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를 하면서 달라진게 있다면 우리 식단의 변화가 가장 클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단백질 공급 1등 공신이던 '돼지고기가 '닭고기'로 대체된 것이다. 이슬람 교도인 버논이 '네 발 달린' 고기를 먹지 않고 '날개 달린' 새고기만 먹기 때문이다.

요리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닭고기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지 못하니 대개 뻔~한 메뉴를 돌아가며 내 놓는다. 또 새로운 것을 내놓으면 이 친구가 한번도 먹지 않거나, 잘 먹은 요리를 다시 해주면 젓가락도 대지 않아서 맘이 상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그가 잘 먹는 후라이드 치킨이나 핏자를 주문하는 일이 늘어나며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홈스테이 첫 달은 서로가 신선함에 탐색하며 적응하는 기간이었고, 두 달째 접어들면서는 편안함으로 한 식구가 되어갔다. 이 친구가 첫 월급을 타면서 주말이면 여행을 갔고, 우린 기다렸다는 듯 돼지고기 먹는 날로 정했다. 어제는 풀브라이트 재단에서 전국의 원어민강사들을 경주로 불러 세미나인지 중간점검인지 한단다. 그래서 버논은 어제 아침 경주에 갔고 월요일에나 돌아온단다. ^^

남편은 외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무엇이든 집에서 먹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본인이 먹고 싶으면 퇴근길에 돼지고기를 잘 사들고 온다. 내가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양도 훨씬 많고 고기의 신선도도 좋다. 도살장이라던가 고기를 취급하는 도매상이라던가 뭐 그런게 오는 길에 있단다. 어젯밤에도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는 목살과 수육용 전지를 두어 덩이 사왔다. 우리 식구들은 기름이 많은 것을 싫어하는지라 삼겹살보다는 목살을, 수육도 후지보다는 전지를 좋아한다. 

아이들은 이미 돼지고기 넣은 김치볶음밥으로 저녁을 먹었고, 남편은 양파와 마늘을 곁들여 구워 놓은 목살에 소주 한잔, 아니 (우리 남편 주량은 소주 한병이다) 소주 한병을 혼자 마시며 세상을 다 얻은 행복한 표정이다. 돼지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소시민의 행복을 그 누가 막을쏘냐!

전지 덩어리를 솥단지에 넣고 다시마, 양파, 마늘, 대파, 생강에 된장과 커피도 살짝 풀고 팍팍 삶아서 묵은지 곁들여서 상추나 배추에 싸 먹으면 그야말로 놀부네 보쌈이 부럽지 않다. 바로 오늘 저녁, 우린 이렇게 돼지고기 먹는 즐거움을 누릴거다. ^*^

2002년이던가 작가 한승원님을 모시고 문학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하셨던 '돼지고기 예찬'이 생각난다. 작가는 집필을 위해 고향 해남에 내려와 오두막을 짓고 '해산토굴'이라 이름 지어 살고 있다. 부인은 서울에 계시며 간혹 내려오신다고 했다. 이렇게 혼자 살면서 설거지를 하다보면, 쇠고기 기름은 안 닦이는데 돼지고기 기름은 잘 닦인다며, 당신은 쇠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더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날 문학강의가 끝나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곁들여 점심을 대접했다.

그런데, 이 양반 강의는 정말 졸립고 재미없다. 그의 작품도 내게는 잘 읽히지 않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래도 그날 텍스트였던 '멍텅구리 배'는 재미있었다. 작가는 '인간탐구'가 작가로서의 소임이라고 말씀하셨다. 그후에 나온 '초의'를 토론도서로 정하려다 회원들의 반대로 못했다. 독서회엄마들도 그의 작품은 읽기 어렵고 재미없다나!

작가도 강의를 재미있게 잘 하는 분이 있는데 대학원에서 이 양반 강의를 듣는 후배는 정말 죽을맛이라고 하더니만, 나중엔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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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7-10-2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돼지고기 드신다는 제목보고 총각이 어디 갔구나~ 짐작했습니다. 아이들도 부군도 한동안 돼지고기 자주 못 먹어서 그야말로 꿀맛이겠어요. ^^

순오기 2007-10-20 14:41   좋아요 0 | URL
토요일이라 일찍 오는 아이들 시간 맞춰 삶았는데~~ 아들녀석은 친구집 갔다 온다며 그냥 나가고, 막내는 예고도 없이 아직 귀가를 안 했어요.
그냥 나 혼자 쬐금 먹으며...음, 이맛이야!!

세실 2007-10-2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우리 아이들은 돼지갈비를 좋아해서 가까운 곳으로 먹으러 간답니다. 달랑 네 식구이고 신랑은 고기를 즐겨하지 않아 집에서 먹는것과 별반 차이가 없네요.
저두 삼겹살 좋아합니다. 보쌈 먹고 싶네요..

뽀송이 2007-10-21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이방인과 함께 잘 타협해서 살아가는 모습 뵈니 존경스럽습니다.
저라면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을 듯 합니다.^^;;
순오기님^^ 돼지고기 수육 정말 맛나겠어요.^^
저도 어제 삼겹살에 소주는 아니고 포도주 한잔 했답니다. 캬~아

순오기 2007-10-22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뽀송이님. 한국사람들은 돼지고기 없으면 뭘 먹고 살았을까~~~싶어요.
요런 걸 안 먹으니까 뭐 해줄게 없는 거 같아요. 요리 솜씨 없는 건 생각 안하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