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좋다
채인선 지음, 김은정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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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니 자신을 자꾸 돌아보게 된다. 올 한해 제대로 살았는지, 내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는지... 여러가지 반성거리들이 생각나는 밤이다. 이런 되새김이 사람다워지도록 이끌어주는 힘이라고 생각되지만, 왠지 마음이 쓸쓸해진다.

2남 3녀 중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딸로 자랐지만, 내가 정말 좋은 딸인지는 자신이 없다. 다만 부모님의 사랑을 특히 아버지의 편애를 좀 받고 자랐다고 기억된다. 아마 아버지를 제일 닮았다는 것(입바른 소리 잘하고 한 승질 하는게 닮았다고 생각되지만^^)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사랑을 받으면서도 아버지와 치열하게 부딪히는 사춘기를 겪었고,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하는 동안 작별을 준비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돌아가신 후 3년동안 가을이면 아버지를 추억하며 많이 아팠다. 이제는 벌써 5년...... 그런 감정도 많이 식어졌다고 느낀다.

나는 딸이 둘이다. 가운데 아들도 있어 200점이라는 삼남매의 엄마다. ^^ '딸이 좋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남아선호 사상이 팽배하던 시대의 논리이며, 유산이라고 생각돼 좀 씁쓸하다. 이제는 남아선호가 많이 퇴색돼 젊은이들은 아들 딸 구별하지 않는 듯하지만, 노인들의 생각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기에 그냥 인정하자. 그래도 요즘은 양성평등을 넘어 오히려 여성상위의 역차별 같은 것도 있는 분위기다. 하긴 그동안 여자들이 많이 당하고(?) 살았으니, 좀 누린다고 해도 너그러히 받아줘야 되지 않을까? ㅎㅎ

채인선 작가는 딸이 좋은 이유를 누구나 공감하는 생활 속에서 끌어내 조곤조곤 들려준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니까, 예쁜 옷을 입힐 수 있고, 머리도 예쁘게 만져줄 수 있고... 동생도 잘 돌봐주고, 부모를 졸졸 따라다니며 재롱도 떨고...... 과연 이런 이유들로 '딸이 좋다'고 독자를 설득시킬 수 있을까? 아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제시할 수 있어? 괜히 시비걸고 싶은 오기가 생긴다. ^^ 나도 그렇고 내 딸들도 별로 살가운 딸이 아니라서 그럴까? ㅎㅎ 그래도 결론은, 세상에서 엄마가 돼보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얘기하기에 그냥 꼬리 내리고 순순히 동감한다. 내가 좋은 딸이 아니어도 세아이의 엄마가 된 게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엄마가 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비혼인 사람들 빨리 엄마가 되라고 부추기는 리뷰 ^^)

난, 특별히 아들 딸을 구별해서 키우지 않았다. 그냥 똑같은 자식으로 키웠기에 아이들도 차별하거나 구별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제 대학생이 될 큰딸은 고3, 1년간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지내며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고 놀라워 했다. 친구들 집에선 아들 딸 구별하고 차별도 한다는 걸 인식하고, 그렇게 자라지 않았음을 고마워하기도 했다. 내 부모님도 아들이라고 특별대우하거나 딸이라고 차별하며 키우지 않았다. 나의 그런 성장배경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같은 성장환경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하여간 횡설수설한 기분이 들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특별히 '딸은 좋다'고 강조하지 말자는 것이다. 어떤 이유 때문에 딸이 좋은 게 아니고, 그냥 딸은 딸이라서 좋고, 아들은 아들이라서 좋다는 말이다. '딸은 좋다'가 딸만 있는 엄마를 위로하고 힘을 주는 말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들 딸 차별하지 않는 인식의 변화를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않는가? '딸은 좋다'를 보면서 내 딸이 좋은가 보다, 내가 정말 좋은 딸인지를 생각했다.

책 속 아이 그림은 얼굴이 너무 커서 그런지 귀여운 느낌이 들지 않고 성큼 커버린 아이같은 느낌이 든다. 김은정 화가가 그린 채인선의 '아름다운 가치 사전'이나 황선미의 '푸른 개 장발'은 참 잘 그려졌는데, 이 책은 영 아이가 어색하다. 어린 독자들도 그런 점을 지적하며 이상하다고 했다. 2% 정도 그림의 아쉬움 때문에 별하나 감점이다. 유치원기 아이들도 어려울 건 없지만, 양성평등이 무언지 이해하는 초등저학년들이 토론을 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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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7-12-2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 말씀으론 아들은 아들대로 든든한 맛이 있고, 딸은 딸대로 살가운 맛이 있대요. 근데 저희 오빠가 든든한 건 맞는 거 같은데 제가 그다지 살갑지 못해서 항상 좀 죄송하고 그래요.^^

순오기 2007-12-2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별로 살가운 딸이 아니었고 우리 딸들도 그런것 같아요. 모전여전...^^
한참 수정하고 있는데 댓글을 다셨군요. 수정한 내용보면 깐따님이 한말씀 하실거 같은데... ^^

깐따삐야 2007-12-22 00:1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역시 좋은 엄마 맞으시네요.^^ 저희 집은 다분히 오빠 중심이었어요. 부모님은 맏이부터 잘 키워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셨던 것 같아요. 그 부작용 때문일까요. 저는 남자가 저한테 살갑게 대해주면 무지 어색해요.ㅋㅋㅋㅋ

순오기 2007-12-22 00:39   좋아요 0 | URL
좋은 엄마라고 할 자신은 없고 좋은 엄마인 척 하는 엄마 ^^

마노아 2007-12-22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서재 배경이 맘에 들어요. 이 책 보면서 아들 가진 엄마들 맘 상하겠네... 뭐 이런 생각도 했어요. 역시 제목에서 저도 약간 불만 있었답니다. 딸은 좋다보다 '엄마'가 좋다... 이게 더 낫지 싶었어요^^

순오기 2007-12-22 22:56   좋아요 0 | URL
마노님도 그러셨구나.
저도 '딸은 좋다'가 맞아 '딸이 좋다'가 맞아? 이러면서 제목이 맘에 안 들었어요. ^^

비로그인 2008-07-1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인선 작가의 <시카고에 간 김파리>가 새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