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큐언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엄마 뱃속의 태아를 주인공으로 이렇게나 긴장감 넘치는 범죄극를 주조해내다니 말이다. 자궁이라는 호두껍질 안에 갖힌 이름없는 ‘나‘. 만삭의 엄마는 아빠의 동생, 즉 내 삼촌과 불륜을 맺고 있다. 가난하고 덩치 큰 시인인 아빠와 달리 삼촌은 작달막하고 볼품없는 외모와 천박한 정신을 소유한 부동산업자다. 어쩌다 엄마가 이런 남자와 사랑에 빠진 건지 알 수 없지만, 내 순진한 시인 아빠에겐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엄마와 삼촌이 아빠를 죽이고 유산으로 받은 낡은 저택을 팔아치우려는 사악하고 음흉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무력하기 그지 없는 ‘나‘는 이 둘의 음모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이 소설이 햄릿의 독창적인 재해석이라는 세평이 많지만 ‘나‘는 햄릿과 달리 전혀 우유부단하지 않다. ‘나‘는 자궁이라는 껍질만이 아니라 연약한 육신에 수감된 처지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비할데 없는 증오를 느끼지만 엄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자신의 역설적인 처지를 끝없이 비관한다. 그래도 ‘나‘는 결국 태아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멋지게 복수에 성공해낸다. 다만 많은 경우 그렇듯, 복수를 이루었다고 내 인생이 도저히 행복해질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은 정의롭지만 슬프고 또한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