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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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은 이 책에서 역사 서술에 대한 역사(메타 역사? 적합한 표현인지 모르겠다)를 다루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부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까지, 역사 서술의 방식과 범위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헤로도토스에 비해 유발 하라리의 책이 더 ˝발전˝된 것이라 말하기는 힘들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쓰여진 역사서일 뿐. 헤로도토스와 유발 하라리가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 취득할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이 어마어마하게 차이나지만, 그렇다고 <사피엔스>가 <역사>보다 나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시민은 역사서의 가치는 결국 서사의 힘에서 나온다고 한다. 역사는 수많은 사건들 중 역사가가 자기의 가치관에 맞추어 주관적으로 취사 선택한 것들을 기술한 결과물이다. 역사가가 역사서를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가치를 제대로 설파하려면 제대로 된 서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랑케가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를 표방하며 방대한 양의 저작을 남겼고 당대에 어마어마한 명성을 쌓았지만, 지금은 전공자 외엔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된 것도 랑케가 저술한 역사서에 담긴 서사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서사를 구성하려면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므로, 서사가 담긴 생명력 있는 역사서는 곧 인간을 담은 역사서다. 이는 비단 역사서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시민의 말대로 ˝서사의 힘을 지니지 못한 책은 어느 장르든 오래 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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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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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경은 마흔 셋의 봄에 수환을 만났다. 각자의 친구 결혼식에서 처음 대면한 그들은 한눈에 상대가 삶의 낭떠러지에 가까이 서 있음을 알아본다. 스무 살 때부터 쇠를 다루던 수환은 서른 아홉에 신용불량이 되었고, 중등 국어선생이었던 영경은 결혼에 실패하고 아이도 시댁에 빼앗긴채 알코올에 의존하는 인생을 살았다. 함께 산 지 십이 년. 수환은 류머티즘 관절염에 걸리지만 의료보험이 없어 치료 시기를 놓치고 염증이 골수까지 파고들어 영경과 함께 요양원에 입주한다. 수환의 병이 깊어지는 만큼 영경의 알코올중독도 심해져 갔다. 요양원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기에 때때로 외출하여 알코올에 대한 갈증을 채웠던 영경. 어느 날 영경은 또 다시 외출하고, 수환은 간병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둔다. 영경은 술에 흠뻑 절여진 채 의식불명이 되어 수환의 장례가 끝난 후에야 앰뷸런스에 실려 요양원으로 돌아오고, 끝내 그녀는 수환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알코올성 치매 상태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증발했다‘는 걸 느끼고 이따금 오랫동안 울었다.

권여선의 단편집 <안녕 주정뱅이>는 이렇게 처연한 비극 <봄밤>으로 시작한다. 여기 실린 일곱 개의 단편은 죄다 술과 연관된 이야기들이다. 삶은 우스운 비극이고, 그 비극을 견디는 방법은 주정뱅이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말하려는 듯, 등장인물들은 수시로 술을 퍼마신다. 그들은 술을 즐기는 게 아니라 술을 섭취하는 것이다. 마치 물이 없으면 인간은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은 술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태니까.

술로 인한 희로애락 중 거진 ‘哀‘만 느낄 수 있는 책이지만, 그 ‘哀‘가 술 때문에 희석되고 몽롱해지는 듯하다. 하기사 슬픔을 술로 잊는 게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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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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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그 날 이후 오 년이 지났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광화문의 세월호 분향소가 철거되었다. 이제 세월호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아직도 많은 의혹이 풀리지 않았고 진실은 여전히 물밑에 가라 앉아 있는데.

이 책을 읽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차마 이 책을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월호에 대한 다른 책들은 유가족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하였지만, 이 책은 그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들려주므로 그만큼 먹먹한 슬픔과 분노가 내 일상을 무척이나 힘들게 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5주기를 맞아 더 이상 읽는 걸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디기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읽어야 하는 책이기에. 다른 사람의 슬픔을 나누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에. 그렇게 각오하고 시작했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황급히 책을 덮어버린 적도 많았고, 눈물 날까 두려워 아예 며칠 책을 읽지 않은 때도 있었다. 비록 글로 쓰여 있지만 세월호에 대한 어떤 영화보다, 다큐보다 훨씬 아프고 슬펐다. 그리고 참 대단한 분들이었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분들은 자기 자식만이 아닌 세상을 위해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만행이 벌어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것도 자식을 잃은 지독한 트라우마를 견디면서.

슬픔을 나눌 줄 아는 세상. 슬픔에 동정을 보내는 게 아니라 공감과 치유를 나누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었으면 한다. 슬퍼하는 사람들을 짓밟고 조롱하는 사디즘적 사회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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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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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we smart enough to know how smart animals are? 우리는 동물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근대에 들어 인간의 지위가 끝모르게 추락했음에도 인간의 지적 능력만큼은 추호도 의심받지 않았다. 과학, 문학, 수학, 예술 등의 찬란한 산물을 만들어낸 인간의 두뇌 능력은 지구 생태계 탑 티어 중에서도 아득히 높은 위치에 있다고, 다른 동물들이 아무리 진화를 거듭해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라고 인정받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적 능력 그 자체도 기억력, 수리력, 추론력 등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으므로 모든 면에서 인간이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인간의 두뇌가 우월하다고 해서 다른 동물의 두뇌가 일반의 통념 만큼 떨어지는 것일까?

이 책에서 프란스 드 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동물들이 똑똑하다는 것을, 몇몇 동물들은 특정한 두뇌 능력에서는 인간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을 실증한다. 프란스 드 발은 그의 전작들을 통해 침팬지 무리들이 일상적으로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한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는데, 이 책은 그 탐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2007년 교토대 영장류연구소에서 행해진 실험에서 젊은 수컷 침팬지 아유무는 터치스크린에 1부터 9까지 불과 0.2초 동안 빠르게 떠오르는 숫자의 위치를 기억하고 정확히 누를 수 있었다. 인간은 훈련을 해도 동일한 시간 동안 숫자 다섯 개만 기억할 수 있으나 아유무는 숫자 아홉 개를 기억한 것이다. 심지어 아유무는 이 테스트로 영국 암기력 챔피언까지 이겨 버린다!

그렇다면 인간이 그토록 자부심을 느끼는 문명화된 행동은 어떨까? 정글에서 동물들 손에 갓난아이 때부터 길러진 아이가 구출된 후에도 끝내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짐승과 같은 행동을 버리지 못했다는 기담은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 런던의 한 동물원에서 관람객들의 구경거리로 유인원들의 다과회를 열었다. 유인원들을 훈련시켜 복잡한 영국의 차 문화를 익히게 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 유인원들은 너무나 완벽하고 세련되게 차를 마셨다. 이는 영국 차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일반 대중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결국 조련사들은 차를 엎지르고, 음식과 접시를 마구 내던지는 난장판으로 다과회를 마무리하도록 이 유인원들을 다시 훈련시켰고 그제야 대중은 만족했다. 이외에도 야생에서 두 마리 돌고래가 기절한 동료 돌고래를 양쪽에서 떠받쳐 수면 위로 올려 숨쉬게 해준다든가(그 동안 이 두 마리는 물 속에서 숨을 참아야만 한다), 양들은 수십 마리의 동료 양들의 얼굴을 최대 2년까지 기억하고 알아볼 수 있다든가, 포경이 허용되던 시절에 인간이 혹등고래를 잘 잡을 수 있도록 범고래들이 혹등고래를 포경선 근처로 몰아주고 댓가로 맛있는 부위를 얻어 먹었다는 등등의 일화들이 무수히 소개된다. 공감, 얼굴 인식, 협력 등의 지적 능력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증명이다.

그래서 프란스 드 발은 묻는다. Are we smart enough to know how smart animals are? 우리는 동물들에 비해 우월한 두뇌를 갖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그들도 어떤 면에선 우리에게 전혀 모자라지 않다는 걸 그는 말하고 싶어 한다. 진화의 나뭇가지에 걸터 앉아 있는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물에게 지적 능력 또한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두뇌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고, 이는 또 한 번 인간중심주의를 깨뜨리는 큰 획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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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 - 난쟁이 인류 호빗에서 네안데르탈인까지 22가지 재미있는 인류 이야기
이상희.윤신영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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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

고인류학자 이상희 교수가 인류의 진화에 대해 <과학동아>에 연재한 컬럼을 엮은 책. 스무 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의 컬럼들이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만만치 않다. 인류학에 특별히 관심 있는 이가 아니라면 알기 힘든 인류학의 최전선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완전히 별개의 종이고 전혀 유전적 교류가 없었다는 게 기존의 정설이었지만, 최근 분자유전학의 발전으로 우리 유전자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일부 섞여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는 흥미진진한 내용 같은 것 말이다(진 M. 아우얼의 <대지의 아이들>이 연상된다. 에일라의 아들이 우리의 조상일 수 있다는 놀라운 상상!).

이 밖에도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전 지구로 퍼져나갔다는 ‘아프리카 기원론‘(그 유명한 화석 ‘루시‘)이 ‘다지역 기원론‘, 즉 현생 인류가 여러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발원하여 서로서로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해왔다는 이론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학계의 최신 트렌드도 소개한다. 이런 재미난 주제들로 꽉꽉 차 있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대중 과학 서적이다.

잡지 연재 컬럼이라는 한계로 인해 글의 호흡이 비교적 짧다. 또한 이런 흥미로운 주제들을 좀 더 깊이 소개해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비전공자가 고인류학에 관심을 갖게 하기엔 넘치고도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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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19-02-07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너무 좋아서 우리딸 크면 꼭 읽혀야 겠다고 했던건데 얼마전 서점가서보니 보니 청소년 필독서가 되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