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 김용택 동시집
김용택 동시집, 이혜란 그림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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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마암분교에 가서 시인을 만난 적이 있기에, 덕치학교에서의 선생님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해본다. 섬진강가 언덕에 자리 잡은 마암분교에서 뵌 시인은 시집의 표지 그림처럼 편안한 생활한복을 입고 계셨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한시간의 강의가 어느새 흘러갔는지 돌아오는 발거음이 아쉬워 다들 가져간 시집에 사인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진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아이들과 동심으로 생활하시니 세월도 비켜가는 듯하다. 

김용택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시가 시인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분을 뵈었기에 나혼자 친숙하게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곳을 다녀왔기에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학교 아이들도 이 분의 시집을 읽으면, 자기들도 이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만만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선생님의 시를 읽어 준 날은 어김없이 시를 쓰자고 조른다. 아이들의 시심을 일깨우고 시 쓰기를 어렵지 않게 여기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일 것이다.^^ 

고향 마을에서 40년을 교사로 지낸 선생님은 참 행복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교사들이 진급에 목을 매면 참 많이 망가지는 걸 보게 되는데, 그런 걸 초월한 선생님은 정말 행복하게 사셨을 거 같다. 당신이 좋아하는 아이들과 사철 변하는 산과 나무와 풀꽃을 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산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꿈꾸지만 누리지 못하는 행복이다. 아이들과 뛰놀며 시를 쓰는 선생님은 정말 동심을 잃지 않은 어른아이일 것이다. 이 시집은 정년퇴임을 앞두고 교단일기로 낸 마지막 시집이다. 우리도 그분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시를 맛보자. 

개미 

토란 잎에 내린
이슬비가 모여
또르르 굴러
개미 위에
툭 떨어진다.
"어!
이거,

물벼락이여?"
  

새 

콩새
비비새
박새
물새
참새
멧새
굴뚝새
제비

작다.

이 정도면 아이들이 만만하게 여길만 하지 않을까? ^^ 김용택 선생님이 쓴 시는 이렇게 쉽고 재미있이서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시가 어려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시 51편이 5부로 나뉘어 있다. 1부와 3부에는 시골 생활에서 발견한 작은 생명 이야기를 아이들 눈높이로 풀어냈고, 2부와 4부에는 산골 아이들의 일상과 외로움을 그려냈다. 5부는 산골 아이들의 일상을 다양한 풀꽃들에 비유한 시가 담겨 있다. 가끔은 뭉클 눈물 한 방울 퐁 솟아나올 시들도 있다. 표제가 된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를 읽으면 혀를 쏙 내밀고 있을 김용택 선생님이 그려진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태성이가 얼마 빨래하는 데 따라와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뛰어다닙니다.
태성아 그러다가 물에 빠질라
태성아 그러지 마 그러다가 물에 빠질라
그래도 태성이는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뛰어 건너다닙니다.
그때 비행기가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태성이가 하늘을 쳐다보며
징검돌을 뛰어 건너다가 풍덩 물로 빠집니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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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12-2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 는 정말 물벼락을 맞았네요 ^^

순오기 2008-12-26 18:48   좋아요 0 | URL
흐흐~ 그렇죠, 고 작은 몸에 물벼락을 맞았으니 어쩌누?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