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편 소설선 1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0
김동인 외 지음, 오양호 엮음 / 문예출판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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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단편 소설은 1920년대 김동인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춘원 이광수의 계몽주의 소설만 알던 독자에게 김동인의 단편소설은 충격 그 자체였을 듯하다. 시대적으로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지만 한 시대와 그 시대의 인간문제를 언어예술로 형상화하는데 김동인은 탁월했다. 또한 한국 단편 소설의 패턴을 확립해 놓았다는 점에서도 김동인은 높이 평가된다.

여기 수록된 15편의 단편은 한국소설사에서 그 이름이 빠지지 않는 작품들이다. 중학생 이상 교과서에 거론되는 작가나 작품은 그리 낯설지 않다. 1920년대 고어투의 어구나 1930년대 작품에서 보이는 외국어 등은 오늘날 독자가 이해하게 손을 대 현대식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따랐고, 해석이 난감하거나 표준어로 바꾸기 어려운 것은 그대로 표기했다고 밝힌다. 그래서 본래 소설의 맛을 느끼기에 좀 부족하지만, 청소년들이 이해하기엔 좋을 듯하다.

김동인의 배따라기. 감자, 현진건의 빈처. B사감과 러브레터, 나도향의 물레방아, 전영택의 화수분, 최서해의 탈출기. 홈염, 채만식의 레이드메이드 인생,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계용묵의 백치아다다, 이상의 날개, 최명익의 장삼이사는 여러번 읽어본 작품이라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실린 이태준의 달밤은 처음 접한 작품이라 신선하고 재밌었다.  

상허 이태준은 교과서에서 배운 '문장강화'로 친숙한 이름이고, 단편으로 복덕방, 꽃나무는 심어놓고, 농군, 돌다리, 우암노인, 불우선생, 영월영감, 가마귀, 해방전후와 장편으로 황진이, 농토 등이 있다. 

'달밤'은 성북동으로 이사온 화자가, 좀 모자란 신문배달 보조원 황수건에 대해 이야기 한다. 황수건은 삼산학교 급사로 있을 때, 도 학무국 시학관이 학교를 방문했는데, 수업에 들어간 선생을 대신해 접대한 이야기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하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황수건은 일본인 시학관을 맞아 제딴에 접대 한다고 몇 개 안되는 일본어로 말했다. 

센세이 오하요 고자이마스카(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아메가 후리마쓰(비가 내립니다)
유끼가 후리마쓰카(눈이 내립니까?) 

이 세개의 말을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무한 반복하느라 수업 끝나는 종도 안 쳤다. 수업 끝종을 기다리던 선생들이 교무실로 달려와서야 상황을 알아챘다. 학교에 있을 때 선생들이 놀려먹느라 '너의 색시 달아난다'고 하는 말을 제일 무서워했단다. 그런 말을 들은 날은 색시가 달아났는지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수업 마치는 종을 20분이나 30분 후에 쳤다. 그의 에피소드는 모두가 좀 모자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었다. 똘똘치 못한 황수건은 할 일이 없어 신문보조원을 했는데 그것도 밀려났다. 화자는 그에게 돈을 주어 학교 앞에서 하고 싶다는 장사를 하게 했지만 원금도 다 까먹었고, 화자에게 주려고 남의 포도원에서 무작정 포도를 따 왔지만 주인에게 덜미를 잡혀 화자가 포도값을 물어주어야 했다.  결국 모자란 남편과 그런대로 잘 살던 아내가 동서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고 황수건은 거나하게 술이 취해 한소절 밖에 모르는 노래를 무한 반복하며 달밤에 흔들리며 걷고 있었다.

화자는 황수건을 아는 체하려다 그가 무참할까봐 살짝 비켜나 모른척 지나게 했다는 이야기다. 좀 모자란 황수건에게 발견할 수 있는 건 꾸미지 않은, 아니 꾸밀 줄 모르는 인간의 순수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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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3-0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대문학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드시네요.ㅎㅎ

순오기 2010-03-05 01:27   좋아요 0 | URL
가끔은 거슬러 돌아가는 것도 괜찮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