년 전 펭귄클래식에서 전권이 완역되어 나왔고, 비슷한 시기에 민음사에서 한 권 씩 순차적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나는 먼저 펭귄클래식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전권을 전자책으로 질렀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처음 열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의식이 꿈에서 현실로 서서히 넘어오면서 화자의 감각과 의식에 일어나는 일들을 세세히 묘사하면서 유년 시절의 콩브레(펭귄클래식 판에서는 꽁브레)의 기억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대여섯 차례는 시도했겠건만, 나는 번번이 ‘꽁브레’에도 이르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민음사 판이 완간되고 펭귄클래식 판보다 번역이 낫다는 걸 어디서 보고는 또 민음사 판을 전자책으로 한꺼번에 질렀다(사실 1권은 종이책이 나왔을 때도 사서 읽으려고 했었지만… 역시 콩브레에 들어가지 못하고…).

2024년이 되었고, 올해의 목표 같은 걸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올해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 읽겠다고, 막연히 결심했다. 그리고 벌써 5월인데, 이제 첫 권을, 드디어 다 읽었다!

이 책을 읽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프루스트의 묘사가 장황할 만큼 길고 세밀한 데다, 문장이 대체로 엄청나게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침표에 다다르면 주어가 무엇이었는지 헷갈린다. 정말 천천히 집중해서 공들여서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천천히 집중해서 공들여서 읽으면, 자연과 인물에 대한 그의 세밀한 묘사와 꿰뚫어 보는 시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인물들-고모할머니, 레오니 아주머니, 프랑수아즈, 등등-은 읽다 보면 심술궂은 위트도 있어 마치 디킨스의 인물처럼 독특하면서도 전형적인 어떤 모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재밌다!

시작이 반이라니까, 절반이나 읽었다! 고 우길 수는 없고 13권 중 이제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억지로가 아니라 재밌게 읽고 있어서 다행이다. 가을이 오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을까? 다 읽고 나면 또 어떤 생각이 들까? 이걸 다 읽고 나면, 속물 근성으로 달려들었다가 실패했었던 또 다른 책인,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을 테다. 훗.

덧)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랑스인들도 읽기 쉽지 않은 소설이라고 들었다. 프랑스어 문장도 만연체이고 거기다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난해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외국인으로서 번역본으로 읽는 어려움은 여기에다 ‘번역자의 오지랖‘까지 더해진다. 딴에는 독자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붙여놓은 미주가 무려 213개. 그 중 절반은 마치 중고등학교 참고서 같은‘작품 해설‘용이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 문장은 이런 의미이다, 여기서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다, 등등. 심지어는 ‘스포(!)‘도 한다 - 이것이 이어져서 나중에는 어떻게 된다, 운운. 전자책으로 읽었으니 그나마 어깨번호만 누르면 바로 미주를 볼 수 있어 덜 번거로웠지만, 종이책으로 읽었다면 300여 페이지의 책을 읽는 동안 213번이나 책 뒷부분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읽어야 하는데, 그게 의도하지 않게 복선을 노출하는 미주라면 아 뭐야, 싶은 것이다. 번역자가 너무나 많이 깊이 알아서 독자에게 자기가 느낀 것만큼 다 알려주고 싶다고 욕심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독자로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만큼,전문가보다 얕을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맞는 의미를 길러내는 즐거움이 또 있는 것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도 각주나 미주가 과한 책들이 있는데,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꺠번호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으.

덧2) 엄청난 각주는 펭귄클래식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펭귄클래식 판의 번역은 번역 자체도 더 정신없다. 두 책의 같은 페이지를 놓고 비교해 보니 분명하다, 적어도 일반독자인 나에게는. 뭐 괜찮아, 전자책이니까 부피를 차지하는 건 아니야.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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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존재가 어떤 미지의 삶에 참여하고 있어서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 미지의 삶 속으로 뚫고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 생겨나기 위해 필요한 전부이며, 사랑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으로,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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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대단한 세상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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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시리즈의 누군가가 재등장한다는 귀띔을 받고 그이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면서도 정말 그이가 나올 줄은, 그리고 그이가 그이일 줄은 몰랐다! 성격이 너무 바뀌었어! 그래도 재밌었고.

오르부아르 시리즈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이번에 결말은 사이다(!)가 아니었다. 앞으로 나온다는2차 대전 이후 40년(?) 동안의 이야기들이 다 그럴가봐 걱정된다. 세상은 점점… 소설조차 사이다 결말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지경으로… 특히 뚱땡이의 결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기가 결말이 아니겠지, 설마?!

부모는 부모고 자식은 자식이고.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한다는 건 본능인지 의무인지. 고작 선거 때문에 약간 데면데면해진 엄마와 나는 그냥 코미디지.

역자 후기에 대단한 오기가 있다. <화재의 색>을 언급하면서 ‘에두아르의 여동생 마틸드’라고 썼는데 ‘에두아르의 누나 마들렌’이었거든요. 자기가 죽 번역해 놓고는 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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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 슬픔의 거울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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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1부 <오르부아르>는 정말 굉장했고, 2부 <화재의 색>은 좀 쉬어가는 편, 3부에서 다시 힘을 냈군, 해서 후아, 속을 비우는 한숨을 쉬었다.

(… 읽은 책에 대해 글을 쓸 때는 읽은 직후에 써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마음에 안겼던 느낌을 더 그럴 듯한 문장으로 만드려고 덧붙이는 단어들이 감동도 문장도 더 진부하게 만들 뿐이다. 하여 한 시간 정도 끙끙거리며 찍었던 한 단락을 날려버렸다. 잘 했어! 이제부터는 그냥 아무렇게 써야지.)

1. 이 소설은 두 개의 축을 따라 진행된다. 전쟁과 한 세대 전의 사랑. 전쟁은 세상을 망가뜨리고, 연인의 비겁함과 주변인의 악의에 망가진 사랑도 서로 사랑한 사람들은 물론 후세대 사람들까지 망가뜨린다. 부모 세대의 사랑 때문에 망가진 사람들이 전쟁으로 망가지는 세상에서 ‘너무나 가까우면서도 너무나 다른 타인’을 만나 서로를 다시 서게 하는, 그런 이야기로 읽었다. 사람에게는 결국, 사람 뿐이다. 가족, 연인, 친구가 아니라 재난 속에서 각자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와중에 우연히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게 된 사람. 이런 주제의식이 이전 작들에 비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다.

2. 등장인물들을 어쩌다 한 장소에 모이게 하는 이는 데지레 신부/미고/미뇽인데 이 인물만으로 소설을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그런 인물이다.

3. 정말 끔찍한 인물도 있는데 남편의 외도로 자신이 당한 모욕을 갚겠다고 남편의 외도로 생긴 아이를 친모에게서 뺏어 입양한 후 학대하는 여자가 있다. 이 여자 때문에 우울해져서 책을 그만 놓아버릴 뻔했다..

4. <오르부아르> 3부작의 피에르 르메트르와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의 르메트르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일단 이야기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고… 그러나 이 소설을 여는 사건은 베르호벤 시리즈의 르메트르가 쓴 것 같긴 하다. 쓸데없이 잔인하고 충격적인 도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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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색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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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지만 <오르부아르>보다는… 깨진 얼굴의 플러스 방향 극까지 미친 에두아르와 소심함의 결정체로 마이너스 방향 극까지 미친 알베르만큼 인상적인 인물은 없었다. 속시원한 복수극 그 이상은… 이제 3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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