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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터 - 창의적인 삶으로 나아간 천재들의 비밀
월터 아이작슨 지음, 정영목.신지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펼쳐 들어 서문을 읽던 중에 저자가 이 책을 10여 년 전부터 준비했었고 2009년 초에 잠시 집필을 중단하고 스티브 잡스의 전기 작업을 마친 후 다시 작업해 이제서야 내놓았다는 언급을 보고, 이 책에 앞서 먼저 예전에 간간히 읽다 말았던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완독하게 되었다. 어차피 이 책도 디지털 시대에 가장 의미 있는 약진과 그것을 이루어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같은 저자의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겹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800여 페이지가 넘는 잡스의 전기 내용에 비해 이 책에서는 잡스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좀 더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어쨌든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전자공학을 전공한데다가 IT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낯익었다. 사실 전자공학을 공부하면서 내 영웅으로 생각하던 클로드 섀넌 이야기와 잭 킬비와 고든 무어에 대한 이야기 역시 흥미로웠다. 이 책을 다보고 예전에 구독하던 IEEE 잡지들을 다시 꺼내보기도 했는데, 그만큼 이 책이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 분야의 찬란한 역사를 일별하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아예 책 앞쪽에 그와 관련된 기나긴 연표가 붙어있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제일 처음 언급되는 사람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딸인 에이다 바이런, 즉 에이다 러브레이스였다. 20세기 들어와 현대적인 컴퓨터가 만들어지기 100여 년 전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 당시 수학자인 찰스 베비지와 에이다의 만남을 통해 베비지가 만든 차분기관이 오늘날 컴퓨터의 원형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 베비지의 해석기관에 대한 주석을 써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에이다는 컴퓨터 혁명의 수호 성자,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라 불리게 된다고 한다. 배비지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주어진 프로그래밍 명령에 기초하여 다양한 연산을 수행하는 범용 컴퓨터였는데, 여기에 더하여 에이다는 그 이후 100년 뒤 컴퓨터가 탄생했을 때 보여주었던 개념들을 고안하고 정리했다는 것이다. 즉, 미리 설정된 작업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하고 변화 가능한 일련의 작업을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하고 재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개념, 숫자 이외 기호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저장, 조작, 처리, 활용할 수 있는 개념, 서브루틴이나 재귀루프 같은 알고리즘, 그리고 오늘날 인공지능과 관련한 논란거리 중에 하나인 해석기관은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라 한다.


이어서 천공카드를 완벽하게 이용하도록 만들었고 나중에 IBM이 되는 회사의 모체를 만든 허먼 홀리러스, 세계 최초 아날로그 전기기계식 컴퓨터를 만든 배니버 부시, 컴퓨터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앨런 튜링, 릴레이 회로를 이용하여 복잡한 연산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클로드 섀넌, 기계적 계산기를 프로토타이핑한 콘라트 추제 등 컴퓨터 하드웨어의 초기 발전사에 개입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최초 범용 컴퓨터 발명의 공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논쟁이 중심적으로 다루어진다. 그러면서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부각하고 있는 하나의 주제, 즉, 서로 공통점이 없는 실천가와 이론가가 한데 모여 아이디어와 정보를 교환하며 협업을 통해 이러한 혁신의 역사가 지속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토론 상대의 역할을 해주거나 이론적으로 또는 공학적으로 까다로운 문제를 극복하는 것을 도와줄 사람이 주위에 없었던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아타나소프가 만든 컴퓨터가 아니라 다양한 재능을 가진 팀과 협업할 기회가 있었던 존 모클리와 존 프레스퍼 에커트가 만든 에니악(ENIAC)을 최초의 전자식 범용 컴퓨터로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


컴퓨터 하드웨어에 대한 설명에 이어 그 하드웨어 위에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초기 역사도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 하드웨어 설계는 모두 남성 몫이었고 소프트웨어는 여성이 담당했기 때문에 이 역사에는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프로그래밍의 선구자라 불리는 그레이스 호퍼는 예일대 출신의 여성 수학 박사였고, 또한 최초의 컴퓨터를 돌아가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6명의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나중에 존 모클리와 결혼하는 여성도 있으며, 그 여성은 나중에 코볼과 포트란 개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에 역시 창의적인 도약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은 수많은 아이디어와 개념과 기술과 엔지니어링 방식이 동시에 무르익었을 때 발생하는 진화적 절차의 결과라 강조하고 있다. 이를테면 폰 노이만의 프로그램 내장식 아키텍처는 모클리가 연구하던 것을 자신의 이름을 붙여 공을 앗아간 것인데, 이러한 폰 노이만의 강점은 바로 질문을 던지고 경청하고 부드럽게 대안을 제시하고 의견을 수집하면서 창의적 협업과정의 감독역할을 수행할 줄 아는 재능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쪽 이야기를 하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 하드웨어에 대한 특허권이 소프트웨어보다 획득하기 쉬웠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언급된다. 


세 번째로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 쪽 역사로 넘어가는데 여기서도 역시 양자 현상에 대한 직관력을 보유한 이론가들과 불순물을 이용하여 능숙하게 규소를 구워낼 줄 아는 재료 과학자들, 솜씨 좋은 실험가들과 공업 화학자, 제조 전문가와 천재적인 만물 수리공들이 한데 모여서야 이러한 혁신적인 발명품이 탄생할 수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대표적인 연구소가 바로 벨 연구소라 지적한다. 거기서 창의적인 천재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응용 엔지니어는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개념을 구체적인 장치로 구현하게 되면 테크니션과 기업가들로 이루어진 협업 팀들이 이런 발명품을 실용적인 제품으로 만들어내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트랜지스터 발명과 관련해 실제로 존 바딘과 월터 브래튼의 2인조가 해냈지만 그들을 시기했던 상사 쇼클리에 대한 혹평이 이어진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윌리엄 쇼클리가 비밀스럽고 융통성 없고 권위주의적이며 피해망상적인 면모를 나타내면서 나쁜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발해 이른바 8인의 배신자들이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의 잭 킬비와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로버트 노이스 간 집적회로 발명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특히 인텔의 탄생 배경과 기업문화는 개인적으로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인텔에 사람만 보고 투자했던 벤처 자본가 아서 록의 이야기, 즉, 아이디어가 아닌 사람을 보라는 투자원칙과 함께 HP에서 유래했다는 금요일 맥주파티, 탄력 근무제, 스톡옵션과 같은 제도를 한 단계 격상시킨 것을 비롯해 사장을 비롯해 전 직원이 동일한 칸막이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예전에 TV등 매체를 방영되었던 내용들이다.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 둘 다 권위와 과시를 싫어했기에 그 누구도 결단력 있는 관리자가 되려 하지 않아 앤디 그로브가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는 사실도 말이다. 이어서 컴퓨터가 사람들이 가지고 놀며 상호작용하는 물건이 되어야 한다면서 등장하게 된 컴퓨터 비디오 게임에 대한 역사가 서술된다. MIT 학생들의 동호회 TRMC의 해커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창의적이면서도 탄탄한 공학적 배경을 가졌으며 사업과 소비자 요구사항에 정통한 기업가 놀런 부쉬넬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전개된다. 그러면서 혁신에는 적어도 세 가지 요인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위대한 아이디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공학적 재능, 그리고 이를 성공적인 제품으로 만들어낼 사업적 기량 및 거래를 성사시킬 배짱이란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인터넷의 역사에 대한 것이다. 인터넷을 창조하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로 리클라이더를 거론하면서 탈중심적 네트워크와 인간-기계상호작용 인터페이스에 대한 공헌과 더불어 인터넷의 모태가 되는 ARPANET에 자금을 댄 군 부서 책임자로 재능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한 팀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음을 언급한다. 폴 베어런, 도널드 데이비스, 레너드 클라인록 사이에서 패킷화 아이디어를 누가 처음 제시했는지에 대한 논쟁과 함께 눈길을 끄는 여러 언급들이 있었는데, 이를 테면 인터넷이 원래 핵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산 네트워크의 개념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에 대한 찬반 이야기들과 비공식적 성격을 강조하려다 보니 인터넷 시대 협업을 권장하는 완벽한 표현이 되어버린 RFC, TCP/IP 프로토콜의 창안자 중 한 사람인 빈트 서프가 미숙아로 태어나 청각에 손상을 입어 10대 때부터 보청기 착용했다는 것, ARPANET에서 처음으로 멀리 떨어진 컴퓨터끼리 L과 O 문자를 교환했던 역사적 장면, 스튜어트 브랜드의 호울 어스 카탈로그 표지 사진에 나온 지구 모습이 그 당시 그가 NASA를 설득해서 얻어낸 자료라는 이야기 등이 눈길을 끌었다.  


또한 1968년까지 마우스, 화면상의 그래픽, 한 화면에 존재하는 여러 개의 창, 디지털 출판, 블로그를 닮은 저널, 위키를 닮은 협업, 문서 공유, 이메일, 인스턴트 메세징, 하이퍼텍스트 링크, 스카이프를 닮은 화상 회의, 문서 서식 기능 등을 고안해 "모든 데모의 어머니"로 시연해 보인 엥겔바트, 오늘날 노트북 컴퓨터의 원형을 그려내었던 앨런 케이, 홈브루 컴퓨터 클럽과 호비스트 문화, 히피 문화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나오는 펠젠스타인, 그리고 400달러 이하의 아주 싼 가격으로 모든 호비스트가 살 수 있도록 초보적 컴퓨터의 DIY키트 알테어 8800을 만들었던 MITS의 에드 로버츠와 이에 영감을 받고 직접 여기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던 빌 게이츠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게이츠에 대한 이야기는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딱 하나 고교시절 게이츠와 가장 친한 친구가 폴 알렌이 아니라 켄트 에반스였고, 그가 고교 시절 산악등반 여행 중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친구의 장례 예배를 보았던 로버트 풀검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의 저자였다는 것이다. 이어서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열정과 함께 잡스와 워즈니악의 2인조의 협업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어서 비지캘크를 개발한 댄 브리클린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리처드 스톨먼, 리누스 토발즈 등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쪽으로 이야기가 넘어간다. 이메일, 메일링리스트, 유즈넷, 뉴스그룹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헤이스 모뎀, 그리고 AOL의 탄생 이야기, 월드 와이드 웹의 아버지라 불리는 팀 버니스리와 이를 실현시켜주었던 파트너로 나오는 로베르 카이오, 모자이크를 개발한 마크 안드레센, 블로그의 원조인 weblog를 만든 저스틴 홀, 누가 위키피디아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는가 논쟁의 대상이 된 웨일즈와 생어, 그리고 제리 양의 야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구글 탄생에 대한 이야기도 전개된다. 이러한 이야기들 중 눈길을 끌었던 것은 1990년대 후반 버너스리가 W3C를 통해 웹을 위한 소액 지급 시스템을 개발하려고 시도했었다는 것이다. 소액결제를 처리하기 위한 정보를 웹 페이지에 내장할 방식을 고민하다가 2013년에 다시 그 활동을 재개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양질의 기사를 읽거나 노래를 듣고 웹 상에서 손쉽게 돈을 지불할 수 있게 한다는 아이디어의 실현이 기대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IBM 딥블루와 왓슨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나리오는 요원한 것이며, 인간과 기계가 파트너가 될 경우 가장 좋은 효율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인간과 컴퓨터가 공생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컴퓨터보다 잘 할 수 있는 창조성의 발현에는 가치, 의도, 미적 판단, 감정, 개인적 의식, 도덕적 감각이 포함된다고 언급한다. 이것이 예술과 인문학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며, 그 영역들이 과학, 테크놀로지, 공학, 수학만큼 교육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과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수학과 물리학의 아름다움도 감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예술과 인문학에 찬사를 보내고 학교에서 그것을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많은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수학이나 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질타한다. 이들은 라틴어 학습의 장점을 격찬하지만, 알고리즘을 작성하는 방법이나 BASIC과 C++를 구분하고 파이선과 파스칼을 구분하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과학과 인문학 두 문화 양쪽을 모두 존중해야 하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둘이 교차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디지털 혁명의 다음 단계에는 테크놀로지를 미디어, 패션, 음악, 연예, 교육, 문학, 예술 같은 창조적 산업과 결합하는 훨씬 더 새로운 방식이 나올 것이라 예측한다. 혁신의 첫 단계는 많은 부분 오래된 영역, 즉, 책, 신문, 오피니언, 잡지, 노래, 텔레비전 쇼, 영화를 새 디지털 형식에 담는 것이라 언급하면서, 테크놀로지와 예술 사이의 상호작용은 결국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표현 방식과 매체 형식을 낳을 것이라 예측한다. 이런 혁신은 아름다움과 공학, 인문학과 테크놀로지, 시와 프로세서를 연결 지을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올 것이라 언급하면서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 디지털 시대는 혁명적으로 보일지라도 이전 세대들로부터 전해져 온 생각들을 확장하는 작업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의 창의성이 또 다른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발현되어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전반적으로 이 책을 보면서 컴퓨터 산업의 태두가 되었던 HP나 현재 거두가 된 오라클, 시스코를 비롯해 제임스 고슬링이나 빌 조이 같은 유명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이야기가 빠진 것이 꽤 아쉽게 느껴졌다. 또한 이 책의 뒷부분이 그다지 매끄럽게 번역되지 못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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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9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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