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가 설 자리는 없는 것일까?
없는 아이 메타포 6
클레르 마자르 지음, 이효숙 옮김 / 메타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자신의 존재감을 거부당한 '없는 아이'는 메타포의 여섯번째 책으로, 프랑스에서 2003년 크로노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크로노상은 검색해도 안 나온다.ㅠㅠ 이 책을 읽으며, 미혼모 딸로 태어난 주홍이가 임신하고 중절수술 후 자살했던 "쥐를 잡자'가 생각났고, 중년의 나이에 황홀하게 타올랐던 불륜을 죽을때까지 간직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생각났다. 또한 정자은행을 이용해 딸을 낳아 키우는 방송인 허수경도 생각났다. 이들이 한꺼번에 떠오른 건 내 심정이 그만큼 복잡했다는 얘기다.

17살, 사랑을 느끼기엔 충분하지만 그 사랑을 감당하기엔 많이 부족한 나이다. 이 책은 첫머리에서 아르튀르 랭보의 시를 인용해 명쾌하게 표현한다.

"열일곱 살에는 신중할 수 없다. 산책길에 푸른 참나무가 있을 때는 더욱이......"

이 시의 의미에 스을적 공감하며 첫사랑을 떠올려도 좋으리라. 하지만, 이 책은 아름다운 첫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신중할 수 없었던 열일곱 살에 미혼모가 되었던 마틸드의 이야기다. 아니, 익명출산이라는 X출산(입양시킨 아이를 법적으로 포기하고, 어머니의 신분은 철저히 비밀보장)으로 태어나 입양되어 자기 뿌리를 알 수 없는 안느의 이야기다. 또한 안느의 딸 레아가 끼어든 모녀 3대의 진술이 한 챕터씩 펼쳐져 하나로 모아지는 여성의 삶이다. 예순 살의 마틸드와 마흔 셋의 안느, 그리고 눈부신 나이 열일곱 살의 레아가 엮어내는 모녀 3대의 행복찾기다.

열일곱 살에 덜컥 임신하고 X 출산(입양시킨 아이를 법적으로 포기하고, 어머니의 신분은 철저히 비밀보장되는 1941년 9월, 프랑스 법령)을 선택해 아이를 안아보지도 않고 입양시킨 마틸드. 그녀는 스물 다섯 살에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잘 사는 평범한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아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버렸던 딸 - 혼자서 그애를 '니나'라고 이름 짓고 - 니나에게 속삭인 기록이 여섯 권에 이른다. 생각 속에서라도 아이를 계속 만나고 싶어, 읽을 수 없는 글을 써나간 그 마음이 짠하게 읽힌다. 가족이나 주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죄책감으로 적어가는 마틸드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뒤늦게라도 딸을 만나려는 것은 속죄이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입양되어 사랑받고 잘 사는 안느, 처음부터 입양된 사실을 숨기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받아들였다.열 살에 내 친부모는 돌아가셨나? 라는 질문으로 X출산이라는 걸 알게 되고,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만, 양부모만이 자신의 부모라는 걸 인정하고 살아온 아이. 열일 곱 살에 생모를 찾으려 했으나 신분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단 사실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존재 부재의 부당함을 가슴에 담은채 살았다. 드디어 양부모가 돌아가시자 마흔 셋에 해방감을 느낀다.

입양된 딸에 대한 정보나, 자신의 뿌리를 찾을 단서라곤, 안느-플로라-뮈리엘. 1957년 7월 3일 출생뿐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걱정과 근심으로 읽어나가면, 레아가 끼어들어 만남의 실마리가 풀린다. 역시 엄마를 이해하는 건 딸이다. 마틸드와 안나, 레아의 모녀 3대가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잘 살았을거라 짐작되는 결말이 다행스럽다. 그러나 분량이 적어서인지 모녀의 괴로움에 동참할 만큼 섬세하고 절절하게 그리지는 않았다. 담담하고 담백한 심경고백이라 눈물이 줄줄 흐르지는 않지만, 질질 끌고 나가지 않는 깔끔함은 돋보인다.

입양되어 행복하게 살아도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한다면 비극이다. 인간의 정체성 찾기는 본능이고 권리다. X출산이 누구를 위한 보호장치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쪽은 죄의식으로 괴롭고 한쪽은 뿌리를 몰라 괴롭다면, 누군가에겐 인권유린이고 폭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가 되고 싶은 모성 본능으로 일방적 출산을 한 허수경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태어난 아이는 엄마 아빠를 가질 권리가 있다. 이런 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출산은 또 하나의 폭력일 뿐이다.

'쥐를 잡자'의 주홍이 엄마가 자기 인생의 발목을 잡았단 생각에 아이를 사랑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입양되어 양부모의 사랑으로 자라는 것도 좋다. 물론 뿌리를 알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어야 하고.... 우리나라는 쉽게 입양하고 파양할 수 있어, 최근엔 아파트 청약 때문에 입양했다 파양하는 사례가 어제 TV에서 나왔다. 우리나라는 입양과 파양의 법적 장치를 더 보완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려면 그만큼의 책임도 따른다. 인생에 신중해야 할 나이가 열일곱 살 뿐이겠냐만,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을 선택하기 전에 신중해야 할 이유가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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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에 이런 일이~~~
    from 엄마는 독서중 2008-11-11 01:36 
     1. 오전 10시에 어머니독서회 모임이 있었다. 토론도서는 '없는 아이'였는데, X출산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현재 프랑스와 룩셈부르크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X출산(익명출산)1941년 9월 법령-자신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키고 자신은 아이를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아이 어머니의 신분은 철저히 비밀로 지켜진다. 프랑스에서는 이 법 때문에 자신의 출신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들이 약 40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