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에이브러햄 링컨은 둘째 아들 윌리에게 작은 조랑말 한 마리를 선물한다. 윌리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매일 조랑말을 탔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어느 날 윌리는 열이 심하게 났고 곧 티푸스로 발전했다. 대통령의 주치의조차 어쩌지 못한 병으로 인해 가엾은 윌리는 결국 열 한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슬픔에 가득 찬 장례식 뒤, 묘지에 묻힌 윌리의 영혼 앞에 세 명의 유령이 나타난다. 나이 어린 부인을 두고 사고로 죽은 한스 볼먼, 동성에 대한 사랑에 좌절하다 자살을 시도한 베빈스 3세, 목사로 살다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 에벌리 토마스 목사. 그들은 윌리가 곧 다른 곳으로(천국 또는 지옥) 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기가 죽었다는 걸 모르는 윌리는 아버지가 돌아와 이 음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자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리라고 믿는다. 사실 이 세 유령 중 - 그리고 이후에 등장하는 수많은 유령들도 - 자기의 죽음을 인지하고 있는 건 토마스 목사 뿐이다. 그는 천국과 지옥의 심판 앞에 섰다가 지옥의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도망친 것이었다. 나머지는 자기가 죽음을 맞았을 당시에 시간이 고정되어 버린 탓에 심판의 자리로 가는 것 - 물질빛피어나는 현상 - 이야말로 죽음이라고 믿는 자들이다. 순진한 윌리를 비웃는 세 유령 앞에 링컨이 다시 나타나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 안고 슬퍼한다. 링컨의 행동에 크게 감복한 수없이 많은 유령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윌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바르도의 링컨>은 내 독서 이력 중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소설이다. 책을 처음 사면 어떤 책인지 알기 위해 한 번 훑어보기 마련인데, 이 책은 도대체가 소설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책 전체가 온통 인용문들을 짜집기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인물들 간의 대화도 마찬가지. 모든 게 인용문과 독백의 형식으로 짜여져 있어서 책장을 대충 넘기던 나는 크게 당황했다. 이 생경한 책은 대체 뭘까. 그래서 사놓고 몇 달을 묵혔었다. 그러나 일단 이 책의 형식에 익숙해지면 생소함은 금세 사라지고 이 이야기의 마력,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윌리는 어떻게 될까? 하나하나 깊은 사연을 갖고 있는 이 많은 유령들의 헌신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이렇게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아쉬운 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바르도‘는 티벳 불교 용어로 죽은 뒤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를 의미한다. 이 소설의 무대인 묘지의 사후세계, 죽음을 채 받아들이지 못한 윌리와 유령들의 세계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