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2
로버트 뉴턴 펙 지음, 김옥수 옮김 / 사계절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중학교 학부모 독서회의 7월 토론도서였다. 사계절출판사를 응원하느라 추천한 책이었는데 역시 세간의 평가에 어긋나지 않는 감동이었다. 말없는 중3 아들녀석에게 답을 들으려면 몇 단계의 질문을 거쳐야 되는 상황이라, 밋밋한 듯 펼쳐지는 책 속 부자간의 대화에 특별히 주목했다. 이런 대화를 나누며 인생철학과 삶의 진지함을 전하는 아버지가 부러웠고 존경스러웠다. 미국의 경제공항기를 배경으로 한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로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잔잔하게 전한다.

입은 옷을 놀려대는 녀석에게 제대로 대거리도 못하고 학교를 도망쳐 나온 열두살 로버트. 송아지를 낳으려는 암소(행주치마)를 돕기 위해 자기 바지를 벗어 송아지 목에 묶고 한쪽은 나무에 묶을 줄 아는 지혜로운 녀석에게 반했다. 열세 살에 이런 판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삶의 현장에서 저절로 습득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입부가 강렬했기 때문인지 이후의 잔잔한 일상이 밍밍해서 재미없었다는 회원도 있었지만,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밀려온 감동은 이 책이 꾸준히 사랑받고 좋은 책으로 꼽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셰이커 교도의 종교적 지침에 따라 절제된 삶을 사는 아버지가 때론 불만이지만, 강압이 아니라 조곤조곤 부자간의 대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좋았다. 웃지 못할 상황에서도 웃게 만드는 그들의 대화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 책의 백미다. 그들의 대화 장면마다 밑줄 그어 놓고 다시 들여다 보며 부러움이 일어났다. 이런 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대화 좀 하자"라고 해서 만들어지는 상황이 아니기에 오랜 기간 몸에 배인 그들의 사랑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그 지독한 가시가 모두 제 몸 속으로 파고들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옆구리로 빠져나오는 것 같아요.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어요."
"네 영혼도 네 몸처럼 그렇게 형편 없다면 팔아도 얼마 받지 못할 것 같구나." (22쪽)

"왜 투표를 할 수 없어요? 셰이커 교인이기 때문인가요?"
"아니, 글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이야. 그런 걸 못 하면 사람들은 머리가 비었다고 생각한단다. 아무리 다른 걸 다 잘해도 말이다." (48쪽)

"너와 나 우리 모두는 검소하게 살아야 하는 기독교인이야. 우리는 셰이커 교본대로 살고 있잖니. 속세에 찌든 사람들이 아니라고. 그래서 세속적인 갈망이나 욕심 때문에 고통받지 않아. 그런 것 때문에 속상하진 않단다. 나는 부자야. 가난한 건 그 사람들이지."(49쪽)

"아빠, 노을지는 하늘보다 멋있는 색은 없는 것 같아요. 나는 노을이 너무나 좋아요. 아빠는 어때요?"
"하늘은 바라보기에 참 좋은 곳이야. 그리고 돌아가기에도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어."(86쪽)

 
   

 아버지는 글도 읽을 줄 모르며 돼지를 잡고 농사 짓는 농부였지만, 일상에서 늘 대화를 나누며 농사일도 가르치고 스스로 판단하고 처신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그 아버지가 병이 나서 하늘로 돌아가기 전, 열세 살이 된 아들에게 늙은 엄마와 이모를 책임지도록 정신을 다져주는 장면은 눈물났다. 아버지가 떠나면 성큼 어른이 되어야 할 로버트는 이미 준비가 된 어른이었다.

헛간에서 주무시다 혼자 돌아가신 아버지, 아들은 아버지가 편안히 안식하도록 덤덤히 장례를 치룬다. 아주 어른스럽게... 그때 장례식장에 모인 이웃들과 돼지잡는 아버지의 동료들을 보면서, 비로소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부자의 의미를 발견한다. 아빠를 존경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찾아온 사람들을 보고 아버지는 당신 말씀처럼 많은 것을 가진 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날은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란 것도...

이 책에서 눈물샘을 자극해 울컥하는 장면이 몇 군데 있었다. 그중에서 암소의 출산을 도와주고 옆집 아저씨에게 받았던 돼지, 핑키가 새끼를 낳을 수없고 겨울을 날 사냥감도 잡지 못해서 핑키를 잡아야 했을 때... 어른스럽게 상황을 받아들인 아들이 고마운 아버지는 피묻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닦아 준다. 아들은 모든 걸 말해주는 아빠의 울퉁불퉁한 손에 입맞춘다. 설사 나를 죽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아빠를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면서... 아빠는 다른 한 손을 들어 소매로 두눈을 훔쳤고, 아들은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이다. 눈물이 나야 좋은 책이라는 개인적인 기준에 비추어 봐도 이 책은 역시 좋은 책이다.

독서회원들이 다 중학생 엄마였기에 자녀들과의 소통문제와, 우리가 애들을 너무 곱게 키우는 게 아닐까 돌아보게 한 책이다. 또한 아무리 씻어도 돼지냄새가 가시지 않아 아내에게 미안해 했을 때, 그 아내가 성실하게 노동한 냄새니까 챙피하게 여기지 말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며, 현장에서 새까맣게 탄 남편의 얼굴을 부끄러워했던 고백을 털어 놓은 회원도 있었다. 또한 아버지와의 추억을 얘기하며, 우리도 이 다음 우리 애들이 부모님과 함께 한 세월이 행복했었노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우리들의 숙제로 남았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늙은 어머니와 이모를 모시고 가장으로 살아가는 로버트의 성장이 펼쳐지는 후편 '하늘 어딘가에 우리 집을 묻던 날'이 궁금해져서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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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18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난 리뷰를 보고도 울컥해서 눈물이 났는데 책을 보면 더 감동 받겠죠? 마음이 끌리는 책이에요.

순오기 2008-07-18 20:15   좋아요 0 | URL
아웅~ 학교 가기 전 부랴부랴 쓰고 갔더니 오타가 많았어요~ 수정완료!^^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책이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와 이모를 부양하는 후편도 있던데 봐야 겠어요.

세실 2008-07-1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자간의 대화에 뭉클해집니다. 참 멋진 가족이네요.

순오기 2008-07-18 20:16   좋아요 0 | URL
부자간의 대화도 엄마와의 대화도 유머와 감동이 있어요.^^
말없는 남편과 아들이랑 사니까 더 부러웠는지도 몰라요.ㅎㅎㅎ

bookJourney 2008-07-1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가 가르쳐야 하는 것이 이런 것들이겠지요 ...

순오기 2008-07-18 21:57   좋아요 0 | URL
우리도 그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공부 잘해라~~~ 돈이 최고다~ 가 아닌 사람이 사람답도록 가르치고 본을 보이는 것...우리가 해야할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