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2 - 나의 과학 인생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2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처드 도킨스의 자서전 제 2권. 출생부터 <이기적 유전자>를 출간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시기까지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했던 1권과 달리, 2권은 그 이후의 그의 삶을 주제별로 묶어서 보여준다. 옥스포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교수법부터 연구 차 세계 각지의 밀림을 돌아다닌 일화, 진화론에 대한 학문적 설명들, <확장된 표현형>, <악마의 사도> 같은 다른 저서들과 수많은 TV 강연, 그가 존경하고 숭배하는 위대한 진화생물학자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더글러스 애덤스(<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쓴 그 사람)에 대한 회고, 그리고 그에게 <이기적 유전자>보다 더 큰 명성과 수많은 적을 만들어준 <만들어진 신>, 그리고 전투적 무신론에 대한 이야기까지. 일반적인 자서전의 형식을 따르지 않으니 마음내키는 대로 아무 장이나 읽어도 괜찮은 책이다.

도킨스 자서전 1, 2권을 모두 읽고 나니 리처드 도킨스는 적대적인 토론과 날선 비아냥을 즐긴다는 세간의 이미지(마치 진중권 같은)와 달리 실제로는 퍽이나 유머러스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든다. 문장 곳곳에 숨어 있는 위트가 너무나 많아서(때로는 비야냥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600 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인데도 지루할 틈이 별로 없다. 그는 시를 무척 사랑하는,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지성인이며, 기쁨과 슬픔을 무척 솔직하게 드러내는 지극히 인간적인 과학자이다.

"종교가 있든 없든 착한 사람은 착하게 행동하고 나쁜 사람은 나쁘게 행동하지만, 착한 사람이 나쁜 짓을 저지르려면 종교가 필요하다."

설득은 "내가 이렇게 사실을 알려줬으니까, 넌 바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라고만 말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설득은 "이것이 사실인데, 여기에 대한 네 감수성은 이렇구나"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과 감수성, 두 가지가 결합될 때 비로소 영향이 미칩니다.

신은 단순하거나 복잡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신이 단순한 경우 그는 우리가 찾는 복잡성의 설명을 제공할 지식도 설계 기술도 없는 처지가 된다. 반면 복잡한 경우 신은 사람들이 그를 끌어들여서 설명하려고 하는 복잡성 못지않게 그 스스로 설명이 필요한 존재가 된다. 우리가 신을 단순하게 만들수록, 신은 세상의 복잡성에 대한 설명이 될 자격이 없어진다. 반면 우리가 신을 복잡하게 만들수록, 신은 그 자체로 설명이 필요한 존재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 어느 과학자의 탄생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화생물학계의 가장 저명한 스타 과학자이자 전투적 무신론의 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두 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자서전 중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에서는 도킨스가 2차 세계 대전 와중의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세상을 바꾼 걸작 <이기적 유전자>를 출간하는 시점까지의 그의 생애를 다룬다. 가문을 중시하는 영국인의 특징인지, 자신의 진화생물학적인 계보를 보여주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아마 후자이리라), 이 책은 그의 6대조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를 서두에 턱하니 보여주며 시작한다. 수많은 도킨스와 스미시스 - 스미시스는 그의 할머니 쪽 성씨이다 - 들이 등장하는 이 자서전의 첫 장은 흡사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방불케 한다(등장인물들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의 친가 쪽 집안은 대대로 아프리카 식민지의 관리였다. 그가 케냐에서 태어난 것도 그의 아버지가 케냐에서 군복무를 했기 때문이었다. 도킨스가 젊었을 적 버클리에 있던 시절에 짧게나마 베트남전 반전 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대대로 식민지 공무원으로 복무한 가문의 이력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담담히 서술하는 그의 태도는 약간 놀랍다.

이 책에 담긴 그의 생애를 여기에 전부 옮겨 적을 필요는 없겠다. 여덟 살에 영국으로 돌아와 기숙학교를 다니고,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다녔던 옥스포드 베일리얼 컬리지에 진학하고, 거기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수많은 동료 학생과 교수를 만나고, 니코 틴베르헌이라는 걸출한 학자에게 수학하고, 첫 결혼을 하고, 진화론 모델 구성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매료되고, 마침내 <이기적 유전자>를 집필하여 학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유명인이 되기까지의 인생에 대한 묘사엔 그만의 위트와 학문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주변인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듬뿍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꽤나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물론 읽는 이가 진화론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적인 상식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르도의 링컨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에이브러햄 링컨은 둘째 아들 윌리에게 작은 조랑말 한 마리를 선물한다. 윌리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매일 조랑말을 탔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어느 날 윌리는 열이 심하게 났고 곧 티푸스로 발전했다. 대통령의 주치의조차 어쩌지 못한 병으로 인해 가엾은 윌리는 결국 열 한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슬픔에 가득 찬 장례식 뒤, 묘지에 묻힌 윌리의 영혼 앞에 세 명의 유령이 나타난다. 나이 어린 부인을 두고 사고로 죽은 한스 볼먼, 동성에 대한 사랑에 좌절하다 자살을 시도한 베빈스 3세, 목사로 살다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 에벌리 토마스 목사. 그들은 윌리가 곧 다른 곳으로(천국 또는 지옥) 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기가 죽었다는 걸 모르는 윌리는 아버지가 돌아와 이 음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자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리라고 믿는다. 사실 이 세 유령 중 - 그리고 이후에 등장하는 수많은 유령들도 - 자기의 죽음을 인지하고 있는 건 토마스 목사 뿐이다. 그는 천국과 지옥의 심판 앞에 섰다가 지옥의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도망친 것이었다. 나머지는 자기가 죽음을 맞았을 당시에 시간이 고정되어 버린 탓에 심판의 자리로 가는 것 - 물질빛피어나는 현상 - 이야말로 죽음이라고 믿는 자들이다. 순진한 윌리를 비웃는 세 유령 앞에 링컨이 다시 나타나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 안고 슬퍼한다. 링컨의 행동에 크게 감복한 수없이 많은 유령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윌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바르도의 링컨>은 내 독서 이력 중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소설이다. 책을 처음 사면 어떤 책인지 알기 위해 한 번 훑어보기 마련인데, 이 책은 도대체가 소설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책 전체가 온통 인용문들을 짜집기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인물들 간의 대화도 마찬가지. 모든 게 인용문과 독백의 형식으로 짜여져 있어서 책장을 대충 넘기던 나는 크게 당황했다. 이 생경한 책은 대체 뭘까. 그래서 사놓고 몇 달을 묵혔었다.

그러나 일단 이 책의 형식에 익숙해지면 생소함은 금세 사라지고 이 이야기의 마력,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윌리는 어떻게 될까? 하나하나 깊은 사연을 갖고 있는 이 많은 유령들의 헌신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이렇게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아쉬운 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 ‘바르도‘는 티벳 불교 용어로 죽은 뒤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를 의미한다. 이 소설의 무대인 묘지의 사후세계, 죽음을 채 받아들이지 못한 윌리와 유령들의 세계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의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어서는 안 된다. 그 목적이라면 책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요즘은 인터넷도 있다. 강의는 생각을 고취시키고 자극해야 한다. 훌륭한 강사가 내 눈앞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어떤 생각에 도달하려고 애쓰고, 가끔은 난데없이 나타난 멋진 생각을 잡아내는 광경을 구경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언 매큐언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엄마 뱃속의 태아를 주인공으로 이렇게나 긴장감 넘치는 범죄극를 주조해내다니 말이다. 자궁이라는 호두껍질 안에 갖힌 이름없는 ‘나‘. 만삭의 엄마는 아빠의 동생, 즉 내 삼촌과 불륜을 맺고 있다. 가난하고 덩치 큰 시인인 아빠와 달리 삼촌은 작달막하고 볼품없는 외모와 천박한 정신을 소유한 부동산업자다. 어쩌다 엄마가 이런 남자와 사랑에 빠진 건지 알 수 없지만, 내 순진한 시인 아빠에겐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엄마와 삼촌이 아빠를 죽이고 유산으로 받은 낡은 저택을 팔아치우려는 사악하고 음흉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무력하기 그지 없는 ‘나‘는 이 둘의 음모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소설이 햄릿의 독창적인 재해석이라는 세평이 많지만 ‘나‘는 햄릿과 달리 전혀 우유부단하지 않다. ‘나‘는 자궁이라는 껍질만이 아니라 연약한 육신에 수감된 처지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비할데 없는 증오를 느끼지만 엄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자신의 역설적인 처지를 끝없이 비관한다. 그래도 ‘나‘는 결국 태아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멋지게 복수에 성공해낸다. 다만 많은 경우 그렇듯, 복수를 이루었다고 내 인생이 도저히 행복해질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은 정의롭지만 슬프고 또한 혼란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