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 그림책
안도현 지음, 한병호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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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연어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어린이 독자를 위해 그림책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좋은 점도 있지만 아쉬움도 많다. 이 책은 상당히 철학적 사유가 담긴 책인데 그림책으로 만들어 저학년에게 줄거리만 알려 준다면 진정한 의미의 독서를 해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기존의 연어를 이러저리 쳐내고 줄거리만 뚝 잘라서 전하다 보면 본래의 의도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냥 연어의 생태를 알려주려면 문학이 아닌 자연그림책으로 보면 될 테니까.



넓게 양면에 펼쳐진 그림은 바다를 가늠하기엔 좋지만 무채색에 가까운 그림은 어린이들이 선호할 그림이 아니라 호응을 얻기는 어렵겠다. 우리 도깨비 그림책에 익숙한 한병호 선생이지만 특징을 발견하긴 어렵다. 게다가 물수리에 채여간 연어는 누나연어였으니 비정한 생존법칙을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버겁지 않을까? 어릴때는 아름다운 그림과 따뜻한 이야기만 듣고 자라도 좋을 거 같다. 



물이 흐르듯 시간이 흘러 바다에서 거슬러온 연어들은 새로운 물냄새에 흥분한다. 바로 연어들이 태어나 자란 곳, 고향인 초록강이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본능이란 참으로 놀랍고 신비하다. 연어는 점점 붉은 색으로 변한다. 고재종 시인이 읊은 혼인색이 되는 것이다. 은빛연어와 눈맑은 연어는 사랑에 빠지고... 알을 낳기 위해 초록강 상류로 거슬러가야 한다. 



마침내 눈앞에 폭포가 나타나고, 폭포를 뛰어넘기 위한 방법이 모색된다. 쉬운 길을 택할 것인가, 험난하지만 마땅히 연어가 가야할 길을 택한 것인가! 은빛연어는 친구들이 쉬운 길로 가자고 꼬여도 '연어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과, 자기들이 쉬운 길을 택하면 태어나는 새끼들도 쉬운 길로 가게 될 거란 생각에 과감히 폭포를 뛰어넘기로 뜻을 모은다. 온몸으로 뛰어올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바로 기적이 일어났다. 사나운 물줄기를 뛰어넘으니 고요한 물살이 아늑하게 감싸 주었다. 



수천 수억개의 물방울들이 모여 시냇물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는 걸 연어는 깨닫는다. 연어들은 알 낳을 준비로 바쁘다. "삶의 의미를 찾았니?" 눈맑은 연어의 물음에 은빛연어는 '알을 낳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이 있을거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부끄러웠지만 "삶의 의미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 라고 대답한다. 비로소 먼 여행을 마치는 느낌이었다.  

 
 
산란터가 만들어지자 눈맑은 연어는 입을 벌려 알을 낳고, 은빛 연어는 앵두빛 알들에 하얀 액체를 뿌린다. 그리고 둘이 나란히 입을 벌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풍경, 하지만 슬픈 풍경이기도 하다, 그렇게 종족 번식의 의무를 마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초록강에 겨울이 오고 얼음장 밑에선 어린 연어들이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하며 조금씩 자라난다. 

맨 뒤에는 안도현 시인이 어린이에게 주는 말이 있다. 연어를 쓰게 된 동기와 연어를 닮은 어린이들이 폭포도 뛰어넘고 새로운 길을 찾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한다. 본래의 연어는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이야기로 읽히는데 그림책 연어는 눈높이를 낮춰 쓰다보니 깊은 사유를 찾기엔 부족한 듯. 어린이들이 종족번식을 위한 연어들의 여행을 이해하고 자신이 죽는 길이지만 알을 낳기 위해 폭포를 뛰어오르는 연어들의 삶을 이해하면 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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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6-0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잘 지내셨죠? ㅎㅎ
오랜만에 놀러왔는데 여전히 좋은 책, 재미있는 책이 가득해요.^^
건강하세요.ㅎㅎ

순오기 2009-06-04 00:36   좋아요 0 | URL
어머 반가워요~ 저도 요즘에 통 서재마실을 못 갔어요.
독서마라톤 참여로 열심히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리뷰는 다 쓰지 못하고 있어요. 현수, 현준이 근황이 궁금해서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