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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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일 새해 첫 책선물이 왔다. 며칠 전 책을 보냈다는 문자를 받고 설레임으로 기다리다 포장을 뜯으니「라요하네의 우산」이라는 제목의 김살로메님 첫소설집이 반긴다. 부드럽고 포근해보이는 표지와 책 속에 담긴 글자 포인트가 커서 겁나 좋았다!^^

‘라요하네‘? 처음 듣는 이름인데, 러시아어 통역가이자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 이름 순서를 바꿔놓은 듯한 지명에 끌려 표제작부터 펼쳤다.

‘동유럽 모처에 숨은 마을 라요하네.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을 여행지로 선택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 라요하네 들판에 히스꽃이 만발했다. ... 폭풍의 언덕을 맨발로 쏘다니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를 상징하는 꽃. 지리적으로는 그곳과 먼 곳이지만, 폭풍의 언덕을 감쌌던 히스 덤불을 라요하네 들판으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70~71쪽)

라요하네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실제 동유럽 마을인지, 혹은 살로메님이 여행한 마을 풍경에 작가적 상상을 더하여 그려낸 허구의 마을인지 몰라도 소설 배경지로 꽤 매혹적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잊으려 떠난 여행지에서 만난 룸메의 강박증(시메트리 증후군) 때문에 여행의 힐링과 킬링이 교차되는, 섬세한 내면 정서와 심리를 그리며 상처를 극복하고 보듬어가는 여자들 이야기에 공감하고 때론 감정이입이 됐다. 특히「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잃어버린 우산 아르튀르와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지미처럼, 나 역시 책장에서「자기 앞의 생」을 찾게 되더라.^^

소설집 첫 이야기 ‘알비노의 항아리‘ 부터 ‘암흑식당‘을 거쳐 ‘귀휴‘와 ‘피의 일요일‘ 로 차례차례 하루 한 편씩 음미하는 중이다. 색다른 소재와 사건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인간 본성의 추함에, 나한테도 이런 게 있지 싶어 부끄러움은 내몫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궁금해 뒷장을 넘기게 된다. 인간 군상들의 평범한 삶에서 특별하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엮어낸 솜씨가 역시 소설가는 다르구나 이해되었다.

간결한 문장과 섬세한 묘사로 인간의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작가의 필력에, 역시 알라딘에서 익히 알던 글솜씨라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내 속을 들여다보고 쓴 것 같은 문장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이건 내가 아는 사람 얘기다 싶은 것도 발견한다. 곳곳에서 내가 아는 나무들을 만나면 즐겁고, 나무의 특성과 잘 어우러진 은유나 비유, 혹은 분위기를 묘사한 문장은 더 반가웠다.

소설 속 사람들처럼 내 삶에도 부끄러운 순간이 있고, 들키고 싶지 않은 추함이 누적된 시간도 있으리라. 입으로 쌓은 업도 많고, 빌어도 용서받지 못할 죄악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며 부끄럽다 느끼고 반성하는 내 모습에 위안이 되는 건, 입만 열면 거짓을 토하는 국정농단에 연루된 인간들처럼 후안무치는 아니라는 거였다.

살로메님이 다음 작품에서는 위선으로 무장한 그인간들 이야기도 보여주겠지 싶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끊임없이 ‘버리고 벼리는‘ 글쓰기로 정진하는 작가의 건필을 기원한다!

*옥의 티 31쪽 삵쾡이=>살쾡이
(국립국어원은 삵괭이의 발음 [삭꽹이]는 현실 발음과 달라 살쾡이를 표준어로 삼았다고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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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7-01-17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살로메님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순오기 2017-01-19 20:19   좋아요 1 | URL
한 편씩 아껴가며 읽어요.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지~ 감탄하면서!^^

꿈꾸는섬 2017-01-19 20:20   좋아요 0 | URL
정말 글 잘 쓰시더라구요.

2017-01-18 0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9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